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꾼'의 조연배우 허성태 "10년전 러시아 판매왕"

  • 김시균
  • 입력 : 2017.11.29 1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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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허성태. <사진=양유창 기자>
▲ 배우 허성태. <사진=양유창 기자>
[나는 조연배우다-2] "인생은 B와 D사이의 C다." 장 폴 사르트르(1905~1980)가 남긴 말이다. 우리네 삶이란 'Birth'(출생)와 동시에 'Death'(죽음)를 수반하며, 매 순간 'Choice'(선택)의 기로에 놓인다는 의미다. 여기 한 가지를 더 보태면 그 하나하나의 '선택'들이 모여 개별적 삶의 양태가 'Change'(변화)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혹자는 그 '변화'가 너무 커 이전의 삶과는 180도 달라지기도 하는데, 데뷔 6년차 배우 허성태(40)가 바로 그렇다.

부산 출신의 이 1977년생 배우는 이름만으로는 아직 대중에게 낯설다. 하지만 최근 1~2년 새 그가 연기한 캐릭터들을 복기해보면 어느 순간 '아하' 하게 된다. 지난해 가을 '밀정'(감독 김지운)의 초·중반. 송강호가 연기한 일제 경찰 정출에게 '쩍' 소리나게 뺨 맞던 그 친일 정보원. 이 찰나적 순간은 허성태의 '얼굴'을 세상에 알린 대표적 장면이 됐다.

김훈 작가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 '>
▲ 김훈 작가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 '남한산성'에서 허성태는 청나라 총지휘관 용골대를 연기했다. 중저음의 카리스마 넘치는 만주어를 구사하며 인상적인 모습을 남겼다. <사진 제공=씨제이이엔엠>
특히나 올해, 그의 존재감은 더욱 빛났다. 김훈 작가의 동명 소설을 영화화한 '남한산성'(감독 황동혁)에서 청군 지휘관 용골대. 조선 충신 최명길(이병헌)의 아우라에 뒤지지 않던 이 청나라 장수를 연기한 것도 허성태였다. 특유의 내리까는 중저음으로 이 같은 만주어를 선보였다. "구아라카쿠, 시자 하쿠 모지라, 자이지키루 하킬라, 우티칸즌미(오랜만이다, 얼굴이 많이 상했구나)."

어디 이뿐이랴. 올 하반기 화제작 '범죄도시'(감독 강윤성) 초반부. 장첸(윤계상)에게 이글대는 눈빛으로 맞서다 황천길로 가버리는 민머리 조선족 깡패 독사도 허성태다. 코믹 영화 '부라더'(감독 장유정)에서 스님 형배, 최근 흥행 중인 '꾼'에서 가장 요주의 인물이자 '희대의 사기꾼'인 장두칠 또한 그가 연기했다. 존재감 만큼은 여느 주연 못지않은 조연. 허성태 또한 한순간의 '결단'으로 생의 급격한 '변곡점'을 맞은 인물이다.

그러니까 지금으로부터 6년 전, 어느 늦은 밤. 그는 회식 후 귀가해 아내와 도란도란 TV를 보고 있었다. 그러다 화면 하단에 흘러가는 문구 하나가 눈에 띄었다. SBS '기적의 오디션'에 출연할 사람들을 찾는다는 공고. 신인 배우 발굴 취지의 신규 오디션 프로그램이었다. 취기도 조금 남았겠다 일순간 도전 욕구가 일었다. "여보, 나 저거 한 번 해봐도 될까?" 아내는 의외로 쿨했다. "재밌겠네, 한 번 해봐요."

그렇게 과장 진급을 앞둔 결혼 6개월 차 허성태는 난생 처음 배우 오디션에 뛰어든다. 그때 나이 서른 다섯이었다.

배우 허성태. <사진=양유창 기자>
▲ 배우 허성태. <사진=양유창 기자>
-충동적이었던 거네요?

"우연찮게 해본 거죠. 반 장난 삼아. 아니 근데, 거기 계신 심사위원분들 전부 저 더러 소질이 있다는 거예요. 어릴 때부터 배우에 대한 막연한 동경은 있었지만 재능이 있다고 해주시니… 한 번도 시도해본 적 없던 거였거든요. 그 격려 덕에 '지금 이 순간이 아니면 평생 못 해볼 것 같다는, 후회할 것 같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어요. 근데 이 정도로 인생이 바뀌게 될 줄은….(웃음)"

-그래도 무의식중에 그런 꿈이 있었나봐요.

