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톨이들의 사진작가 다이앤 아버스, 편견의 어둠을 밝힌 사진의 힘

  • 조성준
  • 입력 : 2018.07.19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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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예술가의 사회-3] 다이앤 아버스 (사진작가, 1923~1971)

◆ 저주받은 사람들

할리우드에는 '저주받은 영화'란 별명을 가진 작품이 제법 있다. 1932년 개봉한 '프릭스(Freaks)'는 이 우울한 족보의 시조 격인 영화다. '프릭스'를 본 사람들은 욕설을 퍼부으며 극장을 뛰쳐나왔다. 어떤 관객은 구토까지 했다. 천재 감독으로 불렸던 토드 브라우닝은 이 작품을 만든 후 영화계에서 매장당한다. 바다 건너 영국에서는 30년간 상영이 금지됐다. 제목처럼 이 작품에는 샴쌍둥이, 팔다리 없는 남자, 난쟁이, 소두증에 걸린 사람이 나온다. 특수 분장이 발달하지 않았던 시대라 배우 대부분은 실제 기형인이다.

1시간 조금 넘는 영화의 내용은 간단하다. 난쟁이 단장이 운영하는 서커스단에 장애인, 비장애인이 공존한다. 비장애인 클레오파트라, 헤라클레스 커플은 난쟁이 단장 한스를 독살해 그의 재산을 가로챌 음모를 꾸민다. 클레오파트라는 단장을 거짓으로 유혹해 결혼한다. 피로연에서 기형인들은 술잔을 들며 "클레오파트라를 우리의 일원으로 받아들이자"고 외친다. 그 말을 들은 클레오파트라는 "이 더럽고 불쾌한 병신들"이라며 술김에 속내를 드러낸다. 이후 비장애인 커플의 음모를 알게 된 기형인들은 단장을 지키기 위해 반격에 나서고 성공한다.

관객들이 분노했던 이유는 영화 내용보다 더 단순했다. 영화 속 클레오파트라처럼 관객들도 이 작품에 등장하는 배우들이 거북해 참지 못했다. 뒤틀린 신체를 마주한 것도 불쾌한데, 이들이 꿈틀거리며 당당하기까지 하니 공포를 느낀 것이다. 권선징악으로 끝난 이 영화는 응징자가 기형인이란 이유만으로 오랫동안 수난을 겪었다.

Russian midget friends in a living room on 100th Street, N.Y.C. 1963
▲ Russian midget friends in a living room on 100th Street, N.Y.C. 1963

◆이상한 것들의 마법사

'프릭스'는 1962년 베니스영화제에서 재상영되며 30년 만에 화려하게 부활했다. 그 시기 뉴욕에는 사진작가 다이앤 아버스가 이름을 알리고 있었다. 그는 거인, 난쟁이, 동성애자, 지적장애인, 다운증후군, 여장남자, 트랜스젠더, 외톨이 앞에서 셔터를 눌렀다. '프릭스' 속 배우들과 비슷한 사람들이었다. '오즈의 마법사(wizard of oz)'를 패러디한 '이상한 것들의 마법사(wizard of odds)'가 그의 별명이었다. 50년도 채 못 살고 세상을 떠난 다이앤은 생전 단 한 권의 사진집과 개인전도 없었다. 그럼에도 그의 사진은 많은 예술가에게 영감을 줬다. 고집 센 스탠리 큐브릭 감독도 영화 '샤이닝'에서 다이앤의 사진을 오마주했다. 소수자를 직시하도록 만드는 그의 사진은 예술을 넘어 사회적으로도 파장을 일으켰다.

뉴욕의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난 다이앤은 아버지 회사에서 일하던 앨런 아버스를 만나 열여덟 살에 결혼했다. 다이앤은 남편 앨런에게 사진 기술을 배웠고, 부부는 보그와 하퍼스바자 같은 세계적 패션 잡지사와 일하며 성공한다. 예민한 예술적 기질 때문인지 다이앤은 곧 상업 사진에 염증을 느낀다. 거기에서 불거진 의견 차이로 다이앤과 앨런은 찢어진다. 이후 다이앤은 스승 격인 사진작가 리제트 모델을 만난다. 주로 소외받는 사람들을 찍은 리제트의 경향을 다이앤도 이어 받는다. 1967년 미국 뉴욕근대미술관에서 열린 '뉴 다큐멘트'전에 동료 작가 작품과 함께 다이앤의 사진이 걸렸다. 평가는 갈렸다. 장애인, 떠돌이, 동성애자 사진들을 두고 "금기를 깬 예술가"라는 찬사와 동시에 "이 불쾌한 사진은 뭐지"란 비난이 쏟아졌다.

