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러의 계절이 돌아왔다 ②공포 소설편

  • 홍성윤
  • 입력 : 2017.06.17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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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쉽게 읽는 서브컬처-50] 호러의 계절이다. 열대야에 잠 못 이루는 밤 펼친 호러 소설에 잔털은 삐죽 곤두서고, 식은땀이 마른 자국엔 서늘함까지 느껴진다. 쥐 죽은 듯 조용해진 사위(四圍)에 위화감을 느껴 괜스레 두리번거린다.

과거 여름철 극장가의 주연은 호러 영화였다. 지금은 그 자리를 '성수기 블록버스터'가 꿰차고 있다. 물론 제작비 대비 흥행 신화를 쓴 몇몇 화제작들이 호러 영화 명맥을 이어오고 있지만, 전성기는 이미 지나가버렸다. 하지만 서점가는 다르다. 절대적인 수는 많지 않아도 탄탄한 장르문학의 독자층은 좋은 작품들이 꾸준히 출간될 수 있는 밑거름이 됐다. 교보문고에 따르면, 지난해 출간된 전체 소설 분야 도서 10863권 중 3.1%인 341권이 추리·공포·스릴러·미스터리 소설이다. 2007년 212권(2.3%)에 비해 양과 비중 모두 늘어났다.

왜 사람들은 호러 소설에 매료될까. 지금껏 3억5000만부 이상을 팔아치운 베스트셀러 작가이자 '호러의 킹'인 스티븐 킹은 자신의 평론집 '죽음의 무도'(황금가지)에서 "(우리가 호러 소설을 읽는 까닭은) 인간으로서 열망하는 질서를 재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허구의 공포를 통해 죽음과 무질서를 체험함으로써 일상과 질서의 소중함을 깨치게 한다는 것이다.

호러 소설은 영화보다 무섭다. 두려움에 상상을 보태기 때문이다. 스티븐 킹 역시 "진정 무서운 존재는 문 뒤에 존재하는 법"이라고 강조했다. 문학사학자인 J A 커든은 호러 소설에 대해 "독자에게 충격을 주거나, 독자를 두렵게 만들고 때론 혐오감을 유발하는 소설"이라고 설명했다.

한여름 밤에 서늘함을 보태줄 추천 호러 소설을 시대별로 정리해봤다. 한글로 번역된 작품을 우선했고, 책이 절판돼 구하기 힘든 경우에는 별도로 명기했다.



◆공포소설의 씨가 잉태되다

호레이스 월폴의 고딕 소설 오트란토 성(황금가지)과 런던 교외 트위크넘 지역에 위치한 그의 저택 스트로베리힐 하우스. /사진 출처 = 위키피디아 Chiswick Chap
▲ 호레이스 월폴의 고딕 소설 오트란토 성(황금가지)과 런던 교외 트위크넘 지역에 위치한 그의 저택 스트로베리힐 하우스. /사진 출처 = 위키피디아 Chiswick Chap
영국 작가 호레이스 월폴의 유일한 소설 '오트란토성(The Castle of Otranto, 1764)'은 고딕 소설의 효시로 알려졌다. 낭만주의의 한 사조이자 공포파(恐怖波) 소설이라고도 하는 고딕 소설은 공포와 로맨스 요소가 결합된 장르로 중세 건축물(고딕 양식)의 고혹적이고 을씨년스러운 분위기에서 초자연적인 소재와 섬뜩한 상상력을 이끌어냈다. 오트란토성의 폭군 만프레드와 그의 가족이 겪는 초자연적인 사건을 다룬 이 소설은 18~19세기 영국 빅토리아 시대에 고딕 소설의 유행을 가져왔다. 환상문학이라는 큰 범주에 속하는 고딕 소설의 흔적들은 지금도 공포, 추리 소설 등 여러 장르 문학 속에서 찾아볼 수 있다.

영국 수상 로버트 월폴 경의 넷째 아들로 태어난 월폴은 문학 애호가이자 작가, 정치인 그리고 '고딕 덕후'였다. 런던 교외의 한 저택으로 이사한 그는 자신의 집을 '스트로베리 힐'이라고 명명하고 건물 안팎을 고딕풍으로 증축했다. 이 저택은 이후 고딕 양식의 부활을 이끈 기념비적인 건축물이기도 하다. 그는 건축가와 디자이너 등 자신의 친구들을 불러 모아 리모델링 아이디어를 구했는데, 이 모임의 이름은 '취향 위원회'(Committee of Taste) 혹은 '딸기 위원회'였다. (귀여워!!)



