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을 나는 당당한 그대 한국 여성 조종사의 도전

  • Flying J
  • 입력 : 2017.12.22 1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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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바이 파일럿 도전기-33] "고등학교 때부터 세계여행을 하는 게 꿈이었어요. 그에 맞는 직업을 선택하다 보니 여기까지 오게 됐네요."

꿈에는 나이가 없다고 하지만 그것을 실제로 실현하는 사람은 몇이나 될까. 아랍에미리트(UAE) 소재 에어아라비아 항공에서 부기장으로 일하고 있는 김혜성 씨(35)에게 한국에서도 거의 찾아보기 힘든 여자 조종사 일을 어떻게 여기 UAE에서 하게 됐는지를 묻자 잠깐 고민하는 듯 하더니 이렇게 대답했다.

소득이 높고 세계 각국을 누비는 항공기 조종사는 선망 직업 중 하나지만 아직 여성의 진출은 매우 미미하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2012년부터 2016년까지 5년간 국내에서 항공기 조종사 자격증을 취득한 8734명 가운데 여성은 전체 중 352명에 불과한 것으로 조사됐다. 비율로 치면 100명 중 4명이다.

그렇다면 국내가 이 정도인데 외국 항공사에서 일하는 한국인 여자 조종사는 얼마나 될까. 아마 더 손에 꼽을 수 있는 정도일 것이다. 그를 만나 흔치 않은 외항사 여자 조종사의 삶에 대해 물어봤다.

에어아라비아항공 김혜성 부기장
▲ 에어아라비아항공 김혜성 부기장
-자기소개를 해 달라.

▷안녕하세요. UAE를 베이스로 하는 에어아라비아 항공에서 현재 부기장(First Officer)을 맡고 있는 김혜성입니다. 이제 막 이곳에서 부기장 업무를 한 지 반년 정도 된 새내기 조종사고요. UAE에 정착한 지는 올해로 8년 정도 된 것 같네요. 조종사 세계에 들어오기 전에는 에미레이트항공 승무원을 4년 반 정도 했습니다.

(각주:우리나라에 취항하지 않아 생소할 수 있는 에어아라비아 항공은 중동지역 최초 최대의 저비용항공사(LCC)다. 전 세계 130여 곳 취항지를 두고 있고 지난해 약 800만명이 이용했으며 취항 이래 한 번도 적자가 나지 않은 건실한 항공사다.)

에어아라비아항공 격납고
▲ 에어아라비아항공 격납고
-항공업계에서 꽤 오래 있었다.

▷고등학교 때부터 세계여행을 하는 것이 꿈이었어요. 어떻게 하면 '여행을 하면서 직업생활을 할 수 있을까' 고민을 많이 했죠. 그에 맞는 직업 선택을 하다보니 승무원이 제격이었어요. 그리고 국내 항공사보다 외항사를 동경해서 처음에 에미레이트항공으로 오게 됐습니다. 정말 만족스럽게 비행을 많이 다녔어요.

(기억나는 에피소드가 있다면?) 파리에 비행을 간 적이 있었는데, 당시 파리에서 너무 피곤해서 크루들이 다시 모이는 픽업 시간에 늦어버렸어요. 놀란 심장을 부여잡고 겨우겨우 두바이행 비행기에 올라타서 막 서비스를 하려 하는데 다른 크루가 "여기에 UAE 공주가 탔다"고 하는 거예요.

에미레이트 크루들에게 내려오는 전설 중 하나가 "UAE 로열패밀리가 비행기에 타면 용돈을 하사해준다"는 얘긴데, 그 전까지 솔직히 반신반의했거든요. 근데 이 공주가 그날 봉투를 꺼내더니 2000디르함(약 60만원)을 봉투에 담아 모든 크루들 파일럿까지 모두 금일봉을 주는 거예요. 그렇게 '성은'을 입었던 기억이 나네요(웃음).

(그 뒤에 또 만난 적 있었나요?) 아니요. 그게 처음이자 마지막이었어요. 이 공주가 원래 쇼핑을 좋아해서 두바이~파리 행 비행기에 자주 탑승한다는 얘기를 들었거든요. 근데 그렇게 만날 줄은 몰랐네요.

에미레이트 승무원으로 근무할 당시 김씨의 모습
▲ 에미레이트 승무원으로 근무할 당시 김씨의 모습
-그런데 왜 조종사로 진로를 변경했나.

▷전체적으로 다 좋았지만 아무래도 승무원 역할이 계속 몸을 써야 하다보니 육체적으로 너무 힘든 부분이 있었고 특히 '내가 비행기가 너무 좋고 비행 생활이 너무 좋은데 과연 언제까지 이걸 할 수 있을까. 정년 때까지 나는 과연 비행기를 탈 수 있을까. 체력적으로 가능할까' 이런 고민을 많이 했어요.

그러다가 에미레이트항공 조종실인 칵핏(Cockpit)에 방문해서 캡틴(Captain)이 비행하는 모습을 뒤에서 직접 보기도 하고 그들한테 상담도 받고, 고요한 조종실에 이따금 승무원이 방문하면 참 좋아하더라고요(웃음). 그들에게 계기 보는 법이나 차트 보는 법도 간단히 배우고 자주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칵핏에 대한 두려움을 낮추게 됐어요. 생각해보면 자연스럽게 직업 전환이 이뤄진 것 같네요.

