소극장뮤지컬 '광염소나타' 팽팽한 긴장감과 귀의 호사

  • 원종원
  • 입력 : 2017.06.07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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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종원의 뮤지컬 읽기-81] 예술가는 윤리적 제약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을까? 위대한 작품을 위해 범죄를 저지른다면 그는 과연 이해될 수 있을까?

뮤지컬 '광염소타나'는 탐미주의 혹은 유미주의 계열의 유명한 작품인 김동인의 단편소설로부터 영감을 얻어 만들어진 무대용 작품이다. 유미주의란 예술적 아름다움에 최고의 가치를 두는 예술지상주의적 사관을 말하는데, 예를 들어 보들레르나 페이터, 오스카 와일드 등에 의해 완성되어졌으며, 국내에서는 시인 이상이나 서정주, 김광림 등의 시에서 목격할 수 있다.

유미주의적 시각은 예술과 윤리 혹은 도덕적인 가치관과 충돌해 많은 논란과 논쟁을 낳는다. 뮤지컬 '광염소나타' 역시 마찬가지다. 줄거리는 세 명의 인물을 중심으로 전개되는데, 아름다운 음악을 만들고 싶지만 타고난 재능이 부족한 작곡가 J와 천재적 능력을 타고났지만 머리 속 선율을 악보로 정리해내지 못하는 작곡가 S, 그리고 J를 조정해 자신의 업적을 만들려고 하는 클래식계의 저명한 교수인 K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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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와 J는 친구 사이다. S가 즉흥적으로 연주한 곡을 J가 악보로 정리해 두각을 나타내면서 이야기는 얽히고 설킨 세 사람의 사연을 만들어낸다. K교수는 J를 이용해 음악계에 자신의 존재감을 더욱 공고히 하려고 그를 제자로 삼는다. S로부터 영감을 얻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음악적 역량으로 K교수에게 인정을 받고 싶었던 J는 창작의 고통에 시달리는 불면의 나날들을 보내고, 극도의 스트레스 상태에서 술을 마시고 운전을 한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J는 실수로 교통사고를 내 사람을 다치게 만드는데, 엉뚱하게도 붉은 피를 보면서 영감이 떠오르는 체험을 하게 된다. 이야기가 더욱 기괴해지는 것은 전후사정을 알게 된 K교수가 J에게 멋진 음악을 완성하게 하기 위해 수차례에 걸친 살인을 반복하도록 부추긴다는 점이다.

무대 위 이야기는 '죽음의 소나타'가 완성되어질수록 J는 더욱 처절히 파멸되는 과정을 보여준다. 음악을 완성하기 위해 연쇄살인을 벌이는 J, 그런 그를 더욱 자극하며 탐미주의적인 욕심을 드러내는 K교수, 그리고 이 과정을 목격하게 되는 S의 사연 등이 휘몰아치듯 등장한다. 결국 J는 자신의 악마성에 대한 경고와 회피의 마음으로 스스로 목숨을 끊게 되는 극단적인 선택을 하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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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미주의적 설정과 상상력으로 대중의 관심을 끈 작품 중에는 영화 '향수'도 있다.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1985년작 소설을 톰 티크베어가 2007년 영화화했다. 천재적인 후각을 지닌 주인공 장바스티스 그루누이가 여인의 체취를 향수로 담아내기 위해 살인을 저지른다는 상황과 설정이 묘한 잔상을 남긴다. 뮤지컬 '광염소나타'는 그런 의미에서 영화 '향수'와 설정과 주제적 측면에서 서로 일맥상통하는 면이 크다. 즉 예술 혹은 인간정신의 구현이나 '아름다움(美)'의 완성을 위해 도덕이나 윤리, 살인과 같은 범죄는 과연 정당화될 수 있는가에 대한 원론적인 질문을 다루고 있는 셈이다.

