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랑’ 김지운 감독은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걸까

  • 양유창
  • 입력 : 2018.07.28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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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네마앤-184] (이 글에는 약간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이쪽은 커피고 이쪽은 초코라떼입니다.”

지하철에서 처음 만난 임중경(강동원)과 이윤희(한효주)는 카페에서 대화하다가 주문한 음료를 가지러 간다. 이때 종업원이 저 대사를 한다. 한참 동안 생각했다. 도대체 초코라떼가 이 영화와 무슨 관계가 있을까. 대사가 많지 않은 이 영화에서 굳이 저 대사를 종업원이 한 걸 보니 이후에 초코라떼가 결정적인 장면에 등장하겠지? 하지만 아무것도 없었다. 초코라떼는 ‘인랑’에서 아무 역할도 하지 않았다.

‘인랑’을 본 관객 중 일부는 작년 ‘리얼’ 참사의 재판이라며 악평을 쏟아내고 있는데 기자가 보기에도 영화는 과연 그 심정을 이해할 만한 졸작에 가까웠다. 통일을 앞둔 2029년이라는 설정은 거창하지만 스토리는 용두사미고, 긴장감은 찾아보기 힘들고, 연기는 뻣뻣하기만 하다. 영화 내내 임중경(강동원)을 공격하는 한상우(김무열)는 동기가 불분명하고, 임중경과 이윤희의 관계는 모호하기 그지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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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인랑' / 사진제공=워너브라더스코리아

“특기대 내부에 실체를 알 수 없는 인랑이라는 조직이 있습니다.”

2시간 19분이라는 긴 러닝타임을 가진 영화는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뉘는데 분기점은 대략 1시간 가량 지난 시점이다. 공안부장 이기석(허준호)이 면도를 하다말고 멈추더니 인랑이라는 조직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전까지 반통일 테러단체 ‘SECT’와 경찰조직 특기대의 대결로 진행되던 영화는 이 시점부터 방향을 바꾼다. 특기대와 공안부가 대결하는 가운데 인랑에 대한 궁금증이 떠오르면서 SECT의 존재감이 사라지는 것이다.

초반 1시간이 다소 장황하고 엄숙하게 2029년의 미래사회를 소개하는 것이었다면 이후엔 누아르 분위기로 임중경-이윤희-한상우-장진태(정우성) 등 네 인물 간의 드라마가 중심이 된다. 누아르는 ‘달콤한 인생’ ‘밀정’ 등 김지운 감독이 잘 해온 장르이기 때문에 비교적 익숙한 김지운식 영상 화법을 볼 수 있다.

그러나 익숙하다는 것이 문제를 덮지는 못한다. 초반 1시간 동안 전개해놓은 설정들이 계속해서 발목을 잡는다. 애니메이션 캐릭터처럼 표정을 감춘 인물들은 관객의 감정이입을 쉽게 허락하지 않고, 네 인물 간의 드라마는 통일한국을 앞둔 시점이라는 배경과 유기적으로 섞이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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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인랑' / 사진제공=워너브라더스코리아

“내가 부당한 지시를 했나? 몇 번을 생각해 봤어. 하지만 아니었어.”

후반부로 갈수록 영화는 작정하고 익숙한 길을 간다. 클라이맥스에서 장진태와 임중경이 나누는 대사를 들으면서 귀를 의심했다. 어디서 많이 들어본 대사고 또 어디서 많이 본 설정인데 가만히 생각해 보니 감독의 전작 ‘달콤한 인생’이었다. “나에게 왜 그랬어요?” “넌 내게 모욕감을 줬어”로 유명한 그 설정을 빼닮았다. 한 여자 때문에 지금까지 쌓아온 커리어가 흔들리고 그 때문에 오랫동안 좋은 관계를 유지해온 보스와 대결하는 설정은 거의 똑같다.

총제작비 230억원이 투입된 ‘인랑’은 올해 여름 대작으로 기대를 모았으나 지난 25일 동시 개봉한 ‘미션 임파서블: 폴아웃’에게 밀려 흥행에서 고전하고 있다. 대규모 제작비는 대부분 광화문과 지하수로 등 거대한 세트를 짓는데 사용됐고 또 철갑 수트 등을 만드는데 쓰였다. 그만큼 비주얼은 훌륭하다. 특히 이모개 감독의 촬영과 이성환 감독의 조명은 아주 빼어나서 명암대비가 선명한 화면에 감탄사를 연발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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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인랑' / 사진제공=워너브라더스코리아

문제는 스토리에 있다. ‘인랑’을 보고 나면 감독이 도대체 무슨 말을 하고 싶었던 건지 알 수 없다. 남북통일 시대를 배경으로 하면서도 이에 대한 시선은 전무하다. 이윤희에 대한 임중경의 태도가 시종일관 모호하기 때문에 두 사람의 관계가 감정으로 받아들여지지 않고 겉돈다. 또 빨간망토 동화를 삽입해 중요한 모티프로 쓰면서 소녀를 이렇게 만든 책임은 누구에게 있느냐고 묻고 있는데 그 질문이 빨간망토 소녀(신은수)의 언니인 이윤희 캐릭터와 잘 연결되지 않아 공허하게 느껴진다.

‘인랑’이 마지막 장면에서 던지는 질문 중 하나는 ‘대의를 위해 작은 희생을 용납할 수 있는가’이다. ‘정의란 무엇인가’를 이야기할 때 단골로 나오는 질문이지만 ‘인랑’은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을 사랑과 정의의 경계에서 모호하게 처리하고 있다. 알 수 없는 감정에 의해 이끌린 한 여자에 대한 사랑이 더 중요하다는 것인데 여기에 어떤 철학이나 사유가 있는지 모르겠다.

반면 똑같은 질문을 모티프로 한 ‘미션 임파서블: 폴아웃’은 그 대답을 보다 명쾌하게 소화한다. 에단(톰 크루즈)은 시종일관 한 사람의 목숨이 수백만 목숨만큼 소중하다는 것을 말이 아닌 행동으로 보여주는데 영화는 그의 가치관이 CIA와 IMF라는 조직을 어떻게 변화시키는지까지 보여준다. 단지 제작비의 규모를 넘어 ‘인랑’이 스토리 측면에서도 ‘미션 임파서블’에 완패하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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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인랑' / 사진제공=워너브라더스코리아

영화 '인랑'은 동명의 일본 애니메이션을 실사화한 외양을 하고 있지만 그 속은 감독 자신의 영화 ‘달콤한 인생’을 자기복제한 느낌이다. 수트를 입은 조폭 대신 철갑을 두른 인랑으로 설정만 바뀌었을 뿐이다. 하지만 관객은 ‘달콤한 인생’의 SF 버전을 보기 위해 극장을 찾은 것이 아닐 것이다. 김지운 감독이 처음 도전한 SF라는 수식어가 붙었기 때문에 더 새로운 무언가를 발견하기 위해 극장을 찾았을 것이다. 하지만 남은 것은 의도를 알 수 없는 공허한 ‘초코라떼’ 뿐이었다.

양유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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