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필 첫 외국인상임지휘자 마시모 자네티 "단원들 무표정에 깜짝 놀랐죠"

  • 김연주
  • 입력 : 2018.09.08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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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yperactive Studio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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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스테이지-96] 한 기자가 "워낙 성격이 좋아 보이시는데…"로 질문을 시작하자 "오! 내가 성격이 좋은 걸 어떻게 알 수 있냐"고 짓궂게 되물어온다. "딱 봐도 알 수 있다"는 기자의 대답에 자네티는 물론 앉아있던 이들 모두가 웃음을 터뜨렸다. 그 말대로 그는 한눈에 봐도 아주 '나이스'한 사람이었다.

마시모 자네티는 늘 유쾌했다. 경기필하모닉 오케스트라와 막 첫 번째 리허설을 마치고 온 그는 연신 미소를 잃지 않았고, 십여 명의 취재진과 눈을 하나하나 마주치며 질문에 대답을 해 나갔다. 정하나 경기필 악장 역시 "긍정적인 에너지를 오케스트라에 불어넣어 주고 있다"고 평했다.

세계적인 마에스트로 마시모 자네티가 9월부터 2년간 경기필하모닉오케스트라 상임지휘자를 맡는다. 취임연주회를 시작으로 연중 약 10여 차례 경기필을 지휘할 예정이다. 마시모 자네티는 오페라 지휘로 명성이 높다. 그는 드라스덴 슈타츠카팔레, 베를린 슈타츠카팔레, 베를린 슈타츠오퍼, 드레스덴 젬퍼오퍼 등 세계 최정상 악단들과 수많은 오페라를 올려왔다. 그런 만큼 풍부한 감정표현과 섬세한 스토리텔링이 특기다.

1997년 창단해 올해로 21년을 맞은 경기필은 최근 놀라운 약진을 보여주었다. 제5대 상임지휘자 성시연 단장 부임 시절 활발한 연주로 이름을 각인시켰고 이어 리카르도 무티, 야프 판즈베던, 핀카스 주커만 등 세계적인 지휘자들의 객원지휘를 통해 세계 음악계에 존재감을 알리고 있다. 그리고 오는 9월 취임하는 첫 외국인 상임지휘자인 마시모 자네티는 경기필을 또 어떻게 성장시킬지에 이목이 쏠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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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필과의 첫 리허설은 어땠나?

▶방금 3시 10분까지 리허설을 하고 곧바로 왔다. (인터뷰는 4시였다.) 3월에 야프 판즈베던(현 뉴욕필 지휘자)과의 공연을 관람한 적이 있다. 그때도 잘한다고 생각했지만, 경험해보니 기대했던 것보다 훨씬 잘한다.

-어떤 점이 인상적이었는가?

▶경기필은 창단 21년이 된 굉장히 젊은 악단이고 너무 젊은 음악가들이 주를 이루는데, 테크닉이 정말 대단하다. 이번에 9월 취임 공연에서 연주할 '로미오와 줄리엣' 중 '티볼트의 죽음' 부분을 방금 연습하고 왔다. 굉장히 빠르고 어려운 곡인데 굉장한 테크닉으로 해내더라. 너무 놀랐다. 그리고 무엇보다 반응이 빠르다. 내가 '벨벳 같은 사운드를 내달라'고 말하자 곧바로 그 소리를 들려주더라. 그래서 내가 '너무 고맙다'고 연주자들에게 인사하고 왔다. 또 연습이 끝나고 악장은 "우리는 새로운 걸 알고 싶다. 새롭게 연주하는 방법을 배우고 싶고 도전하고 싶다"고 말해왔다. 우리가 함께 같은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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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유수의 오케스트라를 연주했는데, 한국 오케스트라만의 독특한 점은 없던가?

