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드롬 넘어 판타지 모드, 오타니의 진정한 가치

  • 정지규
  • 입력 : 2018.04.10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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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타니 쇼헤이 /사진=AP연합
▲ 오타니 쇼헤이 /사진=AP연합
[쇼미 더 스포츠-84] 이쯤 되면 신드롬을 넘어서 판타지 수준이다. 투수로서 첫 선발 출장해 퀄리티스타트(6이닝 3실점)를 기록하며 첫 승을 거둘 때만 해도 그러려니 했다. 인상적인 투구였던 것은 분명하지만 미국프로야구 메이저리그(MLB) 역사에서 데뷔전에 그 정도 수준의 투구를 보여준 신인은 많았다. 메이저리그 첫 선발 경기에서 그 이상의 임팩트를 보여주었던 일본프로야구 선배들도 있었고, 따지고 보면 그들의 활약 때문에 그에게도 기회가 왔다

하지만 타자로서 홈 데뷔 첫 타석을 홈런으로 장식하자 얘기가 좀 달라졌고, 이어진 3경기 연속 홈런은 스토리의 차원을 다르게 만들었다(마쓰이 가즈오도 14년 전 데뷔 타석에서 그것도 초구를 강타해 홈런을 쳐냈고, 그때도 열도가 들썩거렸다).

그런데 2번째 선발 등판은 많은 이에게 이제 충격을 넘어 경외심까지 불러일으켰다. 7이닝 1피안타 무실점, 12탈삼진, 6회까지 퍼펙트. 그야말로 야구 만화 주인공이 현실 속으로 튀어나온 거 같았다. 시범경기 때만 해도 혹평을 쏟아내던 미디어는 어느덧 그를 메이저리그 역사의 넘버원(NO.1)이자 미국의 상징인 베이브 루스와 동급으로 놓고 비교하고 있다. 요즘 가장 '핫'한 오타니 쇼헤이에 대한 이야기이다.

오타니가 주목 받는 것은 홈런과 장타를 쳐대는 거포에다가 160㎞의 속구를 던지는 선발투수이기 때문이다. 오타니는 꿈으로만 상상했던 것을 현실에서 보여주고 있으며, 프로야구에서는 볼 수 없을 거라 생각했던 야구팬들의 로망을 실현시켜주고 있다. 도대체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하게 된 것일까?

오타니 쇼헤이 /사진=AP연합
▲ 오타니 쇼헤이 /사진=AP연합
오타니는 리그 정상급의 투수이자 타자이다. 두 분야에서 잘해낼 수 있는 전제 조건을 기본적으로 가지고 있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오타니가 훌륭한 선수이고, 소위 '야구 천재'인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그에게는 미안한 얘기이지만 따지고 보면 그에 비견할 만한 야구 천재는 시대를 막론하고 한·미·일 도처에 있어 왔다. 아마추어야구에서 최고 투수가 4번 타자를 겸하는 일은 하나도 이상한 일이 아니다. 운동 능력이 월등한 선수가 투타에서 모두 다 잘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고교 시절에 투수로서 오타니는 일본아마야구 최초로 160㎞를 기록했지만, 제구력은 그다지 좋지 않았고, 투수로서 고교 랭킹도 10위권 밖이었다. 타자로서 그는 당시 최고 수준 이었지만, 시공을 초월하는 역대급까지는 아니었다. 하지만 오타니는 야구에 대한 열정에 있어서 조금은 엉뚱하다고 할 만큼 남다른 면이 있었다. 고교를 졸업할 무렵 그는 어렸을 때부터 동경하던 메이저리그 진출 선언을 일찌감치 하게 되는데 이로 인해 닛폰햄을 제외한 일본프로야구 팀들은 신인 드래프트 지명에서 오타니를 제외하게 된다.

닛폰햄은 지명권을 날릴 수도 있는 위험을 감수하며 오타니를 지명하는데 이때 오타니의 마음을 돌린 결정적인 것이 '이도류(투타겸업)' 프로젝트를 통한 설득이었다. 오타니의 어릴 때부터 꿈은 투타를 겸업하는 메이저리거였다. 하지만 이제 막 고교를 졸업한 일본선수에게 메이저리그는 호락호락한 곳이 아니다. 19세의 유망주에게 투타겸업은 고사하고 둘 중 하나라도 로스터를 보장해주는 메이저리그 팀은 그동안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것이다.

