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다가 울리고, 울다 웃게 만드는 신들린 연극 '조씨고아'

  • 김연주
  • 입력 : 2018.09.29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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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스테이지-99] 신들린 연극이다. 웃기는 게 울리는 것보다 어렵다고들 한다. 더 어려운 건 웃다가 울리고, 울다 웃게 만드는 것. 이 연극이 그렇다. 애끊는 고통을 배우들이 희극적인 몸짓으로 토해 내니 경쾌한 서사가 인간에 대한 진중한 탐구를 품었다. 무게감 있는 비극이 날렵하기까지 하다.

국립극단 레퍼토리 연극 '조씨고아, 복수의 씨앗'(연출 고선웅)은 원나라 때 희곡 작가 기군상의 '조씨고아'를 원작으로 한다. 권력에 눈이 먼 장군 도안고가 문신 조순을 모함해 그의 구족(九族)을 멸하면서 복수의 씨앗이 뿌려진다. 조씨 집안의 문객 정영(하성광)은 마흔다섯에 얻은 늦둥이를 대신 내주고 조씨 가문의 마지막 아이를 구해 내기로 한다. 이 아이를 살리기 위해 수많은 사람들이 죽고 또 죽는다. 단도로, 머리끈으로, 스스로 머리를 긋고 돌바닥에 찧으면서. 이 모든 죽음의 이유는 단 하나, 도안고에게 복수하기 위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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끊임없이 세상은 주인공에게 '복수'하라고 추동하면서 동시에 '복수'하지 말라 제동을 건다. 모두가 복수를 위해 조씨고아를 살리라고 말할 때 정영의 아내가 묻는다. "그깟 약속이 뭐라고! 그깟 의리가 뭐라고! 남의 자식 때문에 제 애를 죽여요?" 정영은 답하지 못한다. 복수가 끝나고 복수의 대상이었던 도안고가 던지는 질문이 더욱 압권이다. "미련해. 한없이 미련해…. 뭐하러 그랬어? 다 늙어버렸잖아? 네 인생은 도대체 뭐였어? 왜 씁쓸해?" 이 질문에 복수만을 위해 20년을 견뎌온 정영은 답하지 못한다. 복수를 부탁하며 죽어간 영혼들도 복수를 완수한 정영에게 끝내 웃어주지 않는다. 죽은 자들에게 복수가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죽은 아내와 아들은 되살아오지 못한다.

덧없고 덧없다. 누가 모르나. 알지만 그것밖에 선택지가 없다. 그래서 복수는 더욱 덧없다. "우환을 만들지도, 당하지도 마시고 부디 평화롭기만을. 금방이구나 인생은. 그저 좋게만 사시다 가시기를." 묵자(Blind woman)의 잠언으로 극은 끝맺는다. 하지만 그렇게 살 수 없는 게 인생. 망설여지지만 결국 해버리고, 울고 싶지만 결국 웃어야 하는 정영은 인간이란 존재의 거울이다. 묵직한 진리 앞에 선 인간의 가련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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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대는 별다른 소품 없이 깔끔하다. 오롯이 배우의 연기로만 채웠다. 주인공 장영 역으로 무대에 서는 하성광의 연기는 실로 작두 타는 무당이다. 관객들을 쥐락펴락하는데 "쥐면 펴야 하고 이화(異化)가 있어야 동화(同化)도 있다"는 고선웅 연출의 지론을 체화한 듯하다. 이외에도 장두이, 이영석, 유순웅, 이지현 등 초연부터 함께해온 배우들의 관록의 연기는 오로지 연극무대만이 줄 수 있는 감동을 선사한다. 짧은 대사 하나 움직임 하나 허튼 게 없다. 감동을 말로 다 표현하기 어렵다. 정신이 아닌 육체로 느끼는 감동이랄까. 배우와 함께 세 시간 동안 호흡을 함께한 뒤 마지막으로 탁 내려놓는 마지막 숨. 그건 한번밖에 살 수 없는 삶을 미리 한번 살아보는 느낌이다. 놓쳐서는 안될 귀한 경험이다. 10월 1일까지, 명동예술극장.

[김연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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