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인트' 문지윤 "동남아 무술로 다진 몸... 배역 맞춰 10㎏ 빼고 찌워요"

  • 김시균
  • 입력 : 2018.03.28 16:15
  • 프린트
  • 이메일
  • 페이스북
  • 트위터
  • 카카오스토리
  • 공유



[나는 조연배우다-10]

"분홍색을 좋아하나봐요."

"이제 봄이잖아요."

신장 185㎝, 체중 90㎏. 울림통 좋은 중저음에 수컷 냄새 그득한 상남자 용안. 건장한 체구의 사내는 그럼에도 귀여운 연분홍 재킷에 하늘빛 청바지 차림이었다. 외모와 패션이 빚어내는 이 아이러니한 부조화를 어찌 설명해야 할까. 사내는 조금 쑥스러운 듯 머리를 긁적였다. "알록달록한 색감을 좋아해요. 이제 날도 풀렸겠다, 인터뷰 날이니 아무래도 칙칙한 느낌보다 밝은 색이 예쁠 것 같고…."

지혜로울 '지'(智)에 빛날 '윤'(贇), 그래서 '지윤'. 그러고 보니 이름마저 여성스러운 이 남자, 문득 궁금해진다. 턱수염 기른 지도 얼마 되지 않았다고 한다. 원래 거의 나지 않는 편이었다. 그러다 서른 살 무렵, 봄날의 새싹처럼 조금씩 움이 텄고, "이거 잘됐네" 싶어 요새 한창 기르는 중이다. "다이어트 중간 과정이라 수염이 있으면 얼굴에 음영이 좀 지거든요? 그래서 조금 핼쑥해보이는 효과가 있어요."

평소 체중은 75㎏대 안팎. 맡는 배역에 따라 위아래로 10㎏씩 빼고 찌우는 건 다반사다. 이번에도 영화 '치즈인더트랩'(14일 개봉) 촬영차 12㎏가량 금세 불렸다. "작년에 '불한당' 때도 그랬지만, 이번에도 꽤나 찌운 편이죠. 제일 많이 나갈 땐 120㎏ 나간 적도 있어요." 혹여 우리가 데뷔 16년차인 그를 아직 익숙지 않아 한다면, 그 원인의 일부는 이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리하여 최근 서울 충무로 한 카페에서 만난 배우 문지윤(34)에게 이런 질문부터 건넸다.

배우 문지윤 / 사진=양유창 기자
▲ 배우 문지윤 / 사진=양유창 기자

-'긁지 않는 복권'이라는 평이 있던데.

"그런 말씀, 고맙죠(웃음). 연기적인 측면에서 해주시는 말씀일 수 있겠지만, 제가 워낙 또 배역마다 살을 찌웠다 뺐다 하니까요. 지금은 좀 쪄있는 상태인지라 천천히 빼고 있어요. 근데, 말씀대로 복권에 당첨되면 기분이 얼마나 좋겠어요. 제가 팬들에게도 그런 배우여야 하는데."

-평소 체중 관리는 어떻게 해요?

"정말 단기간에 빼야 할 땐 일주일에 10㎏를 훅 감량해요. 사는 동네에 산이 있어요. 뛰어 올라갔다가 내려온 다음 사우나에서 권투선수처럼 땀을 쭉 빼는 거죠. 그러고는 야채랑 계란 흰자, 고구마를 먹고 한숨 푹 자요. 저녁엔 권투장을 가고요. 1시간30분가량 죽어라 권투를 하면 하루가 다 가요. 근데 그 기간이 진짜 괴롭거든요? 제가 운동선수도 아니고, 제일 좋은 건 천천히 빼는 거예요. 너무 급히 빼면 요요현상이 와요."

배우 문지윤 / 사진=양유창 기자
▲ 배우 문지윤 / 사진=양유창 기자

-반대로 찌울 때는요?

"체질 자체가 살이 잘 쪄요. 그냥, 좋아하는 거 원 없이 먹고 거의 무방비 상태로 넋 놓고 있으면 되죠."

