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포스트' 여성 언론인에 주목한 스필버그

  • 양유창
  • 입력 : 2018.02.21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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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 영화 '더 포스트'


[시네마앤-171] "뉴스는 역사의 초고다."

워싱턴포스트를 오늘날 유력 일간지로 키운 전 발행인 캐서린 그레이엄이 영화 속에서 하는 말이다.

하루의 뉴스가 모여 역사가 된다. 신문을 만드는 사람들은 역사의 초고를 쓰는 사람들이다. 기자, 편집장, 발행인부터 조판자, 인쇄인, 배달원까지 한 팀이 되어 움직인다. 영화는 그 과정을 꼼꼼하게 묘사한다.

영화 '더 포스트'는 워싱턴의 중소 신문사였던 워싱턴포스트가 전국적인 인지도를 얻게 되는 결정적 사건인 1971년 펜타곤 페이퍼 특종 과정을 담는다.

펜타곤 페이퍼란 제2차 세계대전부터 1968년 5월까지 베트남에서 미국의 역할을 기록한 보고서로 당시 국방장관이던 로버트 S 맥나마라의 지시로 만들어진 문서다. 1971년 MIT 국제연구소 수석연구원 대니얼 엘즈버그가 전격 폭로하면서 7000쪽에 달하는 방대한 분량이 세상에 알려졌다. 처음에 그는 뉴욕타임스에 자료를 제공했으나 뉴욕타임스가 정부와의 소송으로 법원으로부터 보도금지 처분을 받게 되자 워싱턴포스트에도 자료를 제공해 후속 보도가 이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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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더 포스트'

펜타곤 페이퍼가 폭로한 내용은 미국의 베트남전 참전 계기가 된 '통킹만 사건'이 조작됐다는 것을 시작으로 트루먼, 아이젠하워, 케네디, 존슨 등 역대 대통령들이 베트남에서 공산주의 정권을 와해시키기 위해 어떻게 개입했는지 등이 담겼다. 이 문서는 장기화하는 베트남 전쟁에 대한 여론이 악화되는 상황에서 폭로됐기에 더 큰 반향을 일으켰다.

국가안보와 국민의 알 권리가 충돌한 이 묵직한 사건을 거장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은 어떻게 그렸을까? 영화는 두 가지 포인트에 집중한다. 하나는 메릴 스트리프가 연기한 발행인 캐서린 그레이엄의 고뇌와 성장에 초점을 맞춘 것이고, 또 하나는 영화를 스릴러 문법으로 구성해 긴장감을 끌어올린 것이다.

"나는 너희들 키우면서 사는 게 행복했어. 마흔다섯이 넘어 직업을 갖게 될 거라고는 생각조차 하지 않았지. 갑자기 이 자리에 오게 됐지만 나는 우리 신문을 정말 사랑해."

캐서린이 딸에게 하는 대사다. 평범한 가정주부였던 그녀는 신문 사주였던 남편이 자살로 생을 마감하자 회사를 물려받는다. 그녀는 아버지 유진 마이어와 남편이 키워놓은 회사를 망치지 말아야 한다는 부담감과 여성 경영자를 의심의 눈초리로 바라보는 남자 일색의 이사회 멤버들 사이에서 압박감에 시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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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더 포스트'

캐서린은 현금이 부족해 회사를 증시에 막 상장한 상황이었고, 펜타곤 페이퍼를 보도하면 정부와 갈등을 초래한다는 이유로 투자자들이 돈을 뺄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정부와 소송을 감수하면서까지 펜타곤 페이퍼 보도를 막지 않겠다는 결단은 그녀 입장에선 모든 것을 건 도박이었다. 그녀는 뉴스위크로부터 영입한 벤 브래들리(톰 행크스) 편집장과 보도 방향을 놓고 크고 작은 갈등을 빚어왔지만 편집과 경영을 분리한다는 대원칙을 깨지 않았다. 그녀는 "경영 위기에 봉착할 수 있다"는 이사회 멤버들의 우려를 이렇게 설득한다. "사업설명서에 신문의 사명이 명시돼 있어요. 뛰어난 뉴스를 찾아 보도한다. 맞죠?"

그레이엄의 신문 발행 결정은 언론 자유의 중요성을 다시 한 번 환기시키는 계기가 됐다. 워싱턴포스트는 이후 워터게이트 특종을 연달아 터뜨리며 뉴욕타임스에 맞먹는 정론지로 우뚝 선다. 영화 속에서 캐서린은 평소 나서기를 주저하는 성격이지만 결정적인 순간에 흔들리지 않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강한 카리스마를 남긴다. 워싱턴포스트의 보도 이후 캐서린의 결정을 응원하는 여성들이 늘어나고 영화는 법정 출두한 캐서린을 상대편인 법무부 비서로 일하는 여성이 응원하는 대사를 삽입함으로써 캐서린의 승리가 언론의 승리일 뿐만 아니라 여성의 승리라는 사실도 주지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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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더 포스트'

둘째, 스필버그는 장르영화의 대가답게 특종이 될 뉴스를 취재하고, 보도할지 말지를 결정하며, 조판작업을 거쳐 인쇄하는 모든 과정에 서스펜스를 녹였다. 취재원으로부터 국가기밀 자료를 넘겨받은 기자는 안절부절하며 자료를 비행기에 실어 가져오고, 브래들리와 그레이엄이 기사를 신문에 게재할지 말지 결정하는 과정에선 취재원에 대한 새로운 사실이 확인되며 반전에 반전을 거듭한다. 심지어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여느 액션영화의 속편처럼 워터게이트 호텔을 보여주며 속편을 예고하는 것으로 끝난다.

단지 하루치 신문에 실릴 기사를 취재해 기사를 쓰고, 조판 작업을 거쳐 인쇄하며, 배포하는 것뿐인데 모든 과정에 스릴이 넘친다. 지금은 유물이 된 활자 조판 과정을 자세하게 지켜볼 수 있다는 것도 이 영화의 볼거리 중 하나다. 닉슨 대통령은 영화 속에 단지 뒷모습 실루엣으로 등장할 뿐이지만 목소리만으로도 개성 있는 악역을 소화해낸다. 마지막 장면에서 워싱턴포스트 기자들의 백악관 출입을 금지시키는 그의 목소리는 지질하고 우스꽝스러운 악당의 전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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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더 포스트'

1971년 6월 워싱턴에서 신문을 만들던 언론인들의 용감한 결정이 세상을 바꾸었다. 정권의 압박에 굴하지 않고 진실의 길잡이를 자처한 캐서린 같은 믿음직한 언론사주 덕분이다. 주어진 본분을 다한다면 언론사주도 얼마든지 영웅이 될 수 있다. 한국 언론계가 필람해야 할 영화다. 28일 개봉.

[양유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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