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리플 바흐' 스페인무용단 수석 김세연, 춤꾼들에게 자유를 주다

  • 김연주
  • 입력 : 2018.06.02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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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스테이지-126] '트리플 바흐'는 호세 마티네스 스페인국립무용단 예술감독이 막 프로 무용수로 시작하는 단원들을 위한 안무를 수석 무용수인 김세연에게 맡긴 작품. 김세연은 춤을 추고 싶어 안달 난 젊은 무용수들을 위해 하얀 도화지에 맘껏 색을 칠하듯, 무용수들이 자신의 기량을 펼치며 원 없이 춤출 수 있는 무대를 준비했다. '트리플 바흐'는 지난달 31일 제8회 대한민국발레축제의 개막작으로 무대에 올랐다.

선율을 따라 흔들리는 팔과 리듬에 맞춰 뻗는 다리가 마치 바흐가 오선지에 그려넣은 음표 같다. 발레의 기본 동작들이 바흐의 아름다운 리듬에 맞춰 활기차게 펼쳐진다. 한 명의 무용수가 춤추며 전진하면 그다음 무용수가 변주된 춤으로 뒤따른다. 바흐의 대위법 등 음악적 매력이 고스란히 무대 위에서 시각적으로 되살아났다. 바흐 브란덴부르크 협주곡 3번은 굉장히 빠른 박자의 음악임에도 춤추는 무용수들은 굉장히 편안해 보인다. 만면에 활짝 피어난 미소는 진정 춤을 즐기고 있었다. 경쾌하고 또 발랄하다.

김세연은 "춤을 췄던 사람이기에 무용수들이 추기 어려운 동작이 아닌 가장 잘할 수 있는 동작을 중심으로 안무했다"며 "특히 개개인의 개성이 잘 드러날 수 있도록 수정을 거듭했다"고 설명했다. 자신의 몸을 최대한 갈고 닦는 고된 훈련이 수반되는 발레와 '자유'란 단어의 조합은 어색하다. 하지만 '트리플 바흐' 무대에서 무용수들은 너무나 자유로웠다.

유니버설발레단을 거쳐 스페인국립무용단 수석 무용수로 그리고 이제는 안무가로 활약하고 있는 김세연과 '트리플 바흐'의 주역으로 이번에 합을 맞춘 발레리나 조한나를 매일경제가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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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제목이 '트리플 바흐'인가요.

▷숫자 3이 이 작품에서 굉장히 중요해요. 일단 브란데부르그 협주곡 3번이 이번 무대에 주 음악이고요. 이 음악은 바이올린 3대, 비올라 3대, 첼로 3대로 많이 연주를 한다고들 하더라고요. 그리고 들어보면 음악이 크게 3개의 무브먼트로 진행돼요. 그래서 세 번의 파드되(2인무)를 안무했죠. 바흐의 음악에는 굉장히 수학적 정신이 담겨 있다고들 하잖아요. '3'이 음악의 핵심이라 생각했어요.

무대 위에서 펼쳐지는 총 세 번의 파드되(2인무)는 모두 전혀 다른 빛깔의 매력을 지녔다. 첫 번째 파드되가 정열적이고 강렬하다면 두 번째 파드되는 아슬아슬한 긴장감이 돋보이고, 세 번째 파드되는 곱고 우아하다. 각각의 무용수들의 개성을 포착해 살려낸 안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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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번의 파드되가 전혀 다른 분위기로 진행됩니다.

▷무용수들의 개성을 살릴 수 있는 파드되를 안무했어요. 기존 안무도 무용수들과 함께 연습하면서 그들의 몸에 맞게 바꾸었죠. 전체적인 구도와 뼈대를 만들어 놓고 디테일은 함께 만들었어요. 처음 스텝을 주면 다음 스텝은 무용수들이 자연스럽게 만들어가는 방식이죠. 세 파드되는 구체적인 이야기를 염두에 두고 만든 건 아니지만 '관계'에 대한 메타포로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첫 번째 움직임은 '싱그러운' 면이 있죠. 이때는 여자 무용수가 남성 무용수를 강하게 리드하는 느낌이 있어요. 두 번째 파드되는 '위태로움'이죠. 서로가 서로를 회피하고 도망치려는 느낌이에요. 세 번째 커플은 '천상의 커플'이랄까요. 다 용서하고 화해하고 두 사람이 서로를 포용하는 느낌입니다(김세연).

-프로 무용수로 막 입단한 어린 친구들을 위한 작품이라고 들었습니다.

▷춤을 너무 추고 싶을 때죠. 춤이 너무 즐거울 때고요. 우리 무용수들이 가장 잘할 수 있는 동작들, 성격이나 특기 개성을 마음껏 펼쳐서 즐겁게 춤출 수 있는 무대를 구상했어요. 예를 들어 저희 군무에 점프를 엄청 잘 뛰는 친구가 있어요. 그 친구를 위해서 길지는 않지만 그 높은 점프를 보여줄 수 있는 파트를 만들어 주었죠(김세연).

▷새로운 작품은 시작할 때 늘 어려워요. 스트레스를 주는 작품도 있는데, 이번 '트리플 바흐'는 익숙하지는 않지만 계속 추고 싶어지는 작품이에요. 완성된 작품을 주신 게 아니라 조금씩 만들어 가고 있는 과정에 함께하고 있어요. 정말 제 개성이 반영되고 있다는 느낌이 들어요(조한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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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레리나로서 최전성기를 누리고 이제 무용수로서 인생 2막을 열고 있는데요. 마음가짐이 다른가요.

▷안무가가 솔직히 더 재밌어요. 무용수는 언제나 '나를 관리해야 한다'는 책임감이 무거웠거든요. 앞으로 기회가 된다면 스토리 발레도 하고 싶어요.

-스페인국립무용단의 호세 마티네스의 제안으로 안무를 하게 됐다고 들었습니다. 스페인무용단에서는 무용수들이 안무를 하는 일이 흔한 일인가요.

▷스페인 국립무용단들은 무용수들에게 안무를 할 기회를 최대한 많이 주려고 하고 권장해요. 컨템퍼러리 작업을 하는 친구들은 본인이 직접 안무를 하는 기회가 절실하거든요. 후원 브랜드 신규 매장 오픈 행사에서 출 소품이라거나, 박물관에서 무용수를 초청하는 프로그램을 직접 안무하게 한다든지 큰 규모는 아니지만 끊임없이 기회를 열어주죠. 그런 게 무용수들의 경험을 넓혀주고 또 다른 길을 열어주는 것 같아요(김세연).

-관객들이 어떤 마음으로 '트리플 바흐'를 본 뒤 공연장을 떠났으면 좋겠습니까.

▷관객들이 컨템퍼러리 발레를 즐길 수 있는 기회가 됐으면 좋겠어요. 익숙한 차이콥스키 음악이 아닌 지금 창작된 작품이잖아요. 의상도 굉장히 심플하고, 이야기도 없고, 조명도 굉장히 단순하지만 오로지 무용수들의 열정만으로 채운 무대예요. 그 열정이 관객의 마음을 움직여 감동을 줄 수 있길 바랍니다(김세연).

▷저는 관객의 입장에서 작품을 보고 있어요. 낯설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보다보면 클래식 발레의 구성을 다 갖추고 있어요. 오히려 편하게 볼 수 있는 작품인 것 같아요. 춤 그 자체를 즐길 수 있길 바랍니다. "오 재밌다!" 이런 반응이면 충분합니다(조한나).

[김연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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