-2년 전에 드라마 '치즈인더트랩'(2016)에서 김상철을 연기하셨어요. 그땐 김고은 씨(홍설 역)를 참 많이 괴롭히셨는데(웃음). 이번에 영화 '치즈인더트랩'(14일 개봉)에선 오연서 씨(홍설 역) 대학 선배로 나오셨어요. 드라마에서처럼 짓궂은 선배라기보다 뭐랄까, 눈치 없는 귀여운 선배 같던데요.

"드라마에선 아무래도 진상남 느낌이 가득했죠. 팀 과제 할 때도 빠지고 리포트 안 쓰고 틈만 나면 후배 괴롭히고. 영화에선 상철이 그리 길게 다뤄지진 않았어요. 다소 눈치 없는 선배로서 낄 때 안 낄 때 분간 못하며 홍설이를 당황하게 만드는 캐릭터랄까."

영화
▲ 영화 '치즈인더트랩'(2018)에서 배우 문지윤은 얄미운 대학 선배 상철을 연기했다. /사진제공=리틀빅픽쳐스

이를 테면 이런 식이다. 영화 '치즈인더트랩' 중반부. 배경은 소규모 대학 강의실이다. 홍설(오연서)이 남자친구가 생겼다는 소식을 엿들은 상철(문지윤)이 저 멀리 앞줄에 앉은 그녀 옆에 유정(박해진)이 앉자 쩌렁쩌렁 외친다. "홍 후배 옆에 앉지마. 남자친구 생겼대!" 눈치 없는 선배 때문에 홍설이 어쩔 줄 몰라하자, 유정은 뒤를 돌아 말한다. "저예요, 그 남자친구." 아아, 그렇다. 상철 같은 선배라면 누구라도 사양이다.

-드라마든, 영화든, 극 중 상철이랑 실제 본인이랑 조금은 닮은 구석이 있나요?

"까불까불하고 능글맞은 모습, 물론 있죠. 그러니 연기로 그렇게 나오는 거 아니겠어요? 아예 제 안에 없는 모습을 발산한다는 건 아무래도 어려울 거예요. 다른 배우들도 그럴 거고요. 어느 정도 자기 성격이나 평소 모습을 일정 부분 줄이거나 극대화하면서 연기하는 부분이 있을 거라 봐요. 제 실제 모습은 겉모습과 달리 조용조용한 편인데, 정말 가까운 친구들이랑 있으면 까불거리는 거 잘해요. 그렇다고 공사 구분 못하고 진상 부리진 않습니다(웃음)."

-2002년 TV 드라마 '로망스'로 데뷔하셨죠. 그러고 보면, 16년 차라는 게 새삼 놀라운데요. 애초 TV드라마 쪽을 원했던 건가요?

"아뇨, 그런 건 아니고. 원래 꿈은 영화 배우예요."

-그럼 어떤 계기로?

"'로망스' 출연했을 때가 열여덟 살이었어요. 그냥 기회가 드라마 쪽으로 먼저 들어온 거죠."

영화배우 꿈을 처음 머금은 건 중평중 3학년 때. 노효정 감독의 '인디언 썸머'(2001)를 집에서 혼자 본 게 계기였다. 국선 변호사 준하(박신양)가 남편 살해 혐의로 사형을 선고받은 신영(이미연)을 변호하면서 벌어지는 가슴 시린 멜로물이었다. 여자만 지나가도 가슴이 두근대던 사춘기 시절. 사랑하게 된 신영의 무죄를 어떻게든 입증하려는 준하의 절박함이 소년의 가슴을 쳤다. "박신양 선배님을 보면서 막연히 멋있다는 느낌이 그때 확 들었어요. 저런 모습을 화면 속에서 보여줄 수 있다는 게 굉장히 매력적으로 다가왔죠." 그 '막연한' 느낌은 '배우가 되고 싶다'는 의지의 발현으로, 한 줄기 꿈으로 서서히 움튼다.

배우 문지윤 / 사진=양유창 기자
▲ 배우 문지윤 / 사진=양유창 기자

-중·고교 시절엔 어땠어요?

