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이 허락하지 않은 맥주, 호가든 포비든 프룻

  • 취화선
  • 입력 : 2018.04.07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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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이 술술 인생이 술술-53] 한 10년쯤 전 벨기에산 밀맥주 호가든을 처음 맛봤다. 맛있었다. 충격적이었다. 거품이 몽실몽실하고 풍미가 싱그러웠는데, 그것은 내가 그때까지 마신 어느 맥주에서도 느껴본 적이 없는 것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때 나는 보통 국산 맥주를 마셨고, 끽해야 미국산 라거나 마셨던 것이었다.

이후 우리나라 맥주문화는 급속도로 발전했다. 마실 맥주가 많아지면서, 또 다른 술들을 마시게 되면서 차차 호가든을 찾는 횟수도 줄었다. 거기에는 한국 맥주회사에서 호가든 라이선스를 얻어 국내에서 생산한 것도 한몫했다. 맛 차이가 아주 클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런대도 왠지 안 당겼다.

금단의 열매, 선악과라는 뜻의 호가든 포비든 프룻. 라벨조차 과연 그 이름처럼 유혹적인 디자인을 하고 있다. /사진=홈페이지 캡처
▲ 금단의 열매, 선악과라는 뜻의 호가든 포비든 프룻. 라벨조차 과연 그 이름처럼 유혹적인 디자인을 하고 있다. /사진=홈페이지 캡처

얼마 전 마트 주류 코너에서 색다른 호가든 2종을 발견했다. 신기하고 반가웠다. 병에는 각각 '호가든 그랑크뤼' '호가든 포비든 프룻'이라고 쓰여 있었다. 마침 전용 잔을 주는 행사를 하고 있었다. 고민하다가 포비든 프룻을 집어들었다. 포비든 프룻이란 금단의 열매, 즉 성서 창세기의 '선악과'다. 신이 절대로 먹지 말라고 했던 바로 그 과일이다. 맥주 이름이 선악과라니.

라벨 또한 유혹적이었다. 라벨에는 독일의 화가 페테르 파울 루벤스의 '아담과 이브'를 패러디한 그림을 그렸다. 벌거벗은 남성이 맥주잔을 왼손에 들고 역시 나체의 여성에게 술을 권한다. 여성은 눈을 내리깔고 맥주를 음미한다.

호가든 포비든 프룻의 라벨 그림은 바로 이 그림, 페테르 파울 루벤스의
▲ 호가든 포비든 프룻의 라벨 그림은 바로 이 그림, 페테르 파울 루벤스의 '아담과 이브'를 패러디한 것이다. /사진=위키아트

자, 선악과 맥주를 맛보자. 너무 차갑게 마시면 향을 제대로 즐길 수 없을 것 같아서 냉장고에서 꺼내 상온에 30분쯤 뒀다가 먹었다. 밀도 높은 거품 피어오르다가 금세 사라진다. 이후 거품은 술잔을 다 비울 때까지 얇은 막처럼 술 표면에 남는다. 탁한 갈색이다. 술에서 허브향이 났다.

화사한 오렌지맛 사이로 고수(코리앤더)의 존재감이 느껴진다. 단맛이 살짝 비친다. 이름과 색 때문에 아주 깊고 진한 맛을 상상했다. 호가든에 비해 맛이 강한 건 사실이다. 그러나 호가든 특유의 화사함은 여전하다. 전체적으로 호가든에 힘을 준 느낌이다. 살짝 시큼하면서 쌉싸름한 잔향이 남는다. 선악과라는 이름에 어울리는 맛이다.

차갑게 마시면 어떨지 궁금했다. 다시 한 병을 냉장고에서 꺼내 바로 먹었다. 생각보다는 나쁘지 않았다. 알코올이 도드라진다. 상온에 살짝 뒀다 마시는 편이 더 맛있기는 하다.

알코올 도수 8.5도로 높은 편이다. 술이 약한 사람에게는 권하기 어렵다. 지인은 포비든 푸릇에서 소맥(소주와 맥주를 섞은 칵테일) 맛이 난다고 했다. 삼겹살 등 기름진 음식에 곁들이면 좋다. 330㎖ 한 병에 약 2500원.

[취화선/drunkenhwaseon@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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