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은 정의를 위한 '논쟁의 콜로세움'이 되어야

  • 김기철
  • 입력 : 2018.01.08 15:13
  • 프린트
  • 이메일
  • 페이스북
  • 트위터
  • 카카오스토리
  • 공유
프리미엄 첨부 이미지
대법원, 이의 있습니다 (권석천 지음, 창비 펴냄)

[김기철의 책으로 세상읽기-21] 나는 대법원 판결들이 늘 마뜩잖다. 판결문에 온갖 법리들을 가져다 붙이지만 결국은 '현실에 대한 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한 어색한 봉합'이거나 '이미 사회적 변화의 방향이 결정난 일에 대한 뒤늦은 추인'인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바람이기보다는 풀이었다.

여성으로 성전환한 트랜스젠더가 똑같이 강간을 당했는데 1996년 대법원 판결에서는 강간죄가 성립되지 않았다가 2009년 판결에서는 강간죄로 인정했다. 일반 시민들의 인식이 변화한 후에 법원이 이를 뒤늦게 법적으로 추인한 것이다.

또 종손이 제사 주재자가 된다고 해온 관습법이 헌법 원리에 반하므로 무효라고 판결해 놓고도 돌아가신 아버지의 유해는 장남에게 넘겨줘야 한다고 대법원은 판결을 내리기도 했는데 이것은 '어색한 봉합'에 해당한다.

이는 사회적 통념을 바탕으로 한 법체제의 안정성을 지켜내야 하는 사법부의 태생적 한계 때문이다. 안정을 택할 것인지 변화를 인정할 것인지 법률의 형식을 따를 것인지 법이 의도한 실질을 쫓을 것인지 어쩌면 법관의 숙명적 과제인지도 모른다.

김영란 전 대법관도 '판결을 다시 생각한다'라는 책에서 이런 고민을 털어놨다.

"형식을 무시하고 실질을 들여본다는 것은 법률의 자의적인 적용을 불러올 수 있으므로 그만큼 위험할 수도 있다. 그러나 형식을 가장해 추구하는 실질이 명백히 드러난 경우에까지 형식주의만을 추구하는 것은 무슨 의미가 있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국가의 최고 법원 구성은 그 사회의 가치 지형, 이념 지형을 대표한다. 엄격하게 말하면 그 사회의 가치 지형과 이념 지형의 변화에 후행하면서 궁극적으로 그 지형을 완성한다.

민주주의의 완성은 다양한 가치를 반영하는 대법원의 구성으로 완성되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의 민주주의는 아직 미완이다. 우리 사회의 가치와 이념 지형을 대표해야 할 대법원의 구성이 지나치게 획일적이기 때문이다. 가치와 이념 지형의 변화에 후행한다지만 그 격차도 너무 크다.

이용훈 대법원장(가운데)과 김영란, 양승태 대법관. 양승태 대법관은 이용훈 대법원장에 이어 대법원장을 지냈다.
▲ 이용훈 대법원장(가운데)과 김영란, 양승태 대법관. 양승태 대법관은 이용훈 대법원장에 이어 대법원장을 지냈다.

◆이용훈 코트의 성공과 실패

노무현 대통령은 우리 사회의 다양한 가치들을 반영할 수 있도록 대법원의 구성을 다양화하는 것을 중요한 개혁 목표로 삼았다. 이를 위해 노 대통령은 이용훈 대법원장을 임명했고 뒤이어 김영란 박시환 전수안 김지형 이홍훈 대법관을 임명했다. 독수리 오남매로 불리는 다섯 명의 비교적 진보적 성향의 대법관들이 임명되면서 '이용훈 코트'는 우리 사회의 다양한 가치들을 반영하려고 노력했다.

저자인 권석천 기자
▲ 저자인 권석천 기자

권석천 기자의 '대법원, 이의 있습니다'는 이런 '이용훈 코트'가 그려낸 풍경과 그 안에서 벌어진 열띤 논쟁에 대한 책이다. 권 기자는 이용훈 코트를 '논쟁의 콜로세움'이었다고 결론 내렸다. 판결 결론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고 그 결론에 이르기까지 치열한 논쟁을 거쳤고 논쟁이라는 과정 자체의 의미가 컸다는 의미다.

"입장과 입장이 격렬하게 부딪치고 깨지면서 한국 사법부 역사에서 처음으로 '입장의 다양성'을 실험했기 때문이다. 그것이 이용훈 코트가 남긴 위대한 이정표일 것이다."

여기에는 이용훈 대법원장의 의지가 강하게 반영됐다. 이용훈 대법원장은 각하냐, 기각이냐, 파기냐를 떠나 전원합의체의 판결이 사회에 기준을 제시하는데 의미가 있다고 본 것이다. 그래서 이용훈 대법원장은 전원합의를 하다가도 소수의견을 적극적으로 피력할 것을 요구하고, 또 소수의견을 써볼 것을 권유하기도 했다. 법률을 왜 그렇게 해석했는지를 입체감 있게 설명하려면 다수의견과 함께 소수의견도 있는 편이 낫다고 생각했다. 다수의견이 '살아 있는 법'이라면 소수의견은 앞으로 사회가 나아갈 방향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이용훈 대법원장은 이렇게 얘기했다. "소수의견이 있어야 모양이 좋다는 차원이 아니다. 대법원은 논의의 장을 열어주는 역할도 해야 한다."

