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무용과 만난 발레... 더 자유로워졌죠"

  • 김연주
  • 입력 : 2017.12.09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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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스테이지-101] 20년 만에 '백조' 재현한 김용걸·김지영

"발레, 이렇게 가식적인 예술이 있을까요?"

7일 국립현대무용단의 '댄서하우스'의 첫 번째 무대를 끝낸 뒤 마이크를 잡은 김용걸과 김지영이 관객에게 물었다. 20년 만에 두 사람이 다시 '백조'로 호흡을 맞춘 직후였다.

무대에 앞서 설치된 스크린에 20대의 김용걸과 김지영이 고(故) 임성남 국립극단 초대단장의 지휘에 맞춰 백조를 연습하는 장면이 나왔다. 펄쩍펄쩍 뛰어다니며 기량을 뽐내고 싶은데 음악이 너무 느려 불만이었다던 20대의 김용걸과 음악을 느끼라는데 도무지 무슨 말인지 이해가 안 갔다는 앳된 20대의 김지영. 97년 국립발레단에서 두 사람이 처음으로 파트너로 만나 무대를 준비하던 때였다. 이후 서로가 서로에게 최고의 파트너로 돈키호테, 라 뱌야데르, 로미오와 줄리엣 등 숱한 무대에서 호흡을 맞췄지만 '백조'에서 호흡을 맞춘 건 이 날이 딱 두 번째였단다.

20년 전과 똑같은 춤을 추지만 어딘가 다르다. 그때는 이해가 안 가던 임성남 단장의 지도가 이제는 너무 당연하게 몸에 배어 나온다. 하지만 20대에서 40대로 지나온 시간과 변화한 몸과도 마주해야 한다.

발레는 격식과 형식의 예술. 하지만 현대무용과 만나 둘은 완벽한 무대 세팅과, 화려한 분장, 정형화된 움직임은 던져버리고 현재의 모습과 가장 어울리는 춤을 찾아가기로 한다.

두 사람은 이날 '백조'를 포함해 총 세 개의 무대를 선보였다. 나머지 두 작품은 모두 김용걸이 직접 안무한 작품이었다. 두 번째 무대 '여정'은 김용걸이 파리오페라 발레단 견습단원 3년간을 담은 작품. 국립발레단 최고 발레리노서의 영광을 버리고 먼 타향에서 모든 걸 처음부터 다시 시작했던 힘겨웠던 당시를 회고하는 춤이었다. 튀튀(발레리나가 착용하는 스커트)를 벗어 던진 김지영과 선글라스를 쓴 김용걸은 고전발레와는 전혀 다른 강렬한 사위를 보여줬다. 유혹하다가 도망가고, 이끌려오는 듯 하다가도 순식간에 도망쳐버린다. 연인 사이일까, 춤과 댄서의 관계일까, 어쩌면 삶 그 자체 일지도 모른다. 두 사람의 한 평생이 파노라마처럼 짧은 무대 안에 스쳐지나가는 듯했다. 두 사람은 한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춤 때문에 너무 힘들었고 또 더없이 행복했다고."

세 번째 무대 키워드는 '배신'이었다. 두 사람은 "내 몸이 나를 배신한다"며 웃었다. 40대에 들어선 두 사람. 기량도 늘었고 표현력도 더 깊어졌는데 웬걸, 몸이 따라 주질 않는다.

마지막 무대 '산책'은 김용걸이 있는 힘껏 춤췄기에 이제 조금씩 삐걱거리는 몸으로 여전히 무대에 서기 위해, 자기 자신을 위해 쓴 작품이란다. 김용걸은 "왼쪽 발목을 더 이상 쓸 수 없다. 하지만 계속 춤추고 싶었다. 그래서 나에게 최적화된 작품을 내가 창작했다. 무용수로서 김용걸의 생명 연장술인 셈이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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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얀색 원피스와 검은색 턱시도를 차려 입은 김지영과 김용걸은 무대 위를 가볍게 노니며 춤을 췄다. 화려한 동작이나 기량을 뽐낼 고난도 동작은 없었지만 아기자기한 구성과 여유로운 흐름은 한 폭의 풍경화 같았다. 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편안해지는 작품이었다. 무엇보다 두 사람 얼굴에서 장난스러운 미소가 떠나지를 않았다. 관객들도 마주 웃었다.

현대무용과 만난 '발레'는 완벽하지는 않았지만 대신 솔직했다. 연기 없는 연기를 펼쳐보였다. 이날 둘에게 '최고의 무대'는 아니었을지 모르나 '가장 편안한 무대'였음은 틀림없어 보였다.

국립현대무용단의 '댄서하우스'는 안성수 국립현대무용단 예술감독이 던진 "춤은 무엇일까" "왜 여전히 춤을 추는가"란 질문에 대한 6인의 무용수의 답을 담았다. 시간에 맞서 오래도록 무대 한가운데서 빛을 만들어왔던 발레리노 김용걸과 발레리나 김지영. 삶의 정점에서 가장 뜨거운 에너지를 분출하는 국립현대무용단 시즌 무용수 성창용, 최수진. 그리고 자신의 몸동작에 깃든 한국무용의 정서를 품고 연극과 영화 무대에서 활동하는 배우 김남건과 한예리. 여섯 춤꾼의 진솔한 이야기를 만날 수 있는 작품이다. 12일까지,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

[김연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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