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운 속 몰락하는 인간 묘사와 관찰, 소설가 '필립 로스'가 남긴 것

  • 조성준
  • 입력 : 2018.06.21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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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예술가의 사회-1] 필립 로스 (소설가, 1933~2018)

◆몰락하는 사람들

추석에 본 부모님의 손등 주름이 지난 설날보다 더 깊어졌음을 느낄 때. 계단 하나 오르는 데도 낭떠러지 근처를 걷듯 아슬아슬한 노인 옆을 지날 때. 텔레비전에서 불치병 환자의 가슴 아픈 사연을 들을 때. 지척에 널린 죽음의 기운은 어떤 식으로든 마음을 흔든다. 사람이 죽는다는 개념, 어린아이도 아는 이 명확한 진실은 삶 속에선 이해하기 어렵다. 오늘 마주친 모든 사람의 육체와 기억, 표정과 목소리, 장점과 단점이 언젠가 반드시 소멸한다는 사실은 외면하고 싶다.

필립 로스의 소설 '에브리맨'은 죽음을 에둘러 말하지 않는다. 주인공은 죽음 근처에 다가간 노인이다. 그는 쇠퇴하는 육체에 맞서보지만 번번이 무너진다. "노년은 전투가 아니다. 대학살이다"라고 탄식한다. 그가 은퇴자 모임에서 만난 한 노인 여성은 허리가 아파 자살한다. 목숨을 끊는 게 더 나을 만큼의 허리 통증이란 뭘까. 화사한 청춘의 한순간에도 떠올리는 것만으로 등골이 오싹한 죽음은 죽을 때까지 수수께끼다.

죽음을 다룬 '에브리맨' 말고도 필립 로스 소설을 읽다보면 불가해한 감정에 사로잡히기 쉽다. 그의 작품엔 주로 무너지는 인물이 나온다. 누구나 죽음을 맞듯 누구라도 세상의 이빨에 물어뜯긴다. 의도하지 않은 말실수에 인종차별주의자로 몰려 몰락하는 대학교수(휴먼 스테인). 성공한 삶을 누리다 테러리스트가 된 딸 때문에 무너지는 남자(미국의 목가). 매카시즘 광풍 속에서 이념투쟁이 아닌 미로처럼 꼬인 부부관계로 망하는 공산주의자(나는 공산주의자와 결혼했다). 이들에게 비극은 치밀한 시나리오처럼 차곡차곡 다가온다. 오해받고, 배신당하고, 병들고, 초라해지며 늙다 죽는다. 왜 이들에게 혹독한 시련이 밀린 고지서처럼 끈질기게 찾아올까. 뜯어보면 대부분 문제적 인물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이 정도로 철저하게 몰락할 이유가 있을까.

◆불운 때문에 쓰러지고, 불운에 맞서다 쓰러지고

필립 로스의 인물들은 얼핏 거대한 운명의 소용돌이에 휘말린 희생자처럼 보이지만, 자세히 보면 그들이 몰락한 이유는 거창하지 않다. '휴먼 스테인' 주인공 콜먼 실크 교수의 삶이 산산조각 난 이유를 보자. 그는 자신의 강의에 코빼기도 비치지 않는 두 학생을 두고 'spooks(유령들)'라고 표현했다. 이 단어엔 흑인을 비하하는 뜻도 담겨 있었다. 결석한 두 학생은 흑인이었다. 교수는 한 번도 본 적 없는 그들의 피부색을 몰랐다. '안 보이기' 때문에 '유령들'이라고 말했을 뿐이다. 흑인 차별 혐의로 몰린 콜먼 실크는 아이러니하게도 백인에 가까운 피부색 때문에 자신이 흑인임을 오랫동안 숨기고 살았던 인물이다. 중요한 건 그는 흑인의 정체성을 부정하며 살았던 운명이 벌인 얄궂은 장난 탓에 망한 게 아니다. 그날 'spooks'란 단어만 선택하지 않았어도 교수는 여생을 편안히 보냈을 것이다. '그냥' '어쩌다' '하필' 운이 나빴을 뿐이다.

또 다른 작품 '네메시스'에도 불운으로 무너진 사람이 나온다. 배경은 1944년 여름 미국 뉴어크. 주인공 버키 캔터는 뛰어난 운동신경을 가진 강한 청년이다. 다만 시력이 나빠 2차 세계대전에 참전하지 못했다. 그의 직업은 동네놀이터 감독관(체육교사)이다. 아이들을 정성껏 돌보며 전쟁에 나서지 못한 죄책감을 덜고자 한다. 그 무렵 전염병 폴리오가 동네에 상륙한다. 버키의 노력에도 그가 돌보는 학생 몇 명이 폴리오에 감염돼 목숨을 잃는다. 전염병이 동네를 집어삼킬 때쯤 버키는 애인이 일하는 산속 캠프로 도망치듯 떠난다. 그 과정에서 아이들을 폴리오 속에 버리고 왔다는 양심의 가책에 시달린다. 전염병은 산속 캠프까지 찾아온다. 버키는 이 비극의 책임이 본인에게 있다고 여기며 폴리오와 맞서 싸우기로 한다. 한 도시를 덮친 병마에 맞서 개인이 할 수 있는 일은 별로 없었다. 우연에 대들었던 이 남자의 인생은 죄책감에 잡아먹혀 빛이 바랜다. 버키의 삶은 어리석어 보이지만, 이 세상에 본인의 잘못이 아닌 불운을 두고 자책하는 버키는 얼마나 많은가.

◆소나기를 대비할 순 없다

따스한 볕 아래 기분 좋게 걷고 있다고 해서 몇 시간 뒤 소나기에 젖지 말란 법은 없다. 일상은 별안간 내리는 비처럼 우연으로 가득하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우연과 함께하는 여정의 끝이 어떤 모습일지는 예측하기 어렵다. 우리의 앞날은 계획대로 풀리지만은 않을 것이다. 이것이 필립 로스가 던진 냉혹한 교훈이다. 노력, 열정, 성공신화를 숭배하는 오늘날에도, 운이 따라줘 나락으로 떨어지지만 않아도 가슴 쓸어내려야 하지 않을까. 거꾸로 생각하면 손쓸 틈 없이 불행이 찾아왔을 때 머리를 쥐어뜯으며 답 없는 고민에 빠질 필요가 없다는 교훈을 얻을 수도 있다. 꿋꿋이 이 소나기가 지나가길 버티는 태도가 자책보다는 낫다는 말이다. 수렁에서 기어나올 체력은 '원래 인생 따위가 이 모양이지'라는 자세에서 길러야 할지도 모른다.

"영감을 찾는 사람은 아마추어이고, 우리는 그냥 일어나서 일을 하러 간다." 필립 로스는 '에브리맨'에서 이렇게 썼다. 60년 가까이 글을 쓰고 전 세계 독자에게 영감을 준 필립 로스는 지난 5월 22일 85세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노벨문학상 유력 후보로 수차례 거론됐지만, 끝내 수상은 이뤄지지 않았다. 그 대신 전미도서상, 미국도서비평가협회상, 펜포크너상, 펜나보코프상, 펜솔벨로상, 퓰리처상 등을 수상했다. 미국 작가 중 문학상을 가장 많이 받은 작가로 알려져 있다. 코맥 매카시, 토머스 핀천, 돈 드릴로와 함께 미국 현대문학 4대 작가로 불렸다. 유대인이었던 필립 로스 장례식은 고인의 생전 의지에 따라 유대교 방식으로 이뤄지지 않았다고 한다.

[조성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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