▶정말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있다. 내가 오케스트라 앞에 도착한 첫날 그들과 대화하려고 입을 뗐는데 너무 놀라고 말았다. 그들의 얼굴에 아무런 감정도, 어떤 표정도 없는 거다. 순간 '내가 잘하고 있는 건가? 아니면 내가 뭘 잘못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다음 날 나는 정중하게 수석들에게 커피를 한잔 하자고 했다. 그리고 그냥 내게 무슨 문제가 있는지 허심탄회하게 말해달라 부탁했다. 그러자 수석들이 "이게 우리 문화다. 우리는 늘 이래 왔다. 지휘자에게 말을 해본 적이 없다"고 설명을 해주더라. 정재훈 경기도문화의전당 사장도 "마에스트로 무티도 똑같은 일을 겪었다"고 말해다. 물론 나는 한국의 문화를 존중한다. 하지만 나는 피드백이 필요하다. 그래서 단원들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무엇이 편한지, 제안하고 싶은 아이디어가 있는지"를 말해 달라고. 나에게 음악은 '공유하는 것'이다. 나는 타인을 짓누르는 음악은 알지 못한다. 그리고 나는 벌써 많은 성과를 거뒀다. 오늘 리허설에는 다섯 단원이 나에게 웃어주었다. 이제 시작이다.

-실제로 정하나 경기필 악장은 당신은 비권위적이고 굉장히 긍정적인 에너지를 악단에 불어넣어주고 있다고 평했다. 당신의 지휘철학은?

▶정말 어려운 질문이다. 말하자면 전혀 모르는 새로운 사람과 친구가 되기 위한 방법과 비슷하다. 눈앞에 있는 사람이 어떤 사람이냐에 따라 다양한 방식으로 접근해야 하는 것과 똑같다. 하나의 방식만을 고집한다면 물론 효과가 있을 때도 있지만 많은 경우 실패하고 만다. 나는 주마다 월마다 나를 바꾼다. 그리고 내 앞의 오케스트라에 나를 적응시킨다. 나는 지휘자는 마치 훌륭한 '심리학자'와 같다고 생각한다. 내 앞에 있는 오케스트라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어떤 존재인지를 아주 면밀히 이해해야만 한다. 그리고 늘 신중해야 하며 인내심을 가져야 한다. 무엇보다 나는 소통하고 이해하는 데 중점을 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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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경기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상임지휘자가 되기로 결심하게 된 계기가 궁금하다.

▶일단 나는 정재훈 경기도문화의전당 사장에게 공을 돌리고 싶다. 정재훈 사장이 없었다면 경기필이 짧은 시간에 이런 도약을 이뤄낼 수 없을 것 같다. 너무나 슬픈 점은 그가 경기도문화의전당을 떠난다는 것이다. 그에게 감사의 뜻을 담아 이번 취임 연주회를 정 사장에게 헌정하고 싶다. 정 사장은 경기필 앞에 마에스트로 무티를 데려왔다. 나는 리카르도 무티와 함께 일해 봤기 때문에 그를 잘 안다. 그가 경기필의 능력과 잠재력을 인정하지 않았더라면 결코 두 번 오지 않았을 것이다. 그가 두번 왔다는 건 이 악단과 함께했을 때 행복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가 처음 오게 한 건 정재훈 사장의 용기다. 리카르토 무티는 하루에도 수십 번의 지휘 요청을 받고 또 그걸 거절한다. 정재훈 사장은 용기를 내 그에게 요청했고 성공했다.

6일 취임연주회를 기자들 앞에서 설명하고 있는 지휘자 마시모 자네티.
▲ 6일 취임연주회를 기자들 앞에서 설명하고 있는 지휘자 마시모 자네티.

-경기필과 하이든과 모차르트 등 고전 레퍼토리 발굴에 힘쓰겠다고 말한 바 있다. 이번 취임 연주회에서는 모차르트의 오페라 곡들과 더불어 프로코피예프의 '로미오와 줄리엣'을 선보이는데 선곡 이유는?

▶나는 관객들에게 드라마틱한 대비를 주고 싶었다. 빛과 어둠의 대조를 보여주고 싶었다. 모차르트 교향곡 35번 하프너는 굉장히 밝은 곡이다. 어떤 느낌이냐면 맑은 날 눈이 부실 정도로 들이치는 햇살 같은 교향곡이다. 이 곡은 우리의 첫 시작을 여는 곡으로 아주 적합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어지는 '로미오와 줄리엣'은 모두가 알다시피 두 가문의 전쟁을 다룬 곡이다. 삶에는 행복과 불행이 함께 있다. 콘서트에서도 그런 스토리를 만들어 들려주고 싶었다.

취임연주회는 9월 8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9월 11일 경기도문화의전당 대극장에서 진행된다. 모차르트 교향곡 '하프너', 프로코피예프 모음곡 '로미오와 줄리엣'의 작품을 연주한다. 모차르트의 교향곡을 공연 처음에 서곡처럼 연주하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김연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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