소극장 뮤지컬로 만들어졌지만 뮤지컬 '광염소나타'는 풍성한 음악적 설정과 화려한 구성으로 왠만한 대극장 무대보다 귀를 즐겁게 하는 매력을 담아내고 있다. 백스테이지를 향한 커다란 문과 좁다란 통로를 설정해 외부로 드나드는 공간적 배치를 바탕으로 피아노와 바이올린, 첼로 등으로 구성된 현악 3중주를 배치해 시종일관 극적 긴장감과 이야기의 전개를 효과적으로 구현해낸다. 천재 음악가의 탐미주의적 살인, 윤리와 도덕에 대한 심리적 갈등, 그러나 예술적인 경험과 희열을 다시 만나고 싶어 살인을 반복하게 되는 불안한 심리상태의 주인공 J는 라이브로 연주되고 표현되는 음악적 구성에 힘입어 꽤나 격정적이고 격동적으로 구체화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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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감독이자 작곡자, 그리고 공동 작가로 참여한 다미로는 여성스런 이름이 주는 느낌과는 다른 남성 음악가이다. 베토벤의 카바티네 악보에 담겨 있는 옥죄고 괴롭고 압박한다는 의미의 단어 '베클렘트(Beklemmt)'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광염소나타'의 이야기를 구상하게 됐다는 후문이다. 음악가가 어떤 생각과 계기 혹은 의도로 음악을 만들게 되는가에 대한 이해는 예술적 결과물에 대한 다양한 이해를 돕는다는 측면에서 작품에 대한 매우 흥미로운 해석을 가능하게 한다. 마치 비발디의 '사계'가 악보에 적혀 있는 작곡자의 지문과 단어, 의도에 따라 곱씹어보면 계절의 변화에 따라 음악적으로 묘사되어진 풍경임을 눈치챌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다. 살인을 통해 위대한 예술을 만들게 된다는 아슬아슬하면서도 충격적인 이 이야기가 음악적인 이해나 전제를 바탕으로 꽤나 설득력있게 객석으로 전달될 수 있는 이유와도 일맥상통한다.

대학로에서 선보이고 있는 '광염소나타'는 작은 무대의 작품들이 일반적으로 그렇듯 단 세 명의 배우로 모든 이야기를 전개하는 소극장 뮤지컬의 형식적 틀과 외형을 지니고 있다. 우선 심리적 방황과 음악적 욕심으로 살인을 반복하는 J 역으로는 박한근과 문태유가, J의 사연을 2인칭의 목격자적 시각에서 들려주는 친구 S 역으로는 유승현과 김지철이, 예술가로서의 욕심으로 주인공 J를 다그치며 극단적인 유미주의적 시각을 드러내는 K교수 역으로는 김수용과 이선근이 등장한다. 무대 하수 쪽에는 두 대의 피아노가 소품으로 놓여 있어 J와 S가 때때로 연주에 가세해 음악가의 격정적인 체험을 이야기하는데 도움을 준다. 극의 리얼리즘을 극대화해 관객들을 설득하는데 도움을 주는 장치들이다. 또 다른 창작 뮤지컬 '라흐마니노프'에서도 악기를 연주하는 배우의 모습이 등장해 '액터 뮤지션 뮤지컬'적인 재미와 신선한 느낌을 전해주기도 했는데, 우스갯소리긴 하지만 요즘 우리나라 뮤지컬에서는 좋은 배우가 되기 위해 만능의 재능을 가져야 함을 역설적으로 보여주는 것 같기도 하다. 무대를 보다 보면 꽤나 감탄스런 연주 솜씨에 매료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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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의 완성과 윤리, 도덕의 관념을 충돌시키는 충격적인 설정으로 시종일관 손에 땀을 쥐게 만드는, 그래서 무대에서 눈을 떼지 못하게 만드는 묘한 매력의 뮤지컬이다. 작곡을 완성하기 위해 궁극의 희열을 쫓는다는 이야기의 전제가 안쓰럽고도 파괴적인 상상을 자극한다. 무대가 평소 접하지 못한 판타지와의 만남에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는 관객이라면 이색적인 체험이 될 듯싶다.

[원종원 순천향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뮤지컬 평론가]
원종원 순천향대 신방과 교수·뮤지컬 평론가
▲ 원종원 순천향대 신방과 교수·뮤지컬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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