◆공포소설의 원형들

왼쪽부터 프랑켄슈타인(문학동네), 뱀파이어 걸작선(책세상) 지킬 박사와 하이드(펭귄클랙식코리아), 드라큘라(열린책들).
▲ 왼쪽부터 프랑켄슈타인(문학동네), 뱀파이어 걸작선(책세상) 지킬 박사와 하이드(펭귄클랙식코리아), 드라큘라(열린책들).
고딕 소설의 계보는 이후 현대 공포물의 원형으로 손꼽히는 19세기 작품 - 메리 셸리의 '프랑켄슈타인'(1818), 존 폴리도리의 '뱀파이어'(1819),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의 '지킬 박사와 하이드'(1866)-로 이어진다. 재미있게도 프랑켄슈타인과 뱀파이어 탄생에는 영국 낭만주의 시인 바이런의 역할이 컸는데, 그와 친구들이 1816년 스위스 제네바 레만 호숫가 별장에 모여서 주고받은 무서운 이야기들을 발전시키고 다듬어 출간한 것이다. (본격 썰 풀다 소설 쓴 썰.txt)

'뱀파이어(The Vampyre)'는 바이런의 친구이자 주치의였던 존 윌리엄 폴리도리가 민담 혹은 미신 속 괴물이었던 흡혈귀를 현대적인 이미지로 재구축한 소설이다. 이후 많은 흡혈귀 소설들이 나왔지만 가장 대표적인 작품은 브램 스토커의 '드라큘라'(1897)다. 치밀한 연구와 조사를 통해 완성된 이 작품은 흡혈귀 장르를 완성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흡혈귀는 자신의 관에서 잔다든지, 거울에 비치지 않는다든지, 박쥐를 부릴 수 있다든지 하는 '흡혈귀 장르의 공식'이 집대성된 작품이기도 하다.

'프랑켄슈타인(Frankenstein : Or the Modern Prometheus)'은 영국의 메리 셸리(1797~1851)가 18세부터 쓰기 시작해 21세 나이에 출간한 작품으로 최초의 SF 소설로 꼽힌다. 그는 루이지 갈바니 교수가 개구리 해부실험 중 발견하고 주장한 동물전기 현상(갈바니즘)에서 영감을 얻어, 괴물을 만들어낸 천재 과학자의 이야기를 써내려간다.

'지킬 박사와 하이드(Strange Case of Dr. Jekyll and Mr. Hyde)'는 '보물섬'의 작가로 유명한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의 단편 소설로, 이중인격을 다룬 최초의 작품이다. 선량한 지킬 박사와 사악한 하이드 씨를 통해 인간 내면의 악의 존재를 꼼꼼히 들여다본다. 마블 코믹스의 히어로 헐크도 이 작품에서 직접적인 영향을 받았다.

스티븐 킹은 '죽음의 무도'에서 이 세 작품을 현대 호러 장르의 근간으로 평했다. 프랑켄슈타인의 괴물은 인간 스스로가 창조한 재앙으로, 지킬 박사와 하이드는 선악이 뒤바뀌는 두려움, 드라큘라는 절대 악으로서 후대 작품과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는 것이다. 대중문화에 관한 연구로 잘 알려진 영국의 교육학자이자 영국예술위원회 회장을 역임한 바 있는 크리스토퍼 프레이링 경은 자신의 저서 '나이트메어: 호러의 탄생'(1996)에서 "(당시의 호러 소설들은) 무대나 스크린에서 현대적으로 재해석되고 지속적으로 영향력을 끼치는 아이콘을 창조했다"고 평했다.



