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이란 이름의 폭력... 연극 '얼굴도둑'

  • 김연주
  • 입력 : 2018.05.26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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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스테이지-125] 무대 위에서 "사랑해"란 말이 들려올 때마다 괴롭다.

딸이 울먹이며 묻는다. "엄마는 어떻게 그토록 당연하게 빼앗아가고, 나는 왜 그렇게 무력하게 빼앗겼어야 했는지." 답은 사랑하기 때문이다.

국립극단이 2018년 첫 번째 창작 신작으로 선보이는 '얼굴도둑'(5월 11일~6월 3일 백성희장민호극장)은 가장 작은 단위의 공동체인 가족, 그중에서도 엄마와 딸의 이야기를 통해 인간의 심리와 내면의 갈등을 예리하게 들여다본다.

세상 모든 사람의 얼굴이 엄마의 얼굴로 보이는 병을 앓고 있는 유한민이 어느 날 잔혹한 방법으로 세상을 떠난다. 얼굴 가죽이 뜯긴 채로 말이다. 엄마는 자신이 최고로 키우기 위해 온 정성을 쏟았던 딸의 죽음을 납득하지 못한다. '치매'로 서서히 지워져 가는 기억을 붙잡고 딸의 죽음에 대한 진실을 파헤치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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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도둑은 누구인가. 작품은 참혹하게 죽은 유한민의 사망 원인을 규명하는 과정을 담고 있다. 광풍이 휘몰아치는 바깥을 집 안에서 홀로 멍하니 바라보는 '엄마'의 모습으로 극은 시작한다. 스산한 분위기가 물씬 풍긴다. 유한민을 살해한 범인을 쫓는 경찰과 한민의 남자친구 그리고 엄마. 그런 그들이 진실에 다가가는 것을 어떤 이유에서인지 엄마의 친구라는 눈 먼 무당이 방해하면서 갈등은 서서히 고조돼 간다. 일종의 미스터리 범죄물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는 관객을 객석에 앉히기 위한 미끼에 불과하다. 작품은 '잔혹스릴러'의 외피를 두른 '일상심리극'이다.

"엄마 웃는 얼굴 생각하면 나 뭐든지 참을 수 있어요."

"엄마도 우리 한민이 행복을 위해서는 뭐든지 할 수 있어."

객석을 뒤흔드는 건 극적인 반전이나, 스릴러적인 요소가 아니다. 오히려 엄마와 딸이 나누는 일상 속 대화들이 바늘처럼 심장을 콕콕 쑤신다. 젊은 작가의 극적 표현력이 놀랍다. 엄마가 사랑하는 딸이 왕따인 사실을 알게 됐지만, 도무지 인정할 수 없어 강하게 꾸짖고 마는 장면. 딸이 숨기다 못해 자신의 비밀을 엄마에게 털어놓지만 부정당하는 장면. 이런 평범한 엄마와 딸의 일상적인 장면들이 오히려 숨통을 조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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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이 호소력을 갖는 지점은 딸 유한민의 캐릭터다. 너무나 착하고 연약한 딸이라 연신 객석의 동정을 자아내던 그는 마지막 순간 누구도 생각하지 못한 극단적인 방식으로 엄마로부터 독립을 꾀한다. 제목의 얼굴도둑은 엄마인 동시에 딸이다. 이 다소 도발적 제목은 부모가 자식의 얼굴을 어떻게 빼앗았는지를 묻는다. 부모의 욕심이 만들어낸 자식의 가짜 얼굴, 부모가 바라는 얼굴로 살아가기 위해 자신의 얼굴을 잃어버린 아이. 그 과정에서 빚어진 비극적 사건을 다룬다.

유한민은 빼앗겨버린 자신의 얼굴, 엄마의 사랑과 기대에 맞추느라 어느 새 엄마 얼굴이 되어버린 자신의 얼굴을 뜯어내면서, 이제는 '자기 자신'으로 살겠다고 생의 끝에서 외친다. 반대로 엄마는 딸이 부정하고 싫어하게 되어버린 자신의 얼굴을 뜯어냄으로써 후회의 눈물을 흘린다. 후회는 '사랑'이란 이름으로 자신이 저질렀던 오류를 깨닫고 이를 제자리에 돌려놓으려는 한민의 몫이 아니다. 끝까지 자신의 '사랑'에는 잘못이 없다고 믿는 엄마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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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도둑은 젊은 극작가인 임빛나의 세 번째 작품으로, 국립극단이 창작극 개발 프로그램을 통해 직접 발굴한 작품이다. 아쉬움이 남는 부분도 있다. 지나치게 극단적인 '엄마' 캐릭터다. 엄마는 연신 딸을 너무 몰아세운다. 엄마에게는 관객이 동정하거나 감정이입 여지가 없다. 너무 강압적이고 또 속물적이다. 우리는 누군가의 딸이면서도 또 엄마이기 때문에 엄마에게도 공감의 여지를 열어두었으면 좋지 않았을까. 이렇게 극단적인 엄마와 딸이 아니더라도 우리는 아주 일상적인 '엄마와 딸'의 관계 속에서도 의도치 않은 '사랑의 폭력'을 충분히 찾을 수 있다. 또 조연인물들의 활용도 아쉽다. 엄마 친구로 등장한 '무당'은 객석에 웃음을 선사하지만 되레 극적 개연성을 떨어트린다. 조연인물들의 비중을 줄이고 엄마와 딸의 관계에 집중했으면 보다 밀도 높은 심리극의 매력을 보여줄 수 있지 않았을까.

[김연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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