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한 고창배로 빚은 소주 '배 아락'

  • 취화선
  • 입력 : 2018.09.10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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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로 빚은 소주 ‘배 아락’. 패키지 디자인이 젊고 감각적이다. /사진=홈페이지 캡처
▲ 배로 빚은 소주 ‘배 아락’. 패키지 디자인이 젊고 감각적이다. /사진=홈페이지 캡처
[술이 술술 인생이 술술-75] 배로 빚은 소주는 무슨 맛일까. 증류식 소주는 쌀로, 위스키는 보리 등 각종 곡류로, 보드카 역시 감자·옥수수 등으로 만든다. 그런데 배로 만든 소주는 본 적이 없었다.

나는 배상면주가에서 운영하는 술집 '느린마을'에 자주 간다. 술을 사서 집에서 먹어도 되고, 술집에서 마셔도 된다. 진열된 술을 구경하다가 '아락'이라는 증류주 시리즈를 발견했다.

거기에는 배, 복분자, 오디, 고구마 아락이 있었다. 담금주가 아니었다. 배와 복분자, 오디, 고구마로 빚은 소주라니. 그 맛이 너무 궁금했다. 나는 배 아락부터 집어 들었다. 그냥 배도 아니고 저 유명한 고창배로 빚은 술이다.

패키지는 아주 감각적이다. 투명한 병에 흰색 라벨을 붙이고 원재료를 그려 넣었다. 단정한 모양의 한글로 '아락'이라고 새겨 넣었다. 젊은 층에게 충분히 어필할 수 있을 듯했다.

투명한 잔에 술을 따랐다. 달콤하고 끈적한 냄새가 났다. 잔을 슬쩍 기울여 보았다. 술잔 벽을 타고 술이 천천히 흘러내렸다. 점도가 높아 보였다.

조심스럽게 한 모금, 배 아락을 마셨다. 달달한 배의 풍미가 느껴졌다. 상당히 달았다. 혀에서는 달았고, 목젖에서는 뜨거웠다. 목 넘김은 부드러웠다.

술을 삼키자 뜨거운 기운이 입안에 퍼졌다. 콧구멍으로 술의 화기(火氣)가 새어 나왔다. 아 이 술은 알코올 도수 40도짜리 독주다. 숙성을 거친 증류주가 아니었으므로, 맛과 향이 직선적이었다.

진한 향에 뜨거움까지 더해져 조금 부담스러운 감이 있었다. 물에 희석해 마시면 어떨까. 먼저 술과 물을 1대1 비율로 희석했다. 도수가 낮아져 먹기에 편안했다. 그리고 썩 괜찮은 맛이 났다.

향은 당연히 스트레이트에서보다 한결 순하다. 그런데 술의 맛과 향은 오히려 진해졌다. 알코올의 기운이 약해져 배 아락의 독특한 향이 두드러지는 것 같았다.

개인적으로는 물에 섞은 것이 스트레이트보다 나았다. 워낙 배 아락의 풍미가 강렬해 술과 물의 1대2 비율도 나쁘지 않다. 독주라는 부담 없이 술맛만 즐길 수 있다.

하이볼을 만들어 먹어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이볼 잔에 얼음을 채우고 술과 탄산수의 1대4 비율로 하이볼을 만들었다. 톡톡 터지는 탄산 알갱이 사이로 달큰한 배향이 올라왔다.

병 뒤에 성분표를 살펴봤다. 배 증류 원액 88%에 설탕과 물을 더했다. 증류 과정에서 넣은 것이 아니라 병입 시 넣은 것으로 보였다. 나는 그 단맛이 배에서 난 것이라고 생각했다. 조금 배신감이 들었다.

업계 관계자는 "한국인들이 유독 부드러운 단맛이 나는 술을 선호한다고 한다. 아마 굳이 설탕을 넣은 것도 그래서일 것"이라고 설명했다.

375㎖ 한 병에 2만5000원이다. 배 아락을 다시 사서 먹을 의사는 없다. 복분자, 오디, 고구마 아락도 차차 사서 마시고 글을 쓸 생각이다.

[취화선/drunkenhwaseon@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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