◆싸구려 잡지, 호러의 요람으로

왼쪽부터 대표적인 펄프 잡지인 위어드 테일즈, 찰스 덱스터워드의 비밀(영언문화사, 절판), 러브크래프트 전집(황금가지), 몬터규 로즈 제임스(현대문학).
▲ 왼쪽부터 대표적인 펄프 잡지인 위어드 테일즈, 찰스 덱스터워드의 비밀(영언문화사, 절판), 러브크래프트 전집(황금가지), 몬터규 로즈 제임스(현대문학). '찰스 덱스터워드의 비밀'은 러브크래프트 전집 3권에 '찰스 덱스터 워드의 사례'로 수록돼 있다.
펄프 잡지(Pulp Magazine)는 1896년 미국에서 시작해 1950년대까지 유행한 싸구려 소설잡지를 뜻한다. 1923년 창간돼 판타지나 호러를 주로 다룬 업계의 전설 '위어드 테일즈'나 1930년부터 지금까지 명맥을 이어온 SF잡지 '어스타운딩 스토리즈'가 대표적인 펄프 잡지다. 잡지가 값싼 갱지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펄프'라는 명칭이 붙여졌다. 권당 10센트 정도에 팔리던 이 싸구려 잡지에는 판타지·SF·추리·공포·모험물·범죄물 등 장르 소설이 주로 실렸다. 종이 질만큼이나 선정적이고 수준이 떨어지는 싸구려 작품들도 많았지만, 펄프 매거진은 로버트 하인라인, 아이작 아시모프, 필립 K 딕, 레이먼드 챈들러 등 수많은 유명 작가를 배출한 장르 문학의 요람이기도 했다. 판타지, 공포 장르가 고정 독자층을 확보하고 그 위상을 확립하는 데 일조하기도 했다.

특히 위어드 테일즈의 초대 편집장 에드윈 베어드는 프랭크 오웬, 시버리 퀸, 클라크 애슈턴 스미스를 비롯한 여러 인기 작가를 발굴하며 공포 소설에 특화된 펄프 잡지 시장을 개척했다. 그런 그의 업적 가운데 가장 돋보이는 것이라면 바로 하워드 필립스 러브크래프트(1890~1937)의 발견이다.

H P 러브크래프트는 신화를 창조한 작가다. 크툴루 신화라고 하는 그의 세계관은 미지에 대한 공포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그는 작품 속에서 '교류도 이해도 저항도 불가능한, 초월적이고 이질적인 존재 앞에서 한없이 무력한 인간 군상'을 꾸준히 그려내면서 꿈도 희망도 없는 전개를 보여줬다. 크툴루는 그레이트 올드 원이라고 하는 신적 존재 중 하나로, 인류가 존재하기 전 고대 지구의 지배자다. 다른 고대 신들과 함께 해저의 초고대도시에 잠들어 있다가 오랜 시간이 지나 이들이 깨어나기 시작하면서 벌어지는 불가해한 사건들이 크툴루 신화의 기본 골격이다.

크툴루 신화의 의의는 완전히 새롭고 독자적인 공포의 원형을 제공해줬다는 데 있다. 신화(mythos)라는 말이 붙었을 정도로 러브크래프트가 만든 절망적인 세계는 방대하고 매혹적이었다. 러브크래프트의 탁월한 상상력은 다른 동시대 작가와 후배 작가들에 의해 덧대어지고 체계화되면서 현대 호러 장르와 서브컬처, 대중문화에 막대한 영향을 끼쳤다.

러브크래프트보다 앞서 활약한 작가 몬터규 로즈 제임스(1862~1936)는 빅토리아 시대의 고딕 소설과 현대 공포 소설의 가교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유령 이야기(Ghost Stroies)'라는 이름으로 잘 알려진 제임스풍 공포 소설에는 20세기 변혁의 물결을 거부한 복고주의자이자 빅토리아 시대의 마지막 교양인이었던 그의 사상이 투영돼 있다. 그는 과거 고딕 소설처럼 주로 빅토리아 시대를 무대로 하되, 작품에 실제 지명과 실존 인물, 당시의 시대상을 반영하는 현대적인 기법을 차용하면서 자신만의 스타일을 확립한다.

러브크래프트 역시 제임스풍 공포 소설에서 많은 영향을 받았다. 그는 제임스의 작품에 대해 "수많은 평범한 상황과 배경에서 자연스럽게 나타나는 일상적 삶과 역사에 공포를 짜 넣는 방식은 M R 제임스가 창출한 가장 가치 있는 요소이다. 그는 공포소설가의 모범이다"라고 평가했다.