"교우관계는 좋은데 공부는 거의 안 하는 학생이었죠. 그래도 학구적인 친구들이랑도, 운동만 하는 친구들이랑도 두루두루 잘 어울렸어요. 운동하고 게임하는 거 좋아했는데, 뭐 평범했죠. 게임 좋아해서 PC 방에서 스타크래프트 많이 했고, 요새도 집에 혼자 있으면 플레이스테이션4로 즐겨요. 요즘엔 '포 아너'(FOR HONOR)라는 게임을 자주 하고요."

-배우 준비는 어떻게 착수했나요?

"'인디안 썸머'를 본 뒤로 그 잔상이 잘 안 지워지더라고요. 너무나 강렬해서 얼마 안 있다가 연기학원에 등록했어요. 배움이 필요하겠다 싶어서요. 정확하게는 중학교 졸업 직전부터 인덕공고 2학년 때까지 다녔어요. 그리 오래 다닌 건 아니죠. 고2 때 무슨 자신감인지 더 배울 게 없다는 생각이 어느 순간 들대요. 실전에서 배우고 싶었나 보죠. 그래서 그때 그만두고 혼자 매니지먼트 찾아다녔어요. 오디션 보려고 인터넷에 공고 뜨는 거 계속 찾아보고요."

-연기학원 생활은 어땠어요?

"저, 정말 열심히 했어요. 이건 저도 자랑하고 싶어요. 당시 학원 선생이 '크게 될 놈'이라 했어요. 제가 택한 길이니 후회 안 하려고 독하게 했거든요. 공책에 선생님 말씀 한마디 한마디 놓치는 거 없이 다 적었어요. 설명하는 거 빼곡하게 다 적고, 초청 강사분 오시면 한마디도 안 빼놓고 다 받아적어서 밤새 읽고 또 읽고, 연습하고 또 연습하고. 좋은 영화 반복해서 보며 나름으로 분석하고, 보고 느낀 점 풀어쓰고, 카메라 용어 외우고. 근데, 주위서 당시 상처받는 얘기를 좀 많이 들었어요."

-상처받는 얘기라면?

"이런 거죠. '너 따위가 뭐가 잘나서 연기를 하냐' '그런다고 될 거 같냐.' 학교 선생님들 은 응원해주신 분도 있었지만, 사실 대부분 무시하셨어요. 열 분 중에 두 분이 조용히 응원해주신다면 나머지 여덟 분은 내리깔고 보셨던 거죠. '네가 할 수 있겠냐'고요."

-그럴수록 더 오기가 생기는 법이죠. 모종의 존재 증명을 해보여야 하는 절박함 같은 게 있으니. 당시 가족들은 뭐라셨어요?

"든든한 우군이었죠. 제가 그 모든 경멸과 무시를 이겨낼 수 있었던 게 어찌 보면 가족들 덕분이기도 해요. 아버지 어머니께선 언제나 '잘 해라' '잘할 수 있을 거다' 하시며 제가 좋아하는 일, 전혀 안 말리셨거든요."

-첫 오디션은 언제 봤어요?

"고교 2학년 봄이었어요. 배우 오디션 공고가 크게 났어요. 그 당시 가수랑 배우랑 다 뽑는 자리였죠. 거기서 1~3차까지 오디션 보고 덜컥 입상까지 했어요. 그걸 계기로 소속사가 생겼고 '로망스'(2002) 미팅까지 보게 된 거죠."

배우 문지윤의 데뷔 초 모습
▲ 배우 문지윤의 데뷔 초 모습

-그 시절, 혈기와 자신감으로 충만했군요.

"뭐랄까, 알 수 없는 자신감이 있었어요. 누가 뭐라 그래도 내 생각대로 내 의지대로 할 거야, 라는. 그게 어느 정도였냐면, 열아홉 살 데뷔 때부터 마음가짐이 남달랐어요. 서른 살 즈음에는 배우로서 완성된 모습일 거라며 혼자 상상하고 그랬거든요. 속으로 되뇌는 거죠. '자, 지윤아 10년을 보고 가자. 지금 모습이 다가 아니다. 넌 이제 시작이다.'"

-지금 서른이 훌쩍 넘었죠. 그때 원했던 모습이 되었다고 보나요?