투타겸업은 비단 메이저리그뿐 아니라 일본, 한국에서도 그 사례가 매우 드물다. 선례가 거의 없다는 것은 나름의 이유가 있다. 그만큼 투타겸업은 프로에서의 성공 가능성이 낮고, 구단으로서도 감수해야 할 리스크(부상 등)가 크기 때문이다. 감수해야 할 리스크에는 팀 케미스트리도 포함되어 있음은 물론이다. 하지만 닛폰햄은 그 리스크를 기꺼이 감수하며 오타니를 영입했고, 그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물론 부상도 몇 차례 발생했고, 2017시즌은 부상으로 인해 출장 경기 수도 많이 적었기에 리스크 매니지먼트를 완전히 하지는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닛폰햄의 선택은 크게 성공한 것으로 평가 받고 있다.

2013년에 오타니가 이도류로 일본프로야구에 데뷔가 가능했던 것은 닛폰햄의 도움이 컸다. 하지만 2018년 오타니가 메이저리그 이도류가 가능했던 것은 오타니 자신의 의지와 치밀한 전략의 산물이다. 지난해 말로 되돌아가 보자. 오타니는 2017시즌 종료 후, 포스팅을 통해 메이저리그에 진출할 것을 선언한다. 이는 꿈을 향한 순수한 열정인 동시에 지극히 비합리적인 선택으로 보였다. 현재 미·일프로야구 협정상 일본구단이 선수를 메이저리그에 보냄으로써 받을 수 있는 포스팅 금액 상한액은 2000만달러이다. 이는 마쓰자카, 다르빗슈 유의 절반 이하이고, 류현진이 LA다저스에 갈 때보다 적은 금액이다.

문제는 연봉인데, 23세인 오타니가 당장 진출하면 받을 수 있는 연봉은 메이저리그 최저액인 54만5000달러이다. 일본에서 받던 돈의 5분의 1이 채 되지 않는다. 일본에서 2년만 기다리면 FA 자격 취득과 함께 돈방석에 앉으며 진출할 수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포스팅을 택하는 것은 지극히 비합리적이고, 꿈을 향해 지나치게 서두르는 것처럼 보였다. 반대로 메이저리그 구단들에 오타니는 로또 그 자체였다. 물론 계약금이 좀 들어가긴 하지만 54만5000달러의 연봉에 일본 현역 최고 수준의 선수를 데려오는 기회가 생겼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30개 메이저리그 구단 중 무려 27개 구단이 오타니 포스팅에 참여했다.

오타니는 돈을 포기하고 '갑질'을 택했다. 자신이 꿈꿔왔던 메이저리그에서의 이도류 실현을 위해 구단들에 자신을 어떻게 활용할지에 대한 숙제를 내주었고, 가장 만족할 만한 답안지를 낸 LA 에인절스를 택했다. 구단으로서는 1000만달러의 선수가 투타겸업을 조건으로 내세운다면 받아들이지 않았겠지만, 1000만달러의 실력을 가진 54만5000달러 선수가 하겠다는 것은 한번쯤 모험을 걸 만한 일이었다. 그리고 적어도 지금까지는 양측 모두에게 이는 신의 한 수였다.

오타니가 2년 뒤 FA 취득 후에 메이저리그 진출을 기약했다면, 일본에서 더 많은 돈을 벌었을 테고, 미국에서 더 많은 돈을 받을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메이저리그에서 '이도류로'서의 활약할 기회를 부여받을 수 있었을지에 대해서는 좀 회의적이다. 메이저리그에서 그동안 투타겸업이 되지 않았던 가장 큰 이유는 선수의 부상 위험과 이로 인한 구단의 금전적 손실 때문이다. 서로 다른 근육을 쓰는 투타겸업은 아무래도 부상 위험이 크고, 이는 오타니도 예외는 아니며 잠재적 리스크 또한 여전히 있다.

다시 처음 질문으로 돌아가보자. 메이저리그에서의 '이도류' 도대체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한 걸까? 오타니의 가치는 160㎞가 넘는 투수로서의 능력, 3경기 연속으로 홈런을 쳐대는 파워, 동양인으로서의 희소성과 화제성, 이런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다. 그의 진정한 가치는 눈앞의 이익에 집착하지 않는 현명함과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연구하고 준비하는 치밀한 전략에 있다. 그게 일본인이냐 아니냐는 더 이상 의미가 없다. 그는 우리에게 당장의 돈보다는 꿈 그리고 그 꿈을 실현하기 위한 지혜가 더 중요하다는 것을 알려주고 있다. 그게 바로 오타니의 진정한 가치이다.

[정지규 스포츠경영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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