A Jewish giant at home with his parents in the Bronx, N.Y. 1970
▲ A Jewish giant at home with his parents in the Bronx, N.Y. 1970

◆"자, 어때. 이게 바로 나야."

다이앤은 자신의 피사체를 두고 이런 말을 남겼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일생을 통하여 외상의 경험에 대한 끊임없는 불안을 안고 살아간다. 그러나 기형인들은 외상과 함께 태어난다. 그들은 이미 삶의 시험을 통과한 사람들이다. 그들은 귀족이다." 소수자를 담은 사진들은 대개 그들에 대한 사회적 개입을 촉구할 목적으로 찍지만 다이앤의 사진엔 동정이 개입할 틈이 없다. 프레임 정중앙에 위치한 피사체는 당당히 렌즈를 바라본다. 다이앤은 환한 낮에도 플래시를 터뜨렸다. 기형인들의 신체는 더 도드라졌다. 이들을 응시하고 있자면 "자, 어때. 이게 바로 나야"라고 말을 걸어오는 듯하다. 사회에서는 소수자란 프레임에 갇혀 동정과 차별을 동시에 받던 이들이 다이앤의 사진에서만큼은 온전한 사람이다.

어둠 속에 가려져 있던 존재를 비춘 다이앤은 정작 자신의 어둠은 이기지 못했다. 깊은 우울의 늪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그는 1971년 48세에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사후 1972년 뉴욕에서 열린 회고전은 2개월 동안 20만명을 동원했다. 전 세계 순회전까지 합치면 700만명이 다이앤을 추모했다. 미국인 사진작가 중 최초로 비엔날레에 초대되기도 했다.

Mexican dwarf in his hotel room in N.Y.C. 1970
▲ Mexican dwarf in his hotel room in N.Y.C. 1970

◆여전히 질문을 던지는 사진들

기형인이 나온다는 이유로 저주받은 '프릭스'가 개봉한 지 한 세기 가까이 지났다. 소수자를 찍어 조롱을 받았던 다이앤이 세상을 떠난 지도 반세기가 지났다. 이제 '프릭스'는 컬트영화의 교과서가 됐고, 다이앤은 20세기를 대표하는 사진작가로 인정받는다. 이 변화만큼 사회가 기형과 장애, 소수자를 바라보는 태도도 진보했을까.

작년 한 사진으로 여론이 들끓었다. 장애인 부모들이 자식을 위한 특수학교 설립을 위해 무릎 꿇은 장면이었다. 그들 앞에는 '장애인 학교 결사 반대' 피켓을 든 또 다른 부모들이 단호한 표정으로 서 있었다. "장애인을 차별해야 한다"고 대놓고 말하는 사람은 없지만 여전히 장애인 학교는 대표적인 혐오시설이다. 약자들이 동정의 영역에서 벗어나 제대로 교육받고 일하고 싶다며 권리를 말하면 사회는 온갖 방법으로 찍어 누른다. 동성애자는 아직도 조롱받고, 공중파에서는 여전히 지적장애인의 어눌한 말투가 개그 코드로 소비된다.

2018년 3월 8일 뉴욕타임스에 '간과된 여성들(Overlooked)'이란 기사가 실렸다. 역사가 제대로 평가하지 못한 여성 15명의 뒤늦은 부고 기사다. 다이앤 아버스도 포함됐다. 뉴욕타임스는 그를 "사회의 주변부를 기록한 작가"라고 평가했다. 그때의 주변부 삶과 지금의 주변부 삶은 얼마나 다를까. 혹시 나도 그들을 '간과한' 사회의 동조자가 아닐까. 다이앤의 사진은 여전히 답하기 낯부끄러운 질문을 던진다.

[조성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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