"(고개를 내리깔며) 아니요. 막상 서른 살이 되니 제가 바랐던 모습 같진 않아요. 그러니 또 마흔 살을 바라보고 달려가고 있는 것일 테고요."

-그래도 결심이 서고, 바로 행동에 들어가 당당히 오디션 입상하고 그런 면면들이 굉장히 멋진 걸요.

"배우로서 빨리 출발할 수 있었던 건 크나큰 복이었죠. 제 의지와 노력도 중요했지만요."

지난한 자기 자신과의 싸움이었다. 제 아무리 주변에서 무시하고 비아냥거려도, 진정한 상대는 그들이 아니었다. 결국에 뛰어넘어야 할 상대는 자기 자신이었으므로. 스스로 자처한 싸움인 만큼 어떻게든 책임을 져야 했다. 그렇게 10대 후반의 문지윤은 무소의 뿔처럼 홀로 뚜벅뚜벅 걸었다. 외롭고 두려울 때면 틈틈이 일기를 쓰며 제 내면을 담금질했다. 향후 꿈꾸는 미래상과 포부, 그날그날 배운 것과 반성할 점 등을 빼곡이 적어 나가며.

-지금도 일기를 쓰나요?

"연기학원 다니기 시작한 중3 때부터 스물두 살까지 썼어요. 매일 쓴 건 아니지만 주기적으로 꾸준히 썼죠. A4 용지 크기 공책으로 10권이 조금 넘어요."

-주로 어떤 내용이었나요?

"일상적인 그날 그날 일들부터 인상 깊었던 영화와 관련한 단상, 연기에 대한 이런저런 생각들, 제가 생각하는 사람 됨됨이, 연기자로서의 감정, 그런 것들이었던 것 같아요."

-첫 작품인 16부작 드라마 '로망스' 때부터 인기가 적지 않았어요. 김재원 씨(관우), 김하늘 씨(채원)가 주인공인데, 지윤 씨가 최관우 동생 장비를 연기했어요. 관우의 이미지가 하얗고 여리여리한 느낌이라면, 장비는 남자답고 천연덕스럽고 목소리도 굵직하고 사뭇 다르죠. 그때 나이 열아홉이었고요.

"장비가 처음엔 모범스러운 것 같다가도 나중엔 반항아적 기질을 보여주죠. 주변 친구들이 되게 신기해 하더라고요. 특히나 고교 동창들이 많이 놀란 눈치였어요. 학창 시절 한 번씩 직업 조사할 때면 배우 희망하는 사람으로는 제가 항상 유일하게 손을 번쩍 들곤 했거든요. 그럼 친구들이 '우~' 하며 저놈 봐라 했죠."

-'로망스' 오디션 날은 혹 기억나요?

"그럼요, 이대영 감독님 작품인데, 오디션 때 물으시더라고요. 오토바이 잘 타느냐고요. 장비가 오토바이를 능숙하게 탈 줄 알아야 한다며. 그래서 주저없이 답변드렸죠. '저 폭주족이었습니다!' 오토바이 생전 타본 적도 없었어요. 아무튼 금방 끝났죠. 떨어진 줄 알았어요. 근데 다시 불러주신 거예요. 아마 허풍인 게 훤히 보이셨을 거예요. 그럼에도 패기만큼은 귀엽게 봐주신 거 아닐까 해요, 지금 생각하면."

이 정도면 순탄한 출발이었다. '로망스'가 종영한 그해 하순엔 차기작으로 16부작 드라마 '현정아 사랑해'(2002)에 조연으로 이름을 올린다. 이듬해에도 40부작 드라마 '스무살'에 출연했고, 2004년 7월께, 고대하던 영화 데뷔작까지 드디어 내놓는다. 남상국 감독의 코믹 액션물 '돌려차기'였다. 삼류로 전락한 전통 있는 태권도부의 전국대회 도전기랄까. 함께 출연한 배우는 김동완, 현빈, 조안 등이었다.