"특별한 계기는 없었던 것 같은데… 다만 중·고교 시절 힘들 때마다 영화가 정말 많은 위로가 됐어요. 그때 느낀 카타르시스나 숱한 감정이 제 내면 깊은 곳에 자리했는지도 모르죠. '배우라는 직업이 이렇게 멋있구나'라는 생각은 아마 그때부터 하고 있었을 거예요."

딴에는 "반 장난 삼아서" "충동적이었다" 해도, 그가 배우로서 꿈이 없었던 건 아닌 것 같다. 비록 의식하지는 못했을지언정. 2011년 6월 방영한 '기적의 오디션' 1화를 보면 그런 생각이 든다. 멀쑥한 검은 정장 차림의, 회사원 티가 역력한 허성태는 심사위원단(배우 이범수, 김갑수, 이미숙, 이재용, 영화감독 곽경택 등) 앞에 서서 거의 울부짖듯 말한다.

"제가 왜 이렇게 해야 하냐면, 제 아내 때문입니다. 아내가 이런 얘기를 했습니다. 당신 이거 안 하면 내 남편 아니다. 이때까지 살아오면서 맨날 남 눈치 보고, 돈 뭐 현실 뭐 대출이자 그런 거 생각하지 마라. 나 직장 있다. 내 5년 만에 벌 거 당신 10년 만에 벌면 되지 않느냐. 그렇게 적극 밀어줘서 제가 생각을 고쳐먹었습니다."

카메라에 담긴 그의 얼굴은 잔뜩 상기돼 있었다. 두 눈은 시뻘겋게 충혈된 상태였고, 목소리는 거의 울먹거릴 지경. 감정을 미처 추스를 새 없이 준비해온 연기를 꺼내야 했다. 당시 그가 선보인 건 '올드보이'의 그 유명한 엔딩 신. 참혹한 진실을 깨달은 21세기 오이디푸스 오대수(최민식)가 제 딸을 볼모로 협박하는 우진(유지태)에게 지난 과오를 속죄하며 애원한다. 귀기(鬼氣)가 느껴질 만큼 혼신을 다해야만 겨우 소화 가능한 이 최고난도 연기를 펼쳐보인 것이다.

"제발, 제발 미도에게만은 이 사실을 알리지 마라.... 걔가 무슨 죄가 있냐.... 다 내가 잘못한 거잖아... 그러니까 그러니까 우리 미도만은 그냥 놔둬 좀 어! 흐, 만약에 니가 미도 귀에 내가 아버지라는 사실을 알게 하면 너 우진이 너 이 지구상 어디서도 니 시체를 발견할 수 없을거야! 왜? 내가 잘근잘근 씹어먹을 테니까...(중략)... 야... 우진아, 내가 잘못했어, 내가 이 말 다 취소할게... 우진아, 나 니가 나보고 니 똥개가 되라면은 내가 똥개가 된다!... 왈왈!... 꼬리 살랑살랑, 어때? 우진아, 우진아."

이 순간 그는 오대수와 거의 혼연일체가 된다. 연기 경력이 전무하다는 사실이 믿기지가 않는 수준. 앞선 참가자들에겐 부재하던 폭발적 아우라로 세트장 전반을 장악해 버린 것이다. 심사위원마다 만장일치의 찬사를 쏟아냈다. "그거 진짜로 민 거 아니죠?(마지막에 허성태는 가위 대신 때밀이로 제 혀를 자르는 시늉을 해보였다) 아무튼 굉장히 잘 봤습니다."(곽경택) "기교가 섞이지 않은 연기 잘 봤습니다."(이미숙) 허성태를 가장 유심히 본 듯한 배우 이재용은 이같이 말한다. "예민함 같은 게 단순한 개인기 차원을 넘어선 것 같아요. 느낌, 열정 이런 것들이 너무 보기 좋습니다...(중략)... 의지가 굳건하다면 끝까지 응원해드리고 싶은 마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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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범죄도시'에서 조선족 조폭 '독사'로 출연한 허성태. <사진 제공=메가박스 플러스엠>
-도대체 어떻게 연습한 거예요. 연기해본 적 없다면서.

"그냥, 영화에서 본대로 따라한 거죠. 그저 계속 반복, 또 반복했어요. 2주 동안 정말이지 미치도록요."