◆좀비, 무덤에서 일어나다

왼쪽부터 허버트 웨스트 리애니메이터 시리즈 6편 연작 중 1편이 실린 펄프 잡지
▲ 왼쪽부터 허버트 웨스트 리애니메이터 시리즈 6편 연작 중 1편이 실린 펄프 잡지 '홈 브류'의 1922년 2월호 표지, 리애니메이터가 실린 러브크래프트 전집 1권(황금가지), 영화 리애니메이터 포스터(국내 개봉명 좀비오), 나는 전설이다(황금가지).
죽은 자가 되살아나 지상을 걷는 괴물 '좀비'는 이제 모르는 사람이 없게 됐다. 영화 '부산행'의 천만 관객 흥행 성적만 봐도 그렇다. 현대적인 좀비를 정립하고 좀비가 독립적인 장르로서 자리매김한 건 1968년 조지 A 로메로 감독의 영화 '살아있는 시체들의 밤' 개봉 이후로 친다. 하지만 시체를 되살린다는 아이디어는 호러 소설에서 먼저 다뤘다.

러브크래프트의 단편 '허버트 웨스트 리애니메이터'(1922)는 미치광이 과학자 허버트 웨스트의 시체를 되살리는 실험을 소재로 하는 소설이다. 되살린 시체들이 이성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식인 괴물이란 점은 현대적인 좀비와 다르지 않다. 소설은 '리애니메이터(국내 개봉명 좀비오)'란 제목으로 영화화됐다.

지금의 좀비를 있게 한 또 하나의 걸출한 작품은 리처드 매드슨(1926~2013)의 '나는 전설이다'(1954)다. 지상의 인류가 모두 멸망하고 홀로 살아남은 사내에 대한 이야기로, 그가 싸우는 상대는 변종 박테리아에 감염된 흡혈귀들이다. 기존의 흡혈귀물을 비틀어 뱀파이어를 절대 악의 괴물이 아닌 바이러스에 감염된 다수의 괴물로 묘사하고, 소수의 인간이 고립된 채 생존을 위해 싸우는 점 등은 이후 수많은 좀비물에 고스란히 반영됐다. 빼어난 주제 의식과 지금 읽어도 퇴색되지 않는 세련된 작품인 만큼 일독을 권한다. 스티븐 킹이 이 작품을 읽고 작가의 길에 뛰어든 것으로 알려졌다.



◆호러의 킹을 영접하라

왼쪽부터 스티븐 킹 단편집 스켈레톤 크루(황금가지), 캐리(황금가지), 그것(황금가지), 스탠드(황금가지).
▲ 왼쪽부터 스티븐 킹 단편집 스켈레톤 크루(황금가지), 캐리(황금가지), 그것(황금가지), 스탠드(황금가지).
먼 길을 왔다. '호러의 킹' 스티븐 킹(1947~)이다. 공포 작가로서 유례없는 성공을 거둔 베스트셀러 작가이자 54편의 장편소설과 200편에 달하는 단편을 발표하는 등 다작을 하면서도 대중성과 작품성을 모두 성취한 작가로 평가받는다. 그의 작품은 전 세계적으로 3억5천만부 이상 팔렸다(2006년 기준).

스티븐 킹은 브램스토커상(여섯 차례 수상해 최다 수상자), 월드판타지상 평생공로상, 그랜드마스터상 등 장르 소설작가로서 누릴 수 있는 최고의 영예를 누렸고, 여기에 더해 오헨리상, 2003년 전미도서상 평생공로상을 받고 2015년엔 미국예술훈장을 수훈하는 등 문학적 성취도 인정받았다. 작법서인 '유혹하는 글쓰기'와 호러 평론집인 '죽음의 무도' 등 논픽션 작품도 높은 평가를 받았다.