배우 문지윤의 영화 데뷔작은 2004년 개봉한 코믹 액션물
▲ 배우 문지윤의 영화 데뷔작은 2004년 개봉한 코믹 액션물 '돌려차기'다. 당시 충동적으로 머리를 빡빡 밀었던 걸 계기로 캐스팅이 되었다고 그는 회고했다. /사진제공=시네마서비스

-'돌려차기'에서 맡은 캐릭터가 권혁수라고, 빡빡머리 반항아였죠. 때리기보다 거의 맞는 역할이었던 것 같은데요.

"그쵸. 운이 좋았던 게, 제가 평소 빡빡머리를 좋아해요. 스무 살 때 제 헤어스타일이 웨이브 있는 단발이었어요. 그러다 충동적으로 머리를 싹 민 적이 있어요. 회사엔 말 안 하고요. 그냥 그러고 싶었거든요. 그때 권혁수라는 반항아적인 이미지랑 제 모습이 딱 맞아떨어진 거예요. 그 당시 권혁수가 투짱이라고, 두 번째 짱이었어요. 두목이 있으면 부두목이 있듯이. 극중에 액션이 많았는데 제가 좀 많이 맞는 편이었죠. 극 중 태권도 시합할 때 저 때문에 상대랑 저랑 기권패를 당하는 장면이 있어요. 둘 다 무효처리돼 분하다고 서로 치고 박는데, 그때 권혁수 상대가 박도수라고, 정우 형이 연기한 캐릭터였죠."

-2006년 '생날선생'에 차기작으로 출연했어요. 이 영화는 상당히 평이 안 좋았죠.

"시나리오는 재밌었는데…. 누구 탓도 아니고, 솔직히 말하면 아쉽긴 했어요. 관객도 10만명이 안 들었죠. 그래도 사실 '돌려차기' '생날선생' 때 제 캐릭터가 좋았어요. 멋있거든요. 그 나이대 반항기도 가득하고, 남자답고."

-애석하게도 영화배우가 꿈이었지만 앞선 두 편이 각광받지 못해 씁쓸했을 것 같아요. 지윤 씨가 이후 드라마 위주로 찍게 된 데에는 그런 배경이 일부 작용하지 않을까라는 짐작도 해보게 되고요.

"뭐, 꼭 그렇다기보다 자연스럽게 그렇게 간 거 같아요. 아무래도 드라마로 데뷔를 했고, 좀 더 드라마로 많은 모습을 보여주었고, 시청자들도 좋은 모습으로 봐주신 게 있으니까요. 그리고 시청률이든 극장 관객이든 그리 개의치 않아요. 그런 것에 기대를 하다 보면 기분이 깔아뭉개지기 십상이거든요."

-문지윤 이름 석 자를 대중에게 처음 각인시킨 건 '쾌걸춘향' 때부터가 아닌가 싶어요. 시점상으로는 영화 '돌려차기' '생날선생' 개봉 사이인 2005년 1~3월에 방영했지요. 학생들한테 인기가 대단했어요. 방학 시즌에 틀기도 했고. 그 인기 때문에 1부작이 추가돼 17부로 끝났고요('쾌걸춘향'은 '춘향전'을 현대판으로 각색한 드라마였다. 성춘향 역에 한채영, 이몽룡 역에 재희, 변학도 역에 엄태웅이 출연했다. 문지윤은 몽룡의 친구 방지혁 역이었다).

"현대극인데 사극이 에피소드식으로 잠깐 잠깐 나오는 식이었죠. 재희 형이 연기한 몽룡이라는 친구를 위해주는 되게 낙천적인 의리파였고, 이인혜 누나가 연기한 한단희를 보호해주고 짝사랑하는 순정파 남자였죠. 상철('치즈인더트랩') 같은 진상남이랑 정반대에요. 로맨틱하면서 코믹적인 면모도 있고, 남자답고, 그러고 보면 좋은 건 다 갖췄네요(웃음)."