-연습도 연습이지만 잠재된 끼가 엄청났던 것 같아요. 당시 심사위원단 반응을 보고 어떤 기분이었어요?

"준비해온 걸 마치니 다들 저를 신기하게 쳐다보고 계시더군요. 알고 보니 합격인 거예요. 멍하면서도 감격스러웠죠. 아, 내가 연기 재능이 있긴 한가보다 생각하게 된 첫 순간이었고요.(웃음)"

-이후 연습은 어떻게 하셨나요?

"프로그램 방영하던 6개월간 합숙생활에 들어갔어요. 이범수 선생님이 살신성인으로 열심히 가르쳐 주셨고요. 프로그램 끝나고 나서는 저를 2년간 거의 무료로 도와주신 분이 한 분 계세요. 지금도 오디션 있을 적이면 그분께 찾아가 같이 연습하고 차기작 생길 때마다 함께 대본 보며 연습하고 있어요."

'기적의 오디션'은 총 17화. 허성태는 파이널 라운드를 남겨두고 16화에서 탈락한다. 그의 마지막 소감은 이러했다. "매 스테이지마다 연기하고 나서 후회한 적은 단 한번도 없었고, 오늘은 더더욱 없습니다. 저는 지금 행복합니다...(중략)... 저보다 더 가능성 있는 젊은 친구들한테 기회가 주어지게 돼 너무 너무 행복합니다!"

이쯤에서 잠시 시계 태엽을 2000년대 초반으로 돌려보자. 새 출발을 하기 전, 그는 과연 어떤 사람이었을까. 그야말로 남부러울 것 없는 엘리트 직장인이었다. 부산대 노어노문학과를 나온 이 러시아어 능통자는 이십대 중반, 국내 굴지의 전자회사 마케팅팀에 들어간다. 첫 직장이었다. 러시아 현지 호텔을 상대로 LCD TV를 대거 판매해 회사에서 '판매왕'이라 불리던 인재. 러시아 호텔에 비치된 LCD TV 상당수는 그가 이룬 성과다. 이후엔 경남 거제도에 있는 조선소로 옮겨 기획조정실에서 일했다. 연봉 6000만원에 사업계획서를 짜던 엘리트 사원이었다. 그야말로 탄탄대로. 연봉 6000만원 대기업 다니던 허성태

배우 꿈 이루려 사표내고 '인생 2막'

'남한산성' '범죄도시' '부라더' '꾼'

2017년 충무로 신 스틸러로 급부상

"'해바라기' '아저씨' 같은 연기하고파"


영화 '>
▲ 영화 '밀정'에서 허성태는 친일 경찰 허성태로 출연했다. 주인공 이정출(송강호)에게 뺨을 맞는 장면에서 화제를 모았다. <사진 제공=워너브러더스 코리아>
-어쩌면 배우라는 직업과 대척점에 서 있었던 거네요.

"그런가요. 근데 지금 드는 생각이지만, 이 연관 없어 보이는 경험이 연기하는 데 많은 도움이 돼준 것 같아요. 직장 윗분들이나 동료들과의 관계. 그 분들과 나누는 대화나 일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서로 겪는 여러 과정들은 저만이 가질 수 있는 유일한 경험이니까요. 이 모든 게 자양분이 돼준 거죠. 그리고 러시아어를 전공한 게 연기에 도움이 많이 됐어요. 외국어를 잘한다는 건 그 나라의 정서나 문화적인 특성을 깊이 체득하고 있을 때라야 가능하거든요. 연기도 비슷한 것 같아요. 대사에 특정한 정서를 얹어 충분한 감정을 전달해야 하니까요. 아, 그런데요. 저 매일경제에 기사 쓴 적이 몇 번 있는데…."

-아, 그래요? 언제요?

"1998~1999년도인가 2000년도 초반 즈음인가 그랬던 것 같은데. 해외 마케팅 업무차 블라디보스토크를 자주 오갔어요. 당시 매일경제와 저희 회사가 '청년무역인 해외리포트' 같은 걸 했거든요. 해외 각지에 파견 나간 청년 사원들이 현지 리포트를 써서 보내는 거였어요. 6번 정도 썼는데 5번이 지면에 실렸던가 그래요."

-돌아가면 뒤져봐야겠네요. 찾아내면 보내드릴게요.

