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정현의 위상과 3년 후 현재 정현의 위상

  • 정지규
  • 입력 : 2018.01.23 1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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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현 /사진=EPA연합
▲ 정현 /사진=EPA연합
[쇼미 더 스포츠-73] 한국 테니스의 희망 정현이 드디어 호주오픈에서 큰 사고를 쳤다. 한국 최초로 메이저 테니스대회 8강 진출이라는 쾌거를 거둔 것. 그것도 커리어 그랜드슬램과 4대 메이저 대회 10회 이상 우승을 거둔 살아 있는 전설, 노바크 조코비치를 상대로 16강전에서 3대0 승리를 거뒀다. 물론 조코비치가 팔꿈치 부상에서 막 회복해 대회에 참가했지만 정현의 수준 높은 경기력은 충분히 박수를 받을 만했다. 정현의 계속된 선전을 기대하면서 한번 시곗바늘을 3년 전으로 돌려보려고 한다.

2015년 1월 남자프로테니스(ATP) 투어는 2015년 기대가 되는 '10대 선수' 베스트5를 선정했다. 베스트5는 20세가 되지 않은 10대 선수 중에서 세계랭킹 100~200위권에 있는 선수 5명이었는데, 알렉산더 즈베레프(독일·당시 136위, 17세·현재 4위), 타나시 코키나키스(호주·당시 150위, 18세·현재 216위), 니시오카 요시히토(일본·당시 156위, 19세·현재 168위), 정현(한국·당시 173위, 18세·현재 58위), 카일 에드먼드(영국·당시 194위, 19세·현재 49위) 등이 이름을 올렸다. *현재 세계랭킹은 1월 15일자 기준.

*닉 키리오스(호주·당시 50위, 19세·현재 17위)와 보르나 코리치(크로아티아·당시 95위, 18세·현재 46위)는 당시 이미 100위권 내에 있어 이 베스트5에는 빠져 있었다.

정현 /사진=PENTA PRESS 연합뉴스
▲ 정현 /사진=PENTA PRESS 연합뉴스
당시 한국 선수로는 유일하게 이름을 올린 정현은 그 해 ATP투어의 예상을 배신하지 않았다. 2014년에 자신의 첫 번째이자 한국선수로는 다섯 번째 챌린지대회 우승과 아시안게임 금메달로 군 문제를 해결한 정현의 2015년은 시작부터 거침없었다. 173위로 2015년을 시작한 정현의 2015년 마지막주 세계랭킹은 51위로 1년 동안 무려 122계단이나 뛰어올랐다(정현의 2015년 초 세계랭킹은 베스트5 중 4위였지만, 2015년 말에는 가장 높은 순위로 시즌을 마쳤다). 2015년 말 기준으로 정현보다 높은 순위인 선수들 중에서 정현보다 어린 선수는 없었으며, 1년 전까지만 해도 한발 앞서가고 있던 키리오스, 코리치와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되었다.

*정현 외에도 2015년 말 기준으로, 즈베레프 83위(53위 상승), 코키나키스 80위(70위 상승), 에드먼드 102위(92위 상승), 니시오카 117위(39위 상승) 등 10대 유망주 베스트5 모두가 2015년 초 ATP투어의 기대에 부응했다.

소위 정글로 비교되는 ATP투어에서는 신예들의 비중이 다른 스포츠 종목만큼 높지 않다. 현 세계랭킹 기준으로도 10위권 내에 30대가 5명, 20대가 5명이고, 평균 나이 또한 29세로 꽤 높은 편이다. 10위권 내에 25세 미만 선수는 즈베레프가 유일하며, 1위 라파엘 나달과 2위 로저 페더러는 각각 32세, 37세다. 100위권으로 범위를 넓혀도 20대(10대 포함)와 30대의 비중은 정확히 50대50이며, 평균 나이 또한 마찬가지로 29세에 이른다. 테니스의 다이내믹함과 엄청난 체력 소모를 생각한다면 좀 의외다.

사실 ATP투어와 세계 테니스계 입장에서 볼 때 이러한 상황이 그다지 좋은 것만은 아니다. 모든 스포츠가 그러하듯 기존 스타들 외에 새로운 스타가 끊임없이 발굴돼야 해당 종목에 생기가 돌며 인기와 관심이 올라가기 마련이다. 하지만, 2000년대 중반부터 세계 테니스계를 지배하던 4대 천왕인 나달과 페더러, 조코비치, 앤디 머리 등은 여전히 20위권 내에 랭크되며 건재함을 과시하고 있다. 참고로 2005년 7월 25일자 세계랭킹 1·2위는 각각 페더러와 나달이있고, 13년이 지난 2018년 1월 15일자 세계랭킹 1·2위 또한 나달과 페더러로, 두 선수는 순위만 바뀌었을 뿐, 여전히 최고의 선수들로 세계남자 테니스를 호령하고 있다.

