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세라티의 블랙 '네리시모', 감성과 성능 그리고 가격 사이의 그 어디쯤

  • 김정환
  • 입력 : 2018.06.21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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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쉽게 쓰여진 시승기-61] 럭셔리카는 그 자체로 많은 사람들이 갖고 싶어하는 드림카다. 그런데 럭셔리카면서 한국에 단 몇 대밖에 없는 리미티드 에디션(한정판)이라면 어떨까.

벌써부터 자동차 마니아들 눈빛이 이글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럭셔리카+리미티드 에디션' 조합이 가진 힘은 세속적이면서도 강렬하다. 왠지 다른 럭셔리카보다 한 계단 위에 선 듯 우쭐하면서 갖고 있으면 언젠가 더 큰 자산가치가 돼 돌아올 것 만 같은 '느낌적인 느낌'이다.

마세라티는 독일 차가 난립한 한국 시장에서 단연 눈에 띄는 존재다. 강렬한 삼지창 로고와 도로에서 찾기 어려운 이탈리안 카리스마를 버무렸다. 여기에 영리하게도 올해 한정판이라는 외투를 입혔다. 지난달 갓 출시된 올 블랙 모델 '네리시모' 이야기다.

마세라티는 2018년형 기블리, 콰트로포르테, 르반떼 내·외부를 모두 딥블랙 컬러로 물들이고 네리시모 간판을 붙였다. 전 세계적으로 450대만 판매되는 모델인데 한국에 50대가 배정돼 럭셔리카 세계에서 달라진 위상을 반영했다.

17일 마세라티 3형제 중 막내인 기블리 네리시모에 올랐다. 서울 양재동~서판교~경기 광주 일대를 넘나드는 100㎞에 이르는 굵고 짧은 코스다. 서울외곽순환도로 등 고속주행이 가능한 도로와 서울 도심, 커브가 심한 광주 특유 언덕길 등이 고루 배합됐다. 럭셔리카 시장 다크호스 네리시모를 타본 성적표는 이렇다.

목차

1) 디자인: 콰트로포르테에 판정승

2) 주행능력 : 밟은 대로 나가는 솔직함

3) 내부 공간 : 제발 얼굴만큼 이뻤으면

4) 편의 장비 : 독일 차 뒤축에도 못 미친다

5) 가격: 가성비로만 따져보면 '노답'



1) 디자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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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시승했던 차 중에 가장 아름다운 차(순수하게 외모만 기준으로 본다면) 1순위는 단연 2018년형 콰트로포트테다. 헤라클레스의 몸에 아폴로의 얼굴을 달고 있는 차다.

세단인 '주제'에 전장이 5m 훌쩍 넘는 신체 건강한 거대함을 갖췄다. 여기에 선 굵고 쭉 찢어진 눈. 많은 사람들 로망이 된 큼지막한 삼지창 로고. 더 이상 말이 필요 없다.

그런데 콰트로포르테를 꺾을 맞수가 같은 가계도 내에 등장했다. 기블리 네리시모다. 원래라면 기블리는 콰트로포르테 포스에 상대가 되지 않는다는게 중론이다. 거대한 콰트로포르테 그릴과 비교했을 때 잔뜩 오므린 듯한 입술에 후드에서 전면 헤드라이트 상단까지 이어지는 경사도 기품 없이 급격히 기울어졌다. 엔트리카 시장 저변 확대를 위해 내놓은 '콰트로포르테 압축판'이라는 느낌이 상당하다.

기블리 네리시모는 이 판을 뒤집었다. 첫 인상은 '뭔가 지금까지 기블리와 다르다'다. 사실 네리시모 기블리는 좀 거칠게 얘기하자면 단순히 색깔만 올 블랙으로 바뀌었다고 말해도 무방한 모델이다. 성능 차원의 변화는 거의 없다고 보면 된다. 하지만 전혀 다른 차처럼 인상이 달라졌다. 프런트 그릴, 윈도 몰딩, 도어 핸들, 대시보드, 인테리어 트림, 다크 휠 등 여러 가지 디테일이 바뀌었지만 딱 한 가지만 꼽으라면 프런트 그릴이다. 그릴까지 모두 올 블랙으로 칠하며 콰트로포르테와 비교해 왜소한 것 같은 입술 윤곽에 차체 색깔이 녹아들었다. 기블리가 이렇게까지 이뻐질 수 있다는 사실이 놀랍다.

2) 주행능력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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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 탄 기블리 네리시모는 스포츠 성능에 방점을 찍은 그란스포트 모델이다. 콰트로포르테 동생 격으로 성능은 종전 뉴 기블리와 크게 다른 점이 없다고 보면 된다.