"아뇨, 이미 집에 다 보관하고 있어서. 저 당시 상도 받았어요. 리포트 제일 잘 쓴 사람 대상으로요. 매일경제 본사에서 열린 수상식에도 참석했고요. 아버지가 그때 받은 상을 지금도 스크랩해서 간직 중이세요.(웃음)"

확인해보니 정말이었다. 허성태를 만나고 며칠 뒤 인터뷰 내용을 노트북에 정리하던 차. 인터넷으로 블라디보스토크와 관련한 십수 년 전 기사들을 검색하다 이런 제목이 눈에 띄었다. '국산 중고 자동차 러 수출 전망 밝다'. 기사 하단의 작성자 이름을 살펴보니 허성태 본인이었다. 원고지 3매 안팎의 깔끔한 무역 리포트. 그가 말한 여섯 개 기사 중 세 개가 2002~2003년도에 쓰여진 것이었다(해당 기사 일부는 포탈 사이트 검색란에서 '[나라밖 경제정보] 허성태'를 검색하면 확인할 수 있다).



-전자회사 러시아 해외 영업팀, 조선소 기획조정실. 그렇게 10년간 일하다 6년 전 오디션을 계기로 배우로의 삶에 뛰어들었어요. 이후 무명 시절은 어땠나요?

"기회가 있으면 뭐든지 하러 다녔어요. 단편영화이든 독립영화이든 참여할 수 있으면 어디든지 뛰어갔죠."

-부산서 서울로 올라온 뒤로 아무래도 경제적인 부분에 어려움이 컸을 텐데요. 무명이다보니 다른 일도 겸해야 했을 것 같고요.

"그렇죠, 안 힘들 수가 없었죠. 아주 조금 남은 퇴직금으로 원룸 하나 구해서 살았어요. 장기적으로 다른 일을 하긴 어려워 단기 아르바이트로 이것저것 했어요. 장난감 포장 아르바이트도 했고요. 기억나는 게 요즘 IPTV에서 몇 번 틀어달라 하면 자동으로 틀어주는 기계가 있잖아요. 이게 출시되기 전에 테스트하는 일이 있었는데요. 그 아르바이트를 자주 했어요. 연기에 도움이 되겠다 싶었거든요. 배우로서 발성과 발음을 테스트해볼 수 있고 단어를 똑바로 발음해야 하는 연습을 할 수 있으니까요. 그러다 보니 아내 혼자 거의 외벌이 해야 하는 상황이었어요. 그럼에도 아내는 '돈은 내가 벌면 되니까 당신 하려는 일에 최선을 다하라'며 끝까지 격려해주더군요. 경제적인 부분은 그렇게 아내 도움을 많이 받았어요. 지금도 그런 아내를 생각하면 너무나 고맙고 미안하고 그래요."

-그러다 천만 영화 '광해, 왕이 된 남자'(2012)에 초단역으로 출연하셨지요.

"그렇죠, 화면에 나온 시간은 1초예요. 4박 5일간 기다리고 연기했는데 15만원 정도 받았던 것 같아요. 이병헌 선생님께서 연기하신 광해군 처남을 취조하고 인두로 지지고 주리 틀던 단역이었죠.(웃음)"

-아무래도 성태 씨가 얼굴을 제대로 알린 계기는 작년 가을일 거예요. '밀정'의 친일 정보원. 아주 실감나게 뺨을 맞으시던데요(웃음). 어떻게 캐스팅된 거예요?

"오디션 본 거죠. 1차 통과하고 2차 때 김지운 감독님과 연기를 같이하는 오디션을 봤어요. 1시간 30분 정도 디렉션 받고 연기했죠. 그때 뭘 어떻게 했는지 도무지 기억이…. 2~3주후에 캐스팅 연락이 왔을 땐 어찌나 기쁘던지요. 말씀하신 뺨 맞는 장면은 제가 설득한 장면이었어요. 송강호 선생님께 2박3일 동안 제 생각을 말씀드리고 약간의 설득을 했어요. 그걸 선생님이 김지운 감독님께 건의드려 다행히 제안대로 찍게 됐고요. 총 8대 정도 맞았던 것 같아요. 2대는 진짜 아팠는데 나머지는 안 아팠어요. 안 아프게 소리 잘 나게 때려주셨거든요(웃음)."

