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네마앤-174]"모든 부문 후보에 오른 여성분들 전부 일어나주세요."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프랜시스 맥도먼드는 오스카 트로피를 바닥에 내려놓더니 객석을 향해 이렇게 외쳤다.

"우리는 지금 여기 함께 있습니다. 제 사무실로 오셔서 같이 영화를 만들어요."

제90회 아카데미 영화상 시상식 중 가장 상징적인 장면은 여우주연상 수상 소감에서 나왔다. '쓰리 빌보드'에서 절대 주눅 들지 않는 강인한 여성을 연기한 맥도먼드는 자신이 페미니스트로 살아왔음을 상기하며 여성들에게 연대를 외쳤다.

지난 1월 레드카펫을 블랙 드레스로 뒤덮었던 골든글로브 시상식과 달리 올해 아카데미 시상식에선 의식적인 드레스코드나 메시지를 담은 배지는 없었지만 순간순간이 '미투'와 '타임스업' 운동의 연장선상에 있었다.

드레스 대신 바지를 입고 감독상을 시상하기 위해 무대에 오른 에마 스톤은 "감독상 후보는 4명의 남성과 그레타 거위그입니다"라고 말해 박수를 받았다.

사회를 맡은 지미 키멀은 "제가 여성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라고 농담하며 분위기를 이끌었다.

키멀은 오프닝 멘트에서 "하비 와인스타인을 축출했습니다. 또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쫓아내야 할 사람이 누구일까 생각해봤습니다. 전 세계가 바라보고 있습니다. 여성들이 다른 차별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더 이상은 이런 일이 없어야겠죠."


이어서 그는 역사상 다섯 번째로 감독상 후보에 오른 여성 그레타 거위그, 역사상 최초로 촬영상 후보에 오른 여성 레이철 모리슨, 1977년부터 무려 21번 아카데미 후보에 오른 메릴 스트리프 등을 거명하며 박수를 유도했다.

'미투' 운동이 첨예한 이슈라면 작년 아카데미 시상식 작품상 발표 번복 소동은 가벼운 유머가 되어 돌아왔다. 키멀은 이렇게 농담하며 작년의 대실수를 상기시켰다.

"혹시 모르니까 수상자 발표 후 1분 정도 시간을 갖고 기다려주세요. 올해 PWC 회장이 제대로 된 봉투를 전달하는 데 집중하겠다고 말했습니다. 그럼 지난 89년간은 어디에 집중하고 있었던 걸까요?"

장편애니메이션상 시상자로 나선 마크 해밀도 "제발 라라랜드가 아니길…"이라고 중얼거리며 웃음을 유발했다. 작년 실수의 주인공이었던 워런 비티와 페이 더너웨이는 명예회복을 위해 올해 다시 한번 작품상 시상자로 나섰고, 이번엔 비티가 직접 실수 없이 '셰이프 오브 워터' 제목을 또박또박 발음했다.

오스카 트로피는 받아야 할 영화들이 골고루 가져갔다. 이변이라고 불릴 만한 수상 결과는 각본상을 수상한 '겟 아웃'의 조던 필 정도였다(보통 작품상 수상작이 각본상도 가져간다).


13개 부문 후보에 올라 가장 주목받았던 '셰이프 오브 워터'는 작품상, 감독상, 음악상, 미술상 등 4개의 트로피를 가져가며 주인공이 됐다.

7개 부문 후보에 올랐던 '쓰리 빌보드'는 여우주연상, 남우조연상(샘 록웰) 등 2개 부문에서 수상하며 다소 아쉬운 결과를 남겼다.

남우주연상은 '다키스트 아워'에서 범접할 수 없는 윈스턴 처칠 연기를 보여준 게리 올드만이 가져갔고 여우조연상은 '아이, 토냐'에서 극강의 카리스마를 보여준 앨리슨 제니의 몫이었다.

'덩케르크'가 편집, 음향, 음향편집 등 3개 부문을 수상하며 저력을 과시했고 치열한 경쟁이 예고됐던 주제가상은 '코코'의 'Remember Me'가 '위대한 쇼맨'의 'This is Me'를 제치고 수상의 영광을 안았다.

각색상은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의 제임스 아이보리가 받았다. 89세인 그는 아카데미 주요 부문 최고령 수상자가 됐다.


[제90회 아카데미 수상 결과]

작품상: '셰이프 오브 워터: 사랑의 모양'

여우주연상: '쓰리 빌보드' 프랜시스 맥도먼드

남우주연상: '다키스트 아워' 게리 올드만

여우조연상: '아이, 토냐' 앨리슨 제니

남우조연상: '쓰리 빌보드' 샘 록웰

감독상: '셰이프 오브 워터: 사랑의 모양' 기예르모 델 토로

각본상: '겟 아웃' 조던 필

각색상: '콜 미 바이 유어 네임' 제임스 아이보리

촬영상: '블레이드 러너 2049' 로저 디킨스

편집상: '덩케르크' 리 스미스

미술상: '셰이프 오브 워터: 사랑의 모양' 폴 D 오스터베리 외 2명

의상상: '팬텀 스레드' 마크 브리지스

음악상: '셰이프 오브 워터: 사랑의 모양' 알렉산더 데스플라

주제가상: '코코' Remember Me

음향상: '덩케르크' 마크 웨인가튼 외 2명

음향편집상: '덩케르크' 리처드 킹 외 1명

분장상: '다키스트 아워' 쓰지 가즈히로 외 2명

시각효과상: '블레이드 러너 2049' 존 넬슨 외 3명

외국어영화상: '판타스틱 우먼'

장편애니메이션상: '코코'

장편다큐멘터리상: '이카로스'

단편애니메이션상: '디어 바스켓볼'

단편영화상: 'The Silent Child'

단편다큐멘터리상: 'Heaven is a Traffic Jam on the 405'

[양유창 기자]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