탁월한 상상력과 간결한 문장, 평화로운 일상에서 서서히 쌓아올린 공포가 걷잡을 수 없이 폭발하는 귀기(鬼氣) 어린 전개가 일품이다. 영화화도 활발한 편이라 소설과 영화를 비교해가며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아직 이 작가를 영접하지 못한 독자라면 단편에서 시작해 중·장편으로 옮겨 가는 방법을 추천한다. 단편집 '스티븐 킹 단편집 스켈레톤 크루'와 '스티븐 킹 단편집(Night Shift)'으로 첫발을 떼길 권한다. 지금의 그를 있게 한 출세작 캐리(1974), 스탠리 큐브릭 감독의 영화로도 잘 알려진 샤이닝(1977), 미저리(1987), 톰 고든을 사랑한 소녀(1999) 등은 가볍게 읽기 좋다. 작가의 소름 끼치는 세계에 익숙해졌다면 한 마을이 거대한 투명 돔으로 덮인 상황에서 출발하는 '언더 더 돔', 전염병 아포칼립스 세계관의 걸작 '스탠드', 절대 악과 맞서는 소년·소녀들의 이야기를 그린 '그것' 등 만만찮은 분량을 자랑하는 대표작을 읽을 차례다.

필생의 역작이라 할 수 있는 판타지 소설 '다크타워' 역시 그답지 않은 이 세계 배경에 그다운 호러 감각을 잘 조합해 담아내고 있으나, 아직 국내에서는 완결되지 않은 데다가 출간 속도가 느린 편이라 선뜻 추천하기 어렵다.

스티븐 킹의 라이벌로 꼽히는 흥행작가 딘 R 쿤츠의 작품도 매우 훌륭하지만 국내에 출간된 작품 수가 많지 않다. 죽음을 볼 수 있는 능력자 오드 토머스를 주인공으로 하는 호러 판타지 장편소설 '살인예언자'(다산책방)가 국내 출간되고 이를 원작으로 하는 영화도 개봉하며 작가의 명성에 걸맞은 라인업을 갖추고 있는 중이다. (그런데 영화에서 주연을 맡은 안톤 옐친이 비극적인 사고로 요절해 영화 후속편을 장담할 수 없게 됐다)



◆모던 호러, 공포는 계속된다

왼쪽부터 20세 고스트(비채), 폐허(비채), 몬스트러몰로지스트(황금가지), 검은 집(창해).
▲ 왼쪽부터 20세 고스트(비채), 폐허(비채), 몬스트러몰로지스트(황금가지), 검은 집(창해).
차세대 '호러의 킹' 타이틀을 누가 가져갈지는 모르겠다. 분명한 것은 여러 재능 있는 작가들이 왕좌를 차지하고 위해 무시무시한 악몽을 쏟아내고 있다는 점이다.

조 힐의 첫 번째 소설집 '20세기 고스트'(비채)는 등장과 동시에 대단한 성취를 이뤘다. 작가는 이 작품으로 호러 소설 최고의 영예인 브램 스토커상을 비롯, 월드판타지상, 브리티시판타지상, 인터내셔널 호러 길드상, 레이 브래드버리상 등을 휩쓸었다. 그의 본명은 조지프 킹으로, 스티븐 킹 아들이다. 아버지 후광에 기대기 싶지 않아 필명으로 데뷔한 그는 아버지의 재능을 고스란히 물려받았다는 평가를 받는다.

스콧 스미스는 작가로 활동한 24년간 단 두 편의 소설만 발표한 대표적인 과작(寡作) 작가다. 배우 중엔 원빈, 작가 중엔 스콧 스미스라 할 만하다. 하지만 워낙 작품의 면면이 훌륭해 독자들을 기다리게 만든다. 2006년 출간한 '폐허'(비채)는 버려진 유적에 갇힌 청춘남녀가 마주치는 초자연적 공포를 다뤘다. 명쾌한 플롯이라 장르 소설 팬이라면 예측 가능하다는 평가도 있지만, 그걸 뛰어넘는 심리 묘사와 팽팽한 긴장감이 백미.

데이비드 모렐의 '도시탐험가들'(2006, 비채)은 아동용 교양서적 같은 제목과 달리 공포와 긴장감의 수위가 높은 소설이다. 버려진 건물을 탐험하는 도시탐험가들(creepers)이 8시간 동안 겪는 끔찍한 일들을 마치 영화를 보듯이 생생한 문장으로 전달한다.