-올 하반기, 어지간한 영화엔 다 출연했네요. '남한산성' '범죄도시' '부라더' 최근엔 '꾼'까지. 이 전부 같은 기간에 찍은 거죠? 거의 다 삭발하고 계시던데.

"맞아요, 네 작품 다 비슷한 시기에 찍었어요. 가장 처음 캐스팅된 게 '남한산성'이었는데 이때 삭발을 한 거죠. 그래서 다른 작품은 못 하겠구나 여겼는데, 외외로 전부 삭발 배우가 필요하다더군요. 특히 '꾼'에선 가발 쓰면 된다고 하니 행운이었고요. 그야말로 올해 가장 행복한 나날을 보내고 있어요. 감사할 따름이에요."

-'꾼'에서 연기한 조두칠은 어떤 캐릭터인 거죠?

"조희팔이라는 실존인물 아시죠. 희대의 사기꾼. 작품 속 장두칠이 이 사람인 거죠. 수많은 사기꾼이 그를 쫓기 위해 합심해요. 잘 짜여진 사기극들이 나오고, 액션신도 있고. 여러 재미 요소가 버무려진 영화예요. 그 중심에 있는 저 장두칠을 모두가 쫓고요."

배우 허성태. <사진=양유창 기자>
▲ 배우 허성태. <사진=양유창 기자>
-지금껏 맡은 배역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게 있나요?

"다 애착이 가지만…. 가장 노력을 많이 하고 공을 많이 기울인 캐릭터가 '남한산성' 용골대였어요. 익숙한 언어로 감정과 정서를 전달하는 게 아니라 일평생 들어보지 못한 만주어를 해야 하니까요. 처음 접한 언어를 다 외워야 하고 감정을 엮어 연기해야 하니 어려웠어요. 도전이었죠."

-요즘 성태 씨를 보면 주변에선 뭐라 그래요?

"아내는 물론이고, 어머니가 특히나 좋아하세요. 아들 자랑할 게 많아졌잖아요. 친척들도 현재 방영하는 드라마 '마녀의 법정'이나 영화 '남한산성' '범죄도시' '부라더' '꾼'에서까지 '내가 알고 지내던 성태가 아닌 것 같다'고들 하세요. 이런 반응을 주시면 저는 참 행복하죠. 이 길을 잘 선택했구나, 나 잘하고 있구나 싶어서요."

-옛 직장 동료들은요?

"지금도 자주 연락해요. 종종 만나기도 하고. 다들 신기해하죠. 저더러 대단하다 하는데, 사실 전 이들이 얼마나 열심히, 그리고 투철히 사는 줄 알기에 '정말 대단한 건 당신들'이라고 얘기해줘요(웃음). 다만 제가 이들에게 작은 기쁨과 대리만족을 주긴 하나봐요. 감사한 일이죠. 그리고 정말이지, 이 모든 건 아내 덕분이에요. 아내의 지지와 격려가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삶이니까요."

허성태는 자신이 출연작이 극장에 걸리면 이른 아침 조조로 한두 번씩 본다고 했다. 스스로의 연기에 대한 모니터링 차원이다. 그러다 서너 번째 찾아갔을 땐 관객들 반응을 유심히 살핀단다. 관객이 놀라거나 호응해주는 모습이 보이면 "아, 내 몫은 잘 전했구나"하는 안도감이 든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제 시작일 뿐이다. 그는 아직 가야할 길이 멀다.

-어쨌든, 올해 소기의 성과는 거진 이뤘네요?

"'2017년의 목표는 '허성태가 참 다양한 역할이 가능하구나'라는 걸 보여주는 거였어요. 앞으로도 끊임없이 입증시켜야죠. 늦은 나이에 데뷔했고 이제 불혹의 나이지만, 몸이 부서져라 연기할 각오는 충분히 돼 있습니다(웃음)."

-그럼, 궁극적인 목표는 뭔가요?

"죽기 전에 꼭 해보고 싶은 연기가 있어요. 영화 '해바라기' '아저씨' 혹 보셨나요? 사랑하는 가족, 소중한 사람을 누군가 해했을 때 분출하는 폭발적인 감정들. 김래원, 원빈 선배가 보여준 그 엄청난 연기를 저도 언젠가는 꼭 보여드리고 싶습니다."

이 모든 건 불가능한 일도 아니리라. 열정 가득한 그의 이글거리는 눈빛이 그리 말해주고 있었으므로.

[김시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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