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콜 미 바이 유어 네임' 퀴어를 뛰어넘은 첫사랑 이야기

  • 양유창
  • 입력 : 2018.03.23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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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네마앤-176] 버라이어티, 타임, 가디언, 인디와이어, 롤링스톤 등은 2017년 이 영화를 '올해의 영화'로 꼽았다. 올해 아카데미 각색상을 포함해 전 세계 영화상에서 70여개의 트로피를 챙겼다. 22일 개봉한 영화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은 이탈리아 출신 루카 구아다니노 감독의 전작 '아이 엠 러브'(2009) '비거 스플래시'(2015)와 함께 '욕망 3부작'으로 불린다.

영화의 배경은 1983년 북부 이탈리아다. 영화는 안드레 애치먼의 소설 '그해, 여름 손님'을 각색했다. 소설의 배경은 1987년이었지만 구아다니노 감독과 각본을 쓴 제임스 아이보리는 이를 1983년으로 바꾸었다. 이에 대해 구아다니노는 이렇게 말했다. "1987년보다 1983년이 때묻지 않은 순수한 소년의 사랑을 보여주기에 적합하다. 레이건이나 대처 시대의 인물이 아닌, 아직 부정부패에 물들지 않은 캐릭터를 그리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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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에 사는 17세 엘리오(티모시 샬라메)는 여름 방학을 맞아 자신의 아버지인 고고학 교수 펄먼(마이클 스털바그)을 찾아 온 24세 미국 청년 올리버(아미 해머)를 보자마자 사랑에 빠진다. 그동안 몰랐던 성적 정체성을 발견한 것이다. 영화는 혼란스러워하면서도 첫사랑에 이끌리는 엘리오의 불안한 모습을 섬세하게 잡아낸다. 햇살 눈부신 이탈리아의 여름은 흥분과 설렘으로 가득한 둘의 사랑을 싱그럽게 비춘다. 계절이 바뀌면서 엘리오는 이별을 준비한다.

"나는 관객이 두 사람의 감정적 여정에 완전히 동화되기를 바랐다. 영화를 통해 당신을 사랑하는 누군가가 당신을 아름답게 만들어주고, 밝혀주고, 끌어올려준다는 것을 알게 되기를 바랐다."

구아다니노 감독이 밝힌 연출 의도다. 어쩌면 영화의 스토리는 그리 특별하지 않다. 소년이 첫사랑을 발견하고, 그 사랑을 놓치고, 깊은 슬픔에 빠지는 것이 전부다. 두 남자의 사랑을 그린 동성애 영화지만 노골적인 성애 묘사는 전혀 없다. 사랑이라는 보편적인 감정 묘사에 주력한다. 섬세한 동작, 감성적인 음악, 절절한 슬픔, 따뜻한 위로 등이 관객에게 공감을 선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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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중요한 모티프 중 하나는 '언어'다. 똑똑한 올리버는 펄먼과 고대 언어에 관해 토론한다. 한국인의 입장에서 낯설게 들리는 유럽 언어의 어원에 관한 토론은 현대어가 치열한 생존투쟁의 산물임을 상기시킨다. 오랜 역사를 거치며 살아남은 언어는 사람들이 많이 쓴 단어들이다. 결국 언어 역시 사랑의 증거다. 쓰이지 않는 언어는 사라진다. 불리지 못하는 이름도 사라진다. 올리버와 엘리오는 바다 속에서 건져 올린 녹슨 청동유물을 함께 살펴보며 수백 년의 시간을 견뎌온 유물에 그들의 감정을 이입한다.

사랑이 잊힌 유물이 되지 않으려면 사랑하는 사람의 이름은 불려야 한다. 영화 속에서 헤어짐을 앞둔 엘리오와 올리버는 서로의 이름으로 사랑을 확인한다. "너의 이름으로 나를 불러줘. 나도 그렇게 할게." 이제 나의 이름은 너에게로 가서 내가 된다.

