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 성묘와 분묘기지권

  • 마석우
  • 입력 : 2018.09.27 1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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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게티이미지뱅크
▲ 사진=게티이미지뱅크
[마석우 변호사의 법률 이야기-77] 추석 연휴 기간 중이다. 고향에 내려가 오랜만에 친척들과 만나 추석 차례를 지내고 귀경길에 올랐다. 차례와 함께 추석에 꼭 해야 할 일이 성묘다. 성묘의 의미를 새삼스레 찾아보니 사전에서는 조상의 묘소에 가서 절하고 묘를 살펴보는 예(禮)라고 풀이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옛날부터 묘소에 조상의 몸과 혼이 있다고 보아 묘소를 중시했고 명절에 성묘하는 풍속이 있었다고 한다. 고려 때부터 일이라고 한다.

A씨는 이번 추석에 고향에 내려갔다가 착찹한 일을 겪었다. 직장 일에 바빠 추석 전에 성묘를 못했던 A씨는 차례를 지내고 귀경길에 성묘를 하게 됐다. 고향 인근에 선산이 있기에 어린 시절 옛 추억을 떠올리며 즐거운 기분으로 산 중턱까지 올랐던 A씨. 이게 웬일일까? 조상님들 묘소의 봉분은 단정히 정리되어 있는데, 봉분을 둘러싼 땅의 경계를 누군가가 파헤친 흔적이 역력하다. 경계 표시로 심어 둔 묘목도 누군가가 고의적으로 훼손한 듯 싶다. 몇 년 전에 새로 임야를 매수했다는 사람이 몇 번이나 부친을 찾아와 분묘를 이장해 달라고 졸랐다고 하는데, 그 사람 소행이 아닐까 싶지만 증거가 없으니 따질 수도 없다. 어떻게 해야만 하는 걸까?

B씨 역시 이번 추석이 달갑지가 않다. 몇 해 전에 큰마음 먹고 경매로 산 임야에 묘소가 그렇게나 많이, 그것도 임야 중심부에 있을 줄 알았으랴? 현지 조사를 해야 한다는 사람 말을 듣지 않았던 게 후회 막급할 따름이다. 요소 요소마다 분묘가 있는 바람에 임야 활용에 제약이 따르는 건 말할 것도 없고 인근 땅들이 개발 소식에 들썩이는데 유독 자기 땅만 제자리인 게 영 마뜩지 않다. 추석 지나고 나서는 피해가 더 커지고는 한다. 성묘길에 오르는 사람들이 길을 내며 심어 놓은 유실수에 손을 대기도 하고 그나마 수확이 쏠쏠한 밤나무의 밤을 가져가버리는 탓이다. 한두 송이에서 재미로 가져갈 수도 있겠지만 아예 비닐 봉지 한 가득 밤을 담아가는 모습을 보게 될 때면 아무리 성묘길에 오르는 사람들이라고 하지만 야속하기만 하다.

A씨와 B씨에게 문제 되는 게 바로 '분묘기지권'이라는 권리다. A씨가 뭔가 침해되었다고 생각하는 게 바로 분묘기지권이라는 권리이고 B씨의 임야에 대한 소유권을 제약하고 있는 게 바로 분묘기지권이라는 권리다. 분묘기지권이란 글자 그대로 다른 사람 토지에 분묘(묘)를 설치하여 관리하고 있는 사람이 그 분묘와 함께 그 분묘 주변의 일정 토지(基地)까지 사용할 수 있다는 권리다. 중요한 것이 이 분묘기지권이 물권이라는 점이다. 소유권과 동등한 위치의 물권이기 때문에 임야 소유자가 아무리 바뀌더라도 그 누구에게든 이 권리를 주장할 수 있고 묘소가 봉분 모양을 유지한 채 성묘와 제사의 대상이 되는 한 계속해서 그 권리를 주장할 수 있게 된다. 봉분에만 인정되는 게 아니라 주변의 기지에까지 미치는 것이기에 분묘기지권이다. 본래 물권은 민법에 미리 정해져 있어야만 인정되어야 하고 부동산등기부에 그 권리자와 권리의 범위가 공시되어야만 한다. 그러나 분묘기지권만큼은 민법이 아니라 관습법에 따른 지상권과 유사한 물권으로 인정되었고 비록 부동산등기부에 등재되어 있지 않다 하더라도 현장에 봉분 형태로 유지·관리되어 있는 그 자체로 권리의 존재가 승인되어 왔다.

그럼 어떤 경우에 이런 권리가 인정될까? 통상적으로 3가지 경우가 있는데, 토지 소유자가 분묘 설치를 승낙한 경우나 분묘 설치에 대한 계약이 있는 경우야 크게 문제 될 게 없다. 고약한 것이 분묘를 설치한 지 20년이 경과될 때까지 소유자가 분묘 철거를 요구하지 않은 경우에도 분묘기지권이 인정된다는 점이다. 분묘를 모시는 사람들이 관습법상 분묘기지권을 취득하게 되고 반면에 임야 매수인들은 소유권 행사에 제한을 받게 된다. A씨와 그 부모는 묘지와 그 분묘의 수호 및 제사에 필요한 범위 내에서 묘지 주변의 땅에 소위 분묘기지권을 주장할 수 있다는 말이고 B씨는 이를 수긍해야 한다는 말이다.

자, 그렇다면 A씨 입장에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분묘기지권이 미치는 범위, 다시 말해 권리가 미치는 분묘의 기지를 명확히 표시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경계 부분에 수목이나 경계석을 세우고 사진을 촬영하는 조치를 하고 만일 그것이 최근에 훼손된 흔적이 있다면 손괴죄로 고소를 해야 할까? 현실적인 조치인지는 모르겠으나 자신의 권리를 단호히 행사할 준비는 하고 있어야 하겠다.

거꾸로 B씨 입장에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내 토지에 허락 없이 분묘를 설치했다면 이를 계속 묵인해야 하는 걸까? 내 허락 없이 분묘가 설치되어 있고 아직 20년이 지나지 않았다면 방법이 없지 않다. '장사 등에 관한 법률'에서는 토지 소유자의 승낙 없이 설치한 분묘는 토지 소유자가 관할 자치단체장의 허가를 받아 분묘에 매장된 시체 또는 유골을 개장할 수 있다는 규정을 두고 있다. 허가를 받아 분묘를 다른 곳으로 이전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20년이 경과한 경우에는? 이런 경우 아직 대법원은 A씨 손을 들어주는 듯하다. 2017년 3월에 선고한 판결에서 분묘기지권의 시효 취득을 인정하면서 장사 등에 관한 법률이 분묘기지권의 상실사유가 되지 않는다는 입장을 유지했다(대법원 2017. 3. 30., 선고, 2016다231358, 판결). 이 판결에서 대법원은 타인 소유의 토지에 소유자의 승낙 없이 분묘를 설치하여 20년간 평온·공연하게 분묘의 기지를 점유한 경우 분묘기지권을 시효로 취득하고 이를 등기하지 않고도 제3자에게 대항할 수 있다는 기존 입장을 고수했다.

어쨌든 A씨와 B씨에게 추석 보름달의 넉넉함이 함께 비치기를 바란다.

[마석우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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