일본은 장르문학, 그중에서도 추리·미스터리 분야 강국이다. 1920년~1930년대에 활동한 '일본 추리소설의 아버지' 에도가와 란포(江戶川亂步 )는 정통 추리소설에 기괴하고 음울한 서스펜스와 그로테스크한 공포를 접목시켰다. 1954년 그가 사재를 털어 만들고 이듬해부터 시상한 에도가와 란포상이 일본 추리소설의 저력을 상징한다면, 일본호러소설대상(日本ホラー小説大賞)은 일본 호러 소설의 깊이를 보여준다.

가도카와 서점과 후지TV가 주관해 1994년부터 시작된 이 상의 대표적인 수상자는 바로 작가 기시 유스케다. 1996년(3회) '13번째 인격'(창해)으로 장편상 가작에 데뷔한 그는 이듬해 보험사기극을 소재로 한 소설 '검은 집'(창해)으로 대상을 거머쥔다. 타인에 대한 공감능력이 전무하거나 현저히 떨어지는 반사회성 성격장애 '사이코패스'라는 단어를 대중에게 각인시키는 데 일조했다. 이후 작가는 '악의 교전'(느낌이있는책)을 통해 다시 한 번 사이코패스 캐릭터의 핏빛 광기를 묘사한다.

츠네카와 코타로의 2005년작 '야시 - 눈을 감으면 다른 세상이 열린다'(노블마인)와 소네 게이스케의 '코'(북홀릭)도 국내 출간된 일본 호러 소설 대상 수상작이다. 동양적인 정서와 생활양식을 어느 정도 공유하는 일본의 호러 소설은 한국 독자들에겐 더 섬뜩하게 읽힌다. 북미권 작가 소설에서 '존은 정원 수영장에 떠 있는 시체를 발견했다'라는 문장을 읽으면서 한국 독자가 느낄 부동산적 괴리감을 떠올려보면 더욱 그렇다.

릭 얀시의 '몬스트러몰로지스트' 시리즈(황금가지)의 국내 출간은 몬스터 애호가에게는 가뭄의 단비 같은 소식이다. '알프레드 크롭 : 최후의 기사단'(문학수첩리틀북)과 '제5침공'(알에이치코리아)으로 각각 판타지 모험물과 SF 장르에서 대중성, 필력을 검증받은 작가가 이번엔 1888년 미국을 배경으로 하는 고딕 호러 장르에 도전했다. 그리고 그 결과물은 만족스럽다. 괴물을 연구하고 사냥하는 '괴물학자' 펠리노어 워슬롭과 그의 곁을 지키는 조수 윌 헨리의 활약상을 그렸다. 당대의 역사적 사건과 실존 인물들을 작품 내로 포섭시켜 몰입감을 더한다. 기괴하고 끔찍한 괴생명체의 무시무시한 활약상(?)은 호러팬들을 만족시키기에 충분하다. 영화화 판권이 팔렸는데, 영화의 수위 조절이 걱정될 정도다.



◆못다한 (무서운) 이야기
왼쪽부터 로즈메리 베이비(동서문화사), 시귀(북홀릭), 에드거 앨런 포 소설 전집(코너스톤), 한국 공포문학 단편선(황금가지).
▲ 왼쪽부터 로즈메리 베이비(동서문화사), 시귀(북홀릭), 에드거 앨런 포 소설 전집(코너스톤), 한국 공포문학 단편선(황금가지).
언제나처럼 분량 조절에 실패했음에도 불구하고 시대별로 작품을 소개하다 보니 놓친 작품들이 많다. 놓치기 아쉬운 주요 작품들을 적어둔다. 좁은 식견의 필자가 미처 챙기지 못한 작품에 대해서는 언제든지 추천 부탁드린다. 좀비물은 독자적인 장르로 발전한 것으로 여겨 따로 꼽지는 않았다. (이하 가나다순)

로즈메리의 아기(로즈메리 베이비) - 아이라 레빈(동서문화사, 황금가지)
망량의 상자 - 교고쿠 나츠히코(손안의책)
시귀 - 오노 후유미(북홀릭)
에드거 앨런 포 소설 전집 - 에드거 앨런 포(코너스톤)
유니버설 횡메르카토르 지도의 독백 - 히라야마 유메아키(이미지박스)
피의 책(미드나잇 미트 트레인) - 클라이브 바커(씨앤씨미디어, 끌림) 절판
한국 공포문학 단편선 - 이종호 외(황금가지)


[홍성윤 프리미엄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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