감독은 영화를 시간순서대로 찍었다. 캐릭터가 성장해가는 모습을 그대로 담기 위해서다. 영화 초반 어리숙한 소년이던 엘리오는 헤어짐의 아픔을 겪고 난 후반부엔 전혀 다른 사람이 되어 있다. 슬픔에 빠진 그의 눈에는 눈물이 그렁그렁하다. 영화는 엄마가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소리를 듣고 엘리오가 돌아보는 데서 끝난다. 올리버와의 사랑을 확인하는 징표였던 자신의 이름을 비로소 되찾는 상징적 장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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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구아다니노 감독이 영향받은 유럽의 작가들에게 바치는 오마주로 가득 차 있다. 이야기 구성은 모리스 피알라의 '우리의 사랑'(1983)에서 뼈대를 가져왔고, 에릭 로메르의 '해변의 폴린느'(1983), '봄 이야기'(1990), '여름 이야기'(1996) 등에서 사랑이 시작하는 방식과 의상을 참조했다. 또 장 르느와르, 자크 리베트,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 감독이 시대와 사랑을 조화시킨 방식이 영화의 정서에 녹아들어 있다.

원작소설을 각색한 이는 전설적인 감독이자 작가인 제임스 아이보리다. 그는 영국을 배경으로 한 시대극으로 한때 아이보리-머천트 시대를 이끌었던 인물이다. 1928년생인 그는 이 영화로 아카데미 최고령 각색상을 수상했다.

구아다니노와 아이보리가 구상한 영화는 조금 달랐다. 아이보리는 애초에 엘리오의 보이스오버 내레이션으로 진행되고, 누드 장면이 많은 각본을 썼지만 구아다니노가 이를 대폭 수정했다. 또 이 영화에서 최고의 장면 중 하나로 평가 받는 마지막 펄먼 교수의 대사를 아이보리는 너무 설명적이라는 이유로 빼려고 했다. 구아다니노는 대사를 조금 더 함축적으로 다듬어 이를 살려놓았다. 하마터면 역사상 가장 진취적인 아버지가 등장하는 명장면을 못볼 뻔했다.

올해 스물두 살의 티모시 샬라메는 17세 엘리오를 연기해 올해 아카데미에서 역대 최연소 남우주연상 후보에 올랐다. 미국 출신인 그는 아역배우로 2012년 드라마 '홈랜드'에 출연하기도 했다. 프랑스어와 피아노에 능숙한 샬라메는 이 영화에 캐스팅된 뒤 촬영 시작 몇 주 전에 미리 이탈리아로 건너 가 추가로 기타와 이탈리아어를 배워야 했다.

24세 청년 올리버는 '론 레인저'에서 타이틀롤 레인저 역을 맡았던 아미 해머가 연기했다. 올해 31세인 그는 '제이. 에드가'(2011), '파이널 포트레이트'(2017)에서도 동성애자를 연기한 적 있다. 애초에 그는 게이 연기를 또 하는 것에 부담감을 느껴 거절하려 했으나 시나리오를 읽고 마지막에 마음을 바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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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아다니노 감독의 영화는 영상만큼이나 항상 음악이 중요하다. 그는 음악을 직접 선곡하고 이번에도 그렇게 했다. 감독의 선곡 콘셉트는 '덜 무겁고, 덜 현재적이고, 영화의 감정을 이끄는 내레이터 역할을 하는 음악'이었다. 감독은 음악이 엘리오와 연결되어 있기를 바랐다. 영화 속에서 엘리오는 올리버에게 잘 보이기 위해 자신만의 방식으로 바흐를 해석해 피아노를 친다. 감독은 서프얀 스티븐스의 음악을 들은 뒤 그의 스타일과 가사가 엘리오와 잘 어울린다고 생각해 그에게 곡을 의뢰했다. 영화 속에는 스티븐스의 피아노 음악 'Mystery of Love', 'Visions of Gideon', 'Futile Devices' 등 세 곡이 아름답게 흐른다.

구아다니노 감독은 이미 영화의 속편을 준비 중이다. 그는 한 인터뷰에서 "속편의 배경은 1990년대 초이고 베를린 장벽 붕괴 등 정치적 상황과 맞물려 두 사람의 재회를 그릴 것"이라고 밝혔다. 프랑수아 트뤼포 감독의 '앙트완 드와넬' 시리즈 혹은 마이클 앱티드 감독의 '업' 시리즈처럼 두 사람이 나이가 들면서 만나고 헤어지는 모습을 계속해서 영화로 담고 싶다는 포부도 밝혔다. 샬라메와 해머는 이미 속편 출연을 약속했다. 영화의 여운이 오래 남아서인지 벌써부터 두 사람이 재회할 속편이 궁금하다.

[양유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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