경비행기 앞에서
▲ 경비행기 앞에서
-조종사 훈련 과정은 어땠나.

▷3년 가까이 진행된 빡빡한 훈련 과정에서 정해진 시간 안에 과정을 모두 통과하지 못하면 처음부터 다시 해야 하고, 심할 경우에는 아예 떨어져서 포기해야만 했던 학생도 있었고요. 또 떨어진다는 것 자체도 그랬지만 공부하는 동안 소득이 전혀 없다보니 금전적 부분도 매우 압박이었고요.

여자라서 불편한 점은 별로 없었는데, 오히려 여자 조종훈련생으로서 뭐가 잘 안 풀리거나 이해가 되지 않을 때 '내가 여자라서 그런가' 이런 생각이 많이 들었어요. '내가 여자라서 같이 훈련받는 쟤네들보다 공간능력이나 지각능력이 떨어지나?' 같은 생각 말이죠. 지금 생각해보면 여자라서 그런 게 아니라 원래 그 공부가 어렵고 과정이 힘든거였는데 나 스스로 그렇게 한정 짓고 생각을 했던 것 같네요(웃음).

(각주:김씨가 받은 조종사 훈련 과정은 현재 내가 받고 있는 과정과 같다. 훈련 과정에 대한 자세한 내용이 궁금하면 본 연재 지난 화들을 참고하자.)

캡틴에게 비행 관련 질문을 받고 답하고 있다
▲ 캡틴에게 비행 관련 질문을 받고 답하고 있다
-힘든 점은 어떻게 극복했나.

▷먼저 같은 길을 걸었던 여자 선배가 있어서 도움이 많이 됐어요. 당연히 처음에는 누구나 그렇고 그것도 하나의 과정이라서 지금 낙담할 필요가 없다며 저를 잘 토닥여 주었죠. 그리고 따로 극복하려고 애쓰기보다는 하루하루 생활에서 최선을 다하려 했어요.

조종석 뒤에 앉아서 비행과정을 참관하고 있는 김씨
▲ 조종석 뒤에 앉아서 비행과정을 참관하고 있는 김씨
-UAE에서 여자 조종사로 일한다는 건 어떤지.

▷주위를 보면 은근 이 나라에 여자 조종사 비율이 높아요. 원래 이 직업군 자체가 남자들이 대다수긴 하지만 그래도 한국보다는 훨씬 비율이 높은 듯하네요. 이곳 생활도 딱히 불만은 없고, 에미레이트 승무원 때부터 사귀었던 친구들도 많이 있고 해서 좋아요.

이 나라의 특징이라면 현지인 비중이 굉장히 낮은 나라라서 내가 소수자로 살고 있지만 소수자라는 생각을 안 해도 된다는 점? 그리고 없는 게 없다는 점도 있고요. 사막 위에 세워진 도시긴 한데 내가 원하는 건 다 할 수 있어요. 유명 브랜드 제품이나 IT기기도 거의 항상 동시에 출시됩니다(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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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럿의 하루상을 간략히 설명한다면.

▷파일럿은 밤낮없이 비행이 있기 때문에 몸관리가 첫째입니다. 비행시간에 맞춰서 자기 몸을 관리하고, 체크인 시간에 수면조절을 하고, 일어나서 출발 1시간 전에 브리핑룸에 가야 해요. 저는 2시간 전에 미리 가는 편이고요.

기장이 오기 전에 부기장이 비행기 상태, 날씨, 노트, 혹시나 회항할 수 있는 루트와 가능한 공항 등을 모두 다 체크하고 그날그날 공항에 특별한 상황, 예를 들어 택시웨이가 막혔다는 것 등을 NOTAM을 보면서 체크해야 합니다. 그리고 모든 가능성을 체크하고 손님을 맞을 준비를 하면 됩니다.

또한 비행기에 연료를 얼마나 실을지를 기장하고 상담해서 그날 연료량을 정하는 것도 파일럿의 역할입니다. (왜 그렇죠?) 연료량을 정할 때는 효율성과 퍼포먼스를 동시에 고려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기름을 많이 실으면 그만큼 비행기가 무거워져서 연료 효율성이 좋지 않고 비용이 증가하기 때문이죠. 비행기가 뜰 수 있는 무게와 내리는 무게는 서로 다르다는 점도 있고요.

-앞으로의 계획은.

▷아직 초보 파일럿에 불과하기 때문에 거창하게 미래에 대한 계획은 자세히 세우진 못했구요. (그래도 하나 말해준다면?) 음…연애?(웃음)우선 어서 빨리 기장이 돼야겠다 이런 계획보다는 일단은 지금도 꾸준히 배우는 단계이기 때문에 초심대로 잘 배워서 비행을 잘할 수 있는 조종사가 되고 싶네요. 진짜 몇 십년 장기적으로는 나중에 후학을 양성하는 비행교관을 해보고 싶습니다.

-하고싶은 말이 있다면

▷원래 비행기 조종사 자체가 남자가 많은 직업군인데, 따지고 보면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거든요. 특히 여자들에게 '한계를 스스로 만들지 말라'는 말을 하고 싶어요. 물론 처음에는 주어진 환경 속에서 더 힘들고, 덜 힘들고의 차이는 있겠지만, 누구나 익숙해지면 잘할 수 있는 일이에요. 현재 여자 조종사가 많이 없기 때문에 많이 도전해서 함께 같은 길을 걸으면 좋겠습니다.

[FlyingJohan/john.won320@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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