그리하여 스물세 살 무렵인 2008년. 생애 첫 사극 드라마까지 찍는다. 이준기 주연의 '일지매'였다. 일지매의 귀여운 먹보 친구 대식으로 4회 출연할 때 그의 몸은 이전보다 한껏 불어 있었다. 이듬해에는 다시 슬림하게 감량해 '선덕여왕' 낭도 시열을 열연한다. 시열은 '선덕여왕'이 발굴한 '신스틸러'였다. 뱀 때문에 소리치며 벌떡 일어나 쩔쩔매는 그의 모습은 답답하고 유약한 겁쟁이였지만 한편으론 또 귀여웠고, 죽기 직전 모습은 누구보다 강렬했다. 김유신의 아버지 김서현(정성모) 명대로 명예롭게 적장을 죽이고 난 다음 저 자신도 죽음에 이르는 예의 그 장면. 극 중 별 대사가 없던 시열은 제 임무를 완수한 다음 덕만공주(이요원) 품에 안겨 검붉은 피를 토해낸다. 그러면서 못 다한 말들을 힘겹게 내뱉는 것이다. "이제 정말 잘할 수 있는데···." 이십대 초입에 경험한 그의 인생 연기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배우 문지윤 / 사진=양유창 기자
▲ 배우 문지윤 / 사진=양유창 기자

-지윤 씨가 이 장면을 위해 칼을 갈았구나 싶었어요.

"셀 수 없을 정도로 연습했어요. 운전하면서도 하고 집에 있을 때도 누워서 계속 되뇌고. 죽는 사람이 말을 왜 이렇게 길게 하냐고도 지적하셨는데, 이게 참 뭐랄까. 되게 슬펐어요. 그냥 죽는 게 아니고 핏덩이를 입 안에 물고 숨을 껄떡이잖아요. 어떻게든 몇 마디 더 해보려는 절박함이 있었달까요."

-죽는 연기는 처음이었죠?

"네, 해보고 싶었어요. 사실 제가 죽기 직전의 느낌을 받아본 적이 한 번 있어요. 극 중 시열처럼 숨이 안 넘어가고 껄떡대는 경험을요. 숨이 어, 어, 하고 안 넘어가더라고요. 아마 열여섯 살 무렵이었을 거예요. 어두운 생각이 많았던 시기죠. 정서적으로 굉장히 불안정했어요. 그냥 죽을 것 같은 느낌이 자꾸만 드는 거예요. 그런 느낌이 겹겹이 쌓이다 언제인가 갑자기 숨이 턱 하니 안 쉬어지더라고요."

그는 갓난아기 시절부터 할머니 밑에서 오래 자랐다. 사실상 할머니가 유사 어머니나 다름 없었다. 그런 당신이 "눈 앞에서 돌아가셨다"고 그는 돌이켰다. 그러니까 열여섯 살 무렵, 두 시간 전만 해도 집에서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던 당신이 깨어있으시던 도중 쇼크사로 돌연히 소천하신 것이다. 그 순간의 충격은 어린 문지윤에게 거대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그가 그 시절, 스스로 연기학원에 등록해 미친듯이 앞만 보고 달려왔던 것도 어쩌면, 그때의 고통을 털어내고 싶다는 무의식적 바람이 투영된 것인지 모른다.

-삶에서 고비의 순간이 언제였어요?

"(한참 생각한다.) 변성현 감독님의 '나의 PS 파트너'(2012) 하기 전에 2년가량이 슬럼프였어요. 이 일을 안 하려고 했어요. 뭐랄까, 드라마 시스템 자체가 싫어졌고, 지칠 대로 지쳐 있었어요. 대본은 늘 늦게 나오고 촬영은 강행군이고. 그때가 '분홍립스틱' 찍고 나서였어요. 그거 끝나고 다 털고 떠난 거죠."

-그 공백기간 뭘 하고 지냈나요.

"백수였어요. 우선 차를 팔았고, 갖고 있던 물품을 하나하나 다 팔았어요. 그러면서 먹고 놀았죠. 마음은 편했는데, 일이 없으니 점점 무기력해지더라고요. 정신적으로도 피폐해지고. 그래서 미술을 시작했어요. 유일한 스트레스 해소법이었어요. 제가 술을 마시는 것도 아니니까요."

-이전에 그림을 배웠나요?