사실, 남자 테니스계의 더 큰 부흥과 발전을 위해서는 20대 초반 유망주의 활약과 선전이 절실하다. 그런 점에서 즈베레프는 ATP투어에서 보물과도 같은 존재다. 1997년생인 즈베레프는 아직 21세에 불과하지만, 조코비치 등 최고의 선수들을 이기며 세계 테니스계의 신선한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즈베레프의 무서운 상승세는 나달 이후 최고로 평가받고 있으며, 그런 즈베레프를 정현이 호주오픈 3회전에서 이겼다는 것은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것 이상의 큰 의미를 갖는다. 더군다나 정현은 지난해 바르셀로나 오픈 16강에서도 즈베레프를 2대0으로 셧아웃시킨 바 있다.

*사실 즈베레프는 주니어 시절에 정현에게 아픔을 줬던 선수다. 2013년 윔블던 주니어 남자 단식에서 정현은 1994년 윔블던 전미라, 1995년 호주오픈 이종민, 2005년 호주오픈 김선용에 이어 메이저대회 주니어 단식 부문에서 네 번째로 준우승을 자지했다. 이를 계기로 국내외 테니스계 관심을 한 몸에 받던 정현은 2014년 주니어 신분으로는 마지막으로 호주오픈 남자 단식에 도전한다. 당시 국내에서는 정현이 그 누구도 이루지 못한 주니어 단식 우승을 이를 것이라는 기대가 컸던 게 사실이고, 정현 또한 고심 끝에 주니어 무대에 한 번 더 도전한다. 하지만, 8강에서 한 살 어린 즈베레프를 만났고 그에게 패하며, 최초의 메이저대회 주니어 단식 우승의 꿈을 이루지 못한 채 성인 무대에 데뷔했다(그 대회에서 즈베레프는 결국 남자 주니어 단식 우승을 차지한다).

즈베레프의 활약과는 별개로 세계 남자 테니스계에서 20대 초반 유망주들에 대한 희소성과 기대치는 매우 높다. 사실 25세 미만의 100위권 내 선수는 정현을 포함 17명에 불과하다. 즈베레프를 필두로 정현보다 랭킹이 높은 선수들은 10명이며, 10위권 내외에 있는 즈베레프(4위·21세), 키리오스 (17위·23세), 뤼카 푸유(18위·24세) 그리고 루블료프(32위·21세)를 제외하면, 나머지 6명과 정현의 랭킹·커리어 차이는 대동소이하다. 사실 이번 호주오픈 이후 짧은 시간에 충분히 바뀔 수 있는 순위들이며, 정현이 지금의 기세를 조금만 더 이어간다면, 이형택이 가지고 있는 역대 한국 선수 최고 랭킹(36위)을 갱신하는 것도 시간문제로 보인다.

다만, 2018년의 정현이 지금보다 한 단계 더 업그레이드되고, 나아가 세계 톱랭커가 되기 위해서는 아직은 경험해 보지 않은 정규투어대회 우승이 필수적이다. 지난해말 ATP 공식 대회인 넥스트젠에서 값진 첫 우승을 맛본 정현이지만, 정규투어대회 우승이 아직 없다는 것은 좀 아쉬운 일이다. 100위권과 50위권대 진입 속도가 톱랭커급으로 빨랐던 정현이 더 치고 나가지 못한 것에는 우승 경험을 좀더 일찍 맛보지 못한 데에도 하나의 원인이 있다. 물론 아직 22세에 불과한 정현에게 한때(2016년도)의 부진은 성장통에 불과하며, 분명 좋은 경험이 되었을 것이다. 게다가 세계랭킹 50위권 내에서 순위를 끌어올리는 것은 상상 그 이상으로 어려운 일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제부터가 정현에게 정말 중요한 순간이다.

참고로, 2015년의 10대 유망주 5명 중에 코키나키스와 니시오카의 현재 랭킹은 150위권 밖이었으며, 메이저대회에서 준우승을 기록한 국내 선수 5명 중에서, 세계랭킹 50위안에 든 한국 선수는 정현이 유일하다. 주니어 때 아무리 난다 긴다 해도 성인 무대에서 그것도 20대 초반에 톱랭커들을 꺾는다는 건 그만큼 어려운 일이다. 그 어려운 걸 2018년 1월의 정현이 해내고 있다.

[정지규 스포츠경영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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