이용훈 대법원장은 재임 중 지방법원을 돌며 법원과 법관의 역할에 대한 자신의 생각들을 털어놨다. 당시 보수 언론들은 이를 주로 '법원과 검찰 간의 갈등'이라는 프레임으로 보도하고 논란을 키웠지만 이용훈 대법원장 연설의 핵심은 '공판중심주의'와 '사법부 독립'에 대한 호소였다.

예를 들어 이런 주장들이다.

"(민사)재판이 제대로 된 모습을 갖추려면 판사들이 아예 검찰의 수사기록을 던져버려야 한다. 그동안 법원은 수사기관의 조서로 유무죄를 확정해왔는데 검사들이 밀실에서 받은 조서가 어떻게 공개된 법정에서 나온 진술보다 우위에 설 수 있느냐. 앞으로는 법정에서 국민을 설득해야 한다."

"판결문을 쓰는데 시간을 보낼 것이 아니라 법정에서 재판을 길게 하고 판결문을 간단하게 써라. 중요한 것은 결론이 그렇게 나올 수밖에 없다는 것을 재판 과정에서 납득시키려는 노력이다. 긴 판결문 받아보려고 재판받는 사람이 어디 있느냐."

언론은 "수사기록을 던져버려야 한다"는 주장만 확대해 갈등을 부추겼을 뿐 '구술주의'의 중요성에는 전혀 주목하지 않았다.

이용훈 대법원장은 단지 말에만 그치지 않고 민사소송규칙 제28조 2항에 "법원은 변론에서 당자사에게 중요한 사실상 또는 법률상 쟁점에 관하여 의견을 진술할 기회를 주어야 한다"는 규정을 넣어 당사자의 참여권과 구술권을 명확하게 보장했다. 하지만 이용훈 대법원장 퇴임 후 법원의 공판중심주의와 구술주의는 다른 모든 개혁 조치와 함께 후퇴했다.

법원 판결에 의한 사회 변화는 행정부의 주도로 이루어지는 변화보다 비록 속도는 느리지만 더 단단하다. '판례'라는 이름으로 변화의 방향을 되돌릴 수 없도록 매듭을 짓기 때문이다. 이용훈 대법원장과 '독수리 오남매' 시절 대법원의 성공과 실패도 그런 의미에서 의미가 크다. 이들이 오른 지점이, 혹은 주저앉은 지점이 새로운 도전을 위한 베이스캠프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전수안 대법관이 퇴임사에서 알피니즘의 거장 라인홀트 메스너를 묘사한 작가 김훈의 글을 인용한 뜻도 여기에 있을 것으로 짐작된다.

"그는 자신과 싸워서 이겨낸 만큼만 나아갈 수 있었고, 이길 수 없을 때는 울면서 철수했다."

◆김명수 코트의 방향은?

문재인 대통령이 야당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김명수 대법원장을 임명한 것은 '이용훈 코트'가 멈춰 섰던 자리에서 '사법개혁'을 위한 등정을 시작해 줄 것을 바라는 마음 때문이었을 것이다.

권석천 기자가 문재인정부 출범에 맞춰 이 책을 쓴 이유도 이와 맥을 같이 한다. 권 기자는 에필로그에 이렇게 적었다.

"대통령 노무현이 서 있던 자리에 이제 대통령 문재인이 서 있다. 우리법연구회가 있던 자리에 국제인권법연구회가 있다. 검찰도 그때 그 자리로 돌아와 있다. 이 지독한 기시감 속에서 개혁이 어떻게 제 갈 길을 찾아갈지 집요하게 지켜봐야 한다. 그 과정에 이용훈 코트의 경험이 도움을 줄 것이라고, 나는 믿는다."

그런 의미에서 이용훈 대법원장과 독수리 오남매의 대법관직 퇴임사를 음미해 볼 필요가 있다. 그들의 퇴임사는 그들이 멈춘 자리에서 쓰여졌기 때문이다.

독수리 오남매 중 한 명인 박시환 전 대법관은 퇴임사에서 이렇게 주장했다.

"다수의 이익과 행복을 좇아 결론 내리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겠지만그 과정에서 소수자, 소외된 자, 약자의 행복이 그 대가로 지불되도록 해서는 안 된다는 점을 꼭 기억해주시기 바랍니다. 소수자, 약자의 아픔에 귀를 기울이기 위해서는 소수자, 약자의 처지에 공감을 하는 분들이 법관 속에 포함되어 있어야 하고 특히 최고 법원을 구성하는 대법관은 반드시 다양한 가치와 입장을 대변하는 분들로 다양하게 구성되어야 함을 다시 한 번 강조하고 싶습니다."

문재인정부 들어 '신고리 공론화 위원장'을 맡기도 했던 김지형 대법관은 법관의 독립을 강조했다.

"법관의 독립은 생명과 같습니다. 이것을 잃으면 생명을 잃는 것이니 법관은 스스로 이를 지켜내야 합니다. 그러나 법관의 진정한 독립은 법관이 외로이 법과 정의를 제대로 선언하는 책무를 다할 때 지켜낼 수 있다는 생각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권 기자는 책 말미에 "정의는 명사가 아니다. 살아 움직이는 동사다"라고 적었다. '대법원, 이의 있습니다'는 사법개혁이라는 목표를 향한 등정의 '셰르파(sherpa)'로 삼기에 충분하다. 셰르파가 말한다. "멈추지 않는 한 실패하지 않는다."

[김기철 기자]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