섀시, 서스펜션 레이아웃, V6 엔진, 8단 ZF 자동 변속기를 콰트로포르테와 모두 공유한다. 다만 콰트로포르테에 비해 길이는 293㎜ 짧은 대신 무게는 50㎏ 더 가볍다.

마세라티 파워트레인 V6 가솔린 엔진은 이탈리아 마라넬로 페라리 공장에서 독점 제조되는 것으로 유명하다. 최고 속도 시속 267㎞에 정지 상태에서 시속 100㎞까지 5.5초 만에 주파할 수 있다.

스펙은 이 정도. 이쁜 외모를 보고 일으킨 흥분을 걷어내고 냉정하게 주행 평가에 들어갔다. 네리시모 기블리 성능은 '훌륭하다'와 '매우 훌륭하다' 중간 어디쯤을 떠돌고 있다.

3m짜리 긴 휠베이스로 안정적으로 주행하면서 날카로운 핸들링의 손맛도 살아 있다. 차량 전후 무게도 잘 배분됐다. 뭔가 잘 짜인 오케스트라를 감상하고 있다는 느낌으로 이해하면 된다.

다만 레이싱 DNA가 이식된 만큼 정숙성은 기대하지 않는 게 좋다. 불과 초기 가속에 들어갔지만 벌써부터 리어 미러 근처 차체에서 진동소리가 들리기 시작한다. 혹시라도 가족들이 같이 타는 차를 기대했다면 고속 주행 때 떨림 현상과 소음이 생각보다 크다는 점은 감안하는 게 좋다. 애초 섹시한 팜므파탈에 정숙한 숙녀를 기대하는 것 자체가 무리다. 이 차는 패밀리카 대척점에 있는 차라는 점을 명심하자.

3) 내부 공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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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마디로 기대 이하다. 올 블랙 가죽에 레드 스티치로 모양을 냈지만 딱히 고급스럽다는 느낌은 들지 않는다. 적어도 내부는 이탈리아 차라기보다는 미국 차 같다는 느낌이 지배하고 있다.

마세라티를 쥐고 있는 피아트크라이슬러그룹(FCA)에 크라이슬러가 합쳐지며 마세라티 안방조차 크라이슬러를 닮아가고 있다는 비판은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마세라티 특유 아날로그 시계는 붙어 있지만 여전히 대시보드와 센터페시아에서는 크라이슬러 냄새가 풀풀 난다. 다만 전장이 5m에 육박하는 차인 만큼 수납 공간은 널찍하다. 3m에 달하는 휠베이스로 푹 기대 앉을 수 있는 공간도 장점.

4) 편의 장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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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세라티는 독일 차에 비할 수 없는 희소성이 최대 강점이다. 하지만 편의 장비는 '제발 좀 독일 차 정도는 따라 가줬으면…' 하는 진한 아쉬움을 남긴다.

널따란 터치 패드를 전진 배치하며 분위기를 띄우기는 했지만 내비게이션, 인터페이스 등 첨단 기술 트렌드에는 상당히 많이 뒤처쳤다. 이제 고급차 필수 공식이 된 헤드업디스플레이(HUD)조차 없다. HUD에 익숙해져 있는 소비자라면 한동안 시선 조정하는 데 어려움을 겪을 것 같다.

5) 가격: ★★

그렇다. 결국 가성비다. 네리시모 버전 기블리는 라인업별로 1억2500만~1억4400만원 가격표가 붙었다. 종전 뉴 기블리(1억1240억~1억4080만원)보다 300만~1200만원 비싸졌다.

여기서부터가 최대 고민이다. 종전 뉴 기블리도 가성비로만 놓고 보면 딱히 답이 나오지 않는 차다. 언뜻언뜻 비치는 크라이슬러의 그림자가 불안하다. 성능은 훌륭하지만 그 값이면 차라리 다른 럭셔리카를 레벨업해 타겠다는 끊임없는 유혹에 시달릴 수밖에 없다. 이 점에서는 네리시모도 예외가 아니다.

6) 총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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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세라티는 역시 감성으로 타는 차다. 가성비가 최대 문제지만 실속 있게 주판알 튕겨 따지는 소비자를 위한 차가 아니다.

게다가 네리시모 기블리에는 한정판이라는 강렬한 유혹이 따라 붙었다. 콰트로포르테는 여러모로 부담스럽고 그렇다고 종전 기블리 얼굴은 마음에 안 찬다는 럭셔리카 마니아를 위한 차다. '상대적으로' 저렴한 값으로 콰트로포르테 포스를 뺨칠 수 있다는 점은 보너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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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환 산업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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