"아뇨, 그냥 시작한 거예요, 집에서. 스케치북에 매직펜으로 그려봤어요. 그러다 보니 저만의 느낌대로 상상력을 발휘해 추상적인 것을 많이 그리게 됐어요. 저는 사실 제가 그린 그림을 작품으로 여기진 않아요. 그럼 타인에게 주기가 쉽지 않잖아요. 그냥 좋아서 그린 것이고, 그렇게 좋아서 그린 걸 제가 좋아하는 사람한테 선물해주면 기분도 참 좋고요. 그런 식으로 그림이 타인과의 연결고리가 돼주더라고요."

-주로 어떤 걸 그려요?

"사람의 '눈'이요. 눈이 많은 걸 담고 있어요. 눈을 감고도 느낄 수 있는 것이 많지만 눈을 뜨면 느낄 수 있는 게 더 방대해요. 평소 눈을 좀 화려하게 그리는 경우가 있고, 사람의 얼굴이나 주로 꽃, 나무, 아니면 약간 아기자기한 그림도 있어요. 요즘엔 영웅들 시리즈라고, 영웅들이 동네를 보호하는 모습을 흑백 위주로 그리고 있어요. 이번엔 매직펜 말고 유화로요."

-그림 그리면서 달라진 게 있다면요?

"뻔한 얘기 같지만 스케치북이든, 십육절지든, 팔절지든, 사절지든 주어진 틀 안에서 보여주어야 하잖아요. 그런 게 연기랑 비슷하더라고요. 특히나 내가 마음가짐이 별로인 상태에서 그리면 좋은 그림이 안 나오더라고요. 마음을 정갈하게 하고선 내가 원하는 대로 선을 하나씩 이어 그림을 완성한다는 것. 어떤 면에선 연기도 그런 게 아닌가라는 생각을 해요."

-그림 외엔 뭘 했어요?

"무술을 했어요. 검도도 하고 복싱도 했는데 보다 새로운 걸 해본 거죠. 동남아 특수 무술인데 펜칵 실랏(PencaK Silat)이라고 있어요. 예컨대 왕이 있으면 그 왕을 호위하는 호위무사들이 쓰는 무술이에요. 공격을 차단하는 무술이 아니라 살생, 그러니까 죽여야 하는 무술. 쉽게 말하면 영화 '아저씨'에서 원빈 선배님이 보여준 그런 무술과 흡사해요. 제가 거짓말을 싫어하니 솔직히 말씀드리면, 고수는 아니고요. 홍보대사로 있기에 기본적인 훈련만 받은 상태예요. 요새 좀 쉬었는데 다시 배워 나가야죠."

배우 문지윤이 동남아 무술 펜칵 실랏 시범을 보이고 있다. / 사진=양유창 기자
▲ 배우 문지윤이 동남아 무술 펜칵 실랏 시범을 보이고 있다. / 사진=양유창 기자

미술(美術)과 무술(武術). 아름답고 굳세게 몸과 마음을 단련하던 그에게 기회는 다시금 찾아든다. 매니저의 권유로 6년 만에 영화 오디션을 보게 된 것이다. 그의 필모그래피에 첫 번째 흥행작으로 기입된 '나의 PS 파트너'(2012)였다. 털레털레 오디션장에 온 그의 모습이 변성현 감독 눈엔 "너무나 절실하게 보였다"고 한다.

-극중 지윤 씨가 연기한 영민은 선배 김성호, 지성과 함께 삼총사 중 한 명이었죠. 정말 오랫만의 영화 출연인지라 감회가 남달랐겠어요. 슬럼프를 딛고 처음 출연한 작품이 또 영화이기도 하고.

"좋았어요, 진짜 좋았어요. 정작 오디션 땐 많이 떨었지만요. 그럴 '짬밥'은 아닌데 말이죠. 변 감독님 말로는 애초엔 작고 딴딴하고 강단 있는 캐릭터였대요. 근데 제가 당시 85㎏ 정도 나갔거든요? 저로 캐스팅되면서 곰 같고 유순한 캐릭터가 된 거예요."

