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수진 은퇴작 '오네긴' 존프랑코의 드라마 발레

  • 김연주
  • 입력 : 2017.12.02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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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스테이지-100]유니버설발레단(UBC)의 스타 부부 황혜민과 엄재용은 지난달 26일 '오네긴'으로 은퇴했다. 강수진 국립발레단장 역시 현역 무용수 때 은퇴작으로 오네긴을 선택한 바 있다.

러시아 대문호 알렉산드르 푸시킨의 동명의 원작을 무대로 옮긴 드라마 발레 '오네긴'(안무 존 프랑코)은 바람둥이 기질의 자유분방한 도시 귀족 오네긴과 진실한 사랑을 꿈꾸는 순진한 시골 처녀 타티아나의 엇갈린 사랑을 그린 작품. 발레리나들이 '오네긴'을 은퇴작으로 선택하는 이유는 드라마발레의 정수로 꼽히는 만큼 기술뿐만 아니라 표현력과 연륜이 더해져야 제대로 소화할 수 있는 작품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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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둥이가 순진한 소녀를 농락하더니 뒤늦게 후회하며 다시 구애하지만 소녀는 이미 딴 남자의 부인이 되어 늦었다. 어찌 보면 조금 '막장'스럽고 지극히 평범한 스토리라인의 이 작품이 관객의 마음을 사로잡는 데는 '발레 안에 잘 스며든 섬세한 드라마의 힘' 덕분이라 할 수 있다. 프랑코는 단순한 스토리 속 복잡한 인물들의 감정을 섬세하게 포착해 동작 하나하나마다 불어넣어 인물들을 따라 관객들의 마음도 함께 춤추게 한다. 무언의 춤이 마치 대사처럼 들리게 만들어 발레 마임이나 전문용어를 모르는 초심자도, 원작의 내용을 모르는 관객도 쉽게 이해하고 이야기 속에 몰입할 수 있다.

예를 들어 타티아나는 1막에서 바닥에 누운 자세로 관객 앞에 등장한다. 이 작품 전까지 발레의 여주인공이 이런 모습으로 등장한 적은 없었다. 하지만 이런 모습은 몽상을 좋아하는 책벌레 소녀 타티아나의 모습을 유쾌하면서도 효과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연극적 요소는 주변 인물의 움직임에서도 볼 수 있다. 2막에서 오네긴과의 결투를 앞둔 렌스키의 춤은 아라베스크와 피루엣이 빠르고 느리게 반복되면서 복잡한 심경과 우울함을 대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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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미는 '파드되(2인무)'다. 1막의 '거울 파드되'와 3막의 '회한의 파드되'는 대칭구조를 이루며 오네긴의 드라마를 절정으로 이끌어 간다. 1막 '거울 파드되'에서 첫사랑에 들뜬 타티아나는 거침없는 리프트와 점프로 열정적이고 순수한 면모를 드러낸다. 또 오네긴은 어깨 위에 타티아나의 몸을 기대게 하고 한 바퀴 돌려 들어 올리거나 한 손으로 타티아나를 높이 들어 올리는 등 고난이도 테크닉으로 고조된 여주인공의 감정을 한껏 느끼게 해준다.

하지만 3막에서 오네긴은 매달리고 타티아나는 갈등하면서도 단호하게 거절하는 '회한의 파드되'에서는 오네긴이 타티아나의 뒤에서 그녀의 팔을 붙잡고 매달리거나 서로의 몸을 뒤엉켜 하늘을 향한 채 누워있는 등 온몸을 다해 타티아나의 애증과 갈등, 오네긴의 구애와 집착을 표현해 낸다. 특히 오네긴을 향한 첫사랑의 감정이 남아 있음을 깨달은 타티아나의 내적 갈등을 표현하는 건 고난이도 테크닉뿐만 아니라 농밀한 연기를 필요로 하는 장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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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6일 황혜민과 엄재용의 고별무대에서도 '회한의 파드되'가 단연 압권이었다. 서로를 끌어당기다 밀쳐내고 그러다 다시 속절없이 이끌려 가는 두 연인의 애절함에 객석은 숨죽인 채 눈물을 훔쳤다. 후회와 사랑을 간청하는 오네긴의 간절함을 엄재용은 단단하고 격정적인 동작으로, 사랑하지만 뿌리쳐 내야만 하는 타티아나의 비탄을 황혜민은 가녀리지만 결연한 손짓으로 엮어냈다. 두 사람은 마치 한 몸처럼 무대를 유영하며 소리 없이 몸으로 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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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보다 타티아나의 얼굴 위로 황혜민의 회한이 읽혀 더 눈물겨웠다. 황혜민은 오네긴(엄재용)과 더불어 관객과 함께 춤을 췄다. 16년, 무대에서 보낸 한평생이었다. 때로는 너무 힘겨워 도망치고 싶었을 테지만 가능만 했다면 영원히 춤추고 싶었을 테다. 오네긴과 이 순간이 영원하기를 바라는 타티아나의 슬픈 사랑이 마치 지금 이 마지막 춤이 끝나지 않기를 바라는 황혜민의 마음 같았다.

발레는 '오네긴'이란 제목과 달리 타티아나의 감정을 중심으로 흘러간다. 프랑코는 결말도 바꿨다. 원작 오네긴에서는 타티아나가 아이들에게 키스하는 모습으로 가정을 지켜내는 것처럼 끝나지만 발레에서는 두 주먹을 불끈 쥐고 눈물을 흘리며 끝맺는다. 처연하면서도 결연한 모습이다.

우리 나이로 올해 마흔 살이 된 황혜민 이제 토슈즈를 벗고 출산 등 여자로서의 삶을 새롭게 걸어간다. 엄재용은 아내와 함께 UBC를 떠나지만 여전히 현역 무용수로서 아내의 남은 꿈을 지원한다. 이날 객석은 눈물로 그들의 마지막을 축하했고 끊이지 않는 박수로 둘의 새로운 길을 축복했다.

[김연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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