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 모던발레의 선구자 제임스 전, 그가 만든 카르멘 평가는?

  • 김연주
  • 입력 : 2018.05.12 1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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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스테이지-123] 정열의 하바네라, 집시여인의 매혹적인 춤. 가장 대중적인 오페라 '카르멘'이 한국 창작 모던 발레의 선구자로 불리는 제임스 전의 손에서 새롭게 태어났다. 현대무용 전문가인 그와 한국무용을 바탕으로 하는 서울시무용단의 이색만남이라 개막 전부터 기대를 모았다.

한데 의욕이 과했나 보다. 빈틈 없는 무대, 화려한 의상 여기에 쉴틈 없는 안무가 꽉 들어찼지만 서로 어우러지지 못해 되레 공허하게 느껴졌다. 이야기 전개와 결말도 파격적으로 바뀌었지만 참신하거나 새롭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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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무용단의 '카르멘'은 기존의 스토리를 과감하게 각색했다. 원작과 다르게 이 작품은 호세의 심리를 따라 극이 진행된다. 유혹당하고 번뇌하고 결국 후회하는 호세의 감정이 극 전반을 지배한다. 또 조연에 머물렀던 호세의 약혼녀 미가엘라가 전면에 등장해 카르멘과 삼각구도를 이룬다. 미가엘라는 호세가 카르멘에게 빠져 잘못된 선택을 하는 순간마다 아름다운 춤으로 그를 바른 길로 인도하고자 한다.

반면 제임스 전은 카르멘은 아담과 이브를 타락시킨 '뱀', 즉 유혹자로 해석했다. 카르멘은 남자들을 유혹하기 위해 쉴 새 없이 몸을 밀착하고 엉덩이를 흔든다. 카르멘은 위험에서 벗어나기 위해 모범적이고 약혼녀가 있는 군인 돈 호세를 유혹하지만 투우사 에스카미요가 나타나자 변심해 그를 유혹하고 돈 호세를 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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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르멘이 지금까지도 대중에게 사랑받는 건 여주인공 카르멘의 매력 때문이리라. 그는 결국 죽음으로 생을 마치는 비운의 여주인공이지만 남성들 앞에서 당당하게 자신의 욕망을 드러낸 진보적인 여성상이다. 페미니즘과 '미투' 운동 등 최근 한국사회에 불고 있는 여성에 대한 인식 변화와도 일맥상통하는 캐릭터기도 하다. 그런 자유분방한 팜므파탈의 대명사 카르멘이 이번 무대에서는 요염한 표정으로 엉덩이를 흔들거나 다리를 벌리는 동작만을 반복한다. '관능적이고 치명적인 여인'의 클리셰로 소모되고 말았다. 호세라는 남성주인공의 시각에서 극이 흘러갔기 때문일까. 아쉬운 대목이다.

무대의상은 영부인 김정숙 여사의 취임식 의상 등을 제작해온 양해일 디자이너가 맡았다. 우리나라 전통 민화(民畵) 프린트에 프랑스 감성의 색깔을 입힌 화사하고 우아한 의상이었다. 개별적으로는 나무랄 데 없이 아름다운 의상이었으나 모든 무용수가 배역에 상관없이 착용하다 보니 무대 위에서는 화려함이 지나쳤다. 현란한 무대조명도 관객의 집중을 방해했다. 쉴 틈 없이 빛나는 총천연색의 조명은 80~90년대 카바레를 연상시켰다. 배우들의 과한 표정연기 역시 객석의 감정 이입을 방해했다. 모두가 넓은 세종문화회관을 꽉 채우겠다는 부담감을 느꼈던 걸까. 전반적으로 과유불급의 무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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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2막 첫 장면 부채춤만큼은 강렬했다. 제임스 전이 추구하는 아름다움을 엿볼 수 있는 장면이었다. 보헤미아풍 음악과 집시 여인들의 부채춤. 유럽 민속적 정서와 한국 전통이 절묘하게 교차했다. 붉은 부채가 우아하게 그리는 동선이 때로는 집시여인들의 유혹적 몸짓처럼, 때로는 한국무용의 아름다운 곡선처럼 보였다. 미가엘라와 호세가 추는 고뇌의 파드되는 한국 무용의 주요 동작을 이용했는데, 두 배우의 호흡이 이 순간 만큼은 빛났다.

또 이야기가 80분 동안 매우 스피디하게 전개돼 객석은 지루할 틈이 없었다. 직관적이고 다채로운 안무는 '무용은 어렵다'는 편견을 깨뜨렸다. 무대의 깊이를 활용하고 OP석(오케스트라 피트석)까지 사용한 넓은 동선은 객석으로부터 열띤 호응을 받았다. 호세와 카르멘이 앞 무대에 나와 연기할 때면 그들의 표정부터 손짓 하나하나까지 모두 볼 수 있었다.

[김연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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