-2012년이 여러모로 의미 있는 해네요. 그 영화 찍고 드라마 '메이퀸'에서도 연기 잘하셨잖아요. 천상태가 인기 많았어요. 단순하고 무식하고, 용감한 민폐 캐릭터인데, 오열할 땐 또 마음을 무장해제시키고.

"감사했죠. 특히 어르신들이 많이 좋아해주셨어요. 부산이랑 마산 오가면서 찍었는데요. 부산 자갈치시장, 국제시장 등지에서 촬영할 때면 '천상태! 천상태!' 부르시며 호응해주시더라고요."

드라마
▲ 드라마 '메이퀸'(2012)에서 민폐남 천상태를 연기한 문지윤 /사진제공=MBC

-그리고 '불한당 : 나쁜 놈들의 세상'(2016) 얘기를 안 할 수가 없어요. 비록 흥행엔 고배를 마셨지만, 후에 '불한당원' 팬덤이 생길 정도로 화제였죠. 갱스터물이라는 외피에 비극적인 로맨스를 곁들인, 매력적인 영화고요(웃음).

"변 감독님 차기작이라기에 무조건 한다고 했죠. 오디션 봤는데, 시나리오가 범상치 않아 매력적이었고, 무엇보다 존경하는 설경구 선배님이 주인공이라는 게 굉장히 흥분됐어요. '오아시스'(2002) 때부터 반해서 '아, 내가 저 나이에 저런 연기를 할 수 있을까' 하며 꿈을 키웠거든요."

-대선배를 통해 느낀 게 있다면요.

"뭐랄까요, 되게 쉽게 연기하는 거 같아서 번번이 놀라웠어요. 근데 보기엔 그래도 실제로는 전혀 아니거든요. 그냥 훅 들어가시는 거 같은데 이미 준비가 다 돼 있으신 거죠. 내공이 달라요."

-본인 연기엔 만족했어요?

"글쎄요, 사투리가 좀 걸렸어요. 부산 토박이면 99% 사투리를 썼겠지만, 그렇지 못하니까요. 말하는 게 걸리적거리는 게 힘들었어요. 그래서 누가 시키지 않았지만, 부산 사는 분을 모셔 사투리를 배웠어요. 그분이 대사를 읽으면 제가 따라하는 식으로요. 다행히 현장에서 제 사투리 연기를 지적하신 분은 없대요. "

-'불한당원'들과 작년 6월에 영화를 함께 보신 걸로 알아요.

"잠실 롯데시네마 월드타워에서 대관했어요. 불한당원 500~600명과 제일 큰 상영관에서 봤죠. 반응이 이렇게 뜨거울 줄 몰랐죠. 다시 튼다길래 간 거였을 뿐인데, 출연진들을 엄청나게 환호해 주더라고요."

배우 문지윤은
▲ 배우 문지윤은 '불한당: 나쁜 놈들의 세상'(2017)에서 교도소 1인자 재호(설경구)의 오른팔 영근을 연기했다. /사진제공=CJ엔터테인먼트

그렇게, 지금 이 순간에 이르렀다. 긴 기간, 누군가는 스타로 떠올랐고, 누군가는 소리 소문 없이 퇴장했다. 그 또한 회의와 시련이, 고비의 순간이 없지 않았다. 그럼에도 이 정도면 그럭저럭 잘 버텨온 셈이다. 16년간 배우로서 외길을 걷는다는 것, 이건 보통 힘든 일이 아닌 것이다. 그는 말했다. "지난 세월을 간혹 돌이켜봐요. 한 친구는 너는 너무 노력을 안 하는 거 아니냐, 그래서 거기서 머무르는 거 아니냐고 해요. 다른 친구는 그동안 너가 거기 남아 있다는 것만으로 참 대단하다 하고요. 사실, 뭐가 맞는 건진 모르겠네요(웃음)." 데뷔 16년차이므로, 경력으로 치면 베테랑이다. 그러나 소싯적 꿈이었던 영화배우로서 여정은 이제 막 출발인지도 모른다. 그에겐 아직 스크린을 통한 존재 증명의 숙제가 남아 있다. "러셀 크로를 존경한다"는 그의 행보를 우리가 더 지켜봐야 할 이유다.

[김시균 기자]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