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시 나도 진상골퍼?

  • 정현권
  • 입력 : 2018.10.27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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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게티이미지뱅크
▲ 사진=게티이미지뱅크
[골프 오딧세이-7] #1. 새벽 4시. 알람이 울린다. 일기예보에 오늘은 날도 좋아 한 라운드만 뛰고 오후에 모처럼 친구 만날 생각에 맘이 설렌다. 초스피드로 화장 후 옷을 입고 골프장으로 향한다. 팀을 배정받고 카트에 클럽을 옮겨 싣는다. 오늘은 어떤 손님을 만날까. 매너까지는 바라지 않는다. 제발 거북이(진행이 느린 골퍼)만 피하게 해주소서.(캐디)

#2. 얼마만인가. 친한 고교 동창 4명이 라운드한 게. 잠도 좀 설쳤다. 라커룸에서 환복하고 선크림을 바른 후 식당으로 향한다. 녀석들이 먼저 와서 기다리고 있다. 늦지는 않았다. 간단하게 식사 후 스타트 장소로 향한다. 클럽을 정리하는 캐디가 멀리서 보인다. 오늘은 센스 있는 캐디를 만나 실력도 발휘하고 즐겁게 라운드했으면 좋겠다.(골퍼)

골퍼와 캐디의 동상이몽이다. 골퍼와 캐디는 라운드 4~5시간 동안 ‘필드의 동반자'다. 물리적·정신적으로 이 시간 동안 서로 의지하고 도우면서 함께한다. 당연히 좋은 손님, 좋은 캐디를 새벽부터 맘속으로 기대한다. 소위 진상골퍼, 진상캐디를 만나면 하루가 피곤할 뿐이다.

흔히 캐디들이 꼽는 3대 진상골퍼가 있다. 바로 거북이맨, 섰다맨, 피아노맨이다.

‘거북이맨'은 캐디뿐만 아니라 주말골퍼들에게도 단연 기피 대상 1호다. 골프에 입문할 때 어떻게 습관을 들였는지 모든 게 늦다.

골프는 일단 여유롭게 임해야 한다. 특별한 일이 없는 한 티샷하기 1시간 전이나 늦어도 40분 전에 클럽하우스에 도착해 준비하면 된다.

동반자들이 모두 스타트 장소나 티잉그라운드에서 기다리고 있는데 뒤늦게 헐레벌떡 와서 부산을 떨면 매너가 아니다.

자기 티샷 차례가 왔는데도 그제서야 가방에서 공을 꺼내는가 하면 호주머니를 뒤져가며 티를 찾다가 캐디나 동반자들에게 빌려 달라고 한다. 장갑하고 모자 빼고는 아무것도 준비된 게 없다. 동반자들도 맘속으로 ‘웬 시추에이션?'이다.

티잉그라운드에서 매너가 특히 중요하다. 연습 스윙이 길고 여러 번 계속될 때가 주위에서 가장 힘든 순간이다. ‘이제 치겠지' 생각했는데 다시 스탠스를 풀면 집중하던 동반자들 맥이 풀려버린다.

겨우 티샷을 하고 페어웨이를 거쳐 그린에 올라가면 시간 지체가 심해지는 경우도 흔하다. 핀에서 먼 순서로 퍼팅하는 게 순서다. 미리 그린을 살피고 라이를 봐놓았다가 자기 차례가 돌아오면 바로 스탠스를 취해야 한다.

그런데 멀리서 다른 사람 퍼팅을 넋을 놓고 구경하다가 그제서야 자기 공쪽으로 왔다가 경사를 살핀다고 다시 건너편으로 갔다가 그린을 빙빙 돌면 인내도 한계에 달한다. 경기 지체는 물론이고 동반자들 리듬이 확 깨져버린다.

"사람마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경기 진행의 큰 흐름과 동반자들의 리듬을 깨면 곤란하다고 봐요. 앞팀은 보이지 않고 뒤팀은 뒤에서 바짝 기다리고 있는데 본인이 알아서 멀리건을 부른다든지 그린에서 시간을 너무 지체하면 정말이지 속이 타들어갑니다."

레이크사이드에서 일하는 캐디 김 모씨(25)의 하소연이다.

‘섰다맨'의 유형은 일단 페어웨이에서나 그린에서 움직이지 않는 게 특징이다. 모든 게 손가락과 입으로 통한다. 캐디가 클럽을 가져오면 맞지 않는다며 가서 다시 가져오라고 지시한다. 본인은 꼼짝하지 않는다. 보통 페어웨이에서 클럽 번호를 불러주면 캐디는 가져오고 골퍼도 약간 마중을 나가면서 어느 지점에서 만나 클럽을 인수인계한다. 이래야 진행 시간을 줄이면서 동반자들에게도 캐디의 활용 시간을 배려하게 된다. 나만의 캐디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린에서도 본인이 라이를 보거나 경사를 살펴야 하는데도 불구하고 오로지 서 있을 뿐이다. 모든 것을 캐디에게 의존한다. 외국에서는 대부분 본인이 마크를 하고 라이를 살피고 퍼팅을 한다.

‘니탓맨'은 모든 것을 캐디 탓으로 돌려 분위기를 험악하게 만든다. 한마디로 비유하면 ‘버디는 내 실력, 오비는 캐디 탓' 유형이다.

방향을 잘못 가르쳐줬다든지, 거리를 잘못 불러줬다든지, 클럽을 잘못 골라줬다든지, 라이를 잘못 봤다든지 이들에게는 핑계가 무궁무진하다.

언젠가 렉스필드에서 직장상사와 라운드한 적이 있었다. 그 상사가 그린에서 캐디에게 라이를 부탁하고 퍼팅했는데 홀을 3m나 지나쳤다. 큰소리로 캐디를 나무라자 캐디 말이 명언이었다.

"홀을 3m나 지나쳤는데 라이는 무슨 라이예요!"

우린 순간 긴장했다. 하지만 노련한 캐디였다. ‘그래도 스윙과 패션은 고객님이 가장 멋지다'며 아양을 떨면서 겨우 분위기를 살려 위기를 모면했다.

캐디를 괴롭히면 동반자들도 감정이 이입돼 불편하다. 불편한 감정은 전염성이 강하다. 이래서 내기가 세게 붙었을 경우 일부러 캐디를 괴롭혀 동반자들을 무너뜨리는 심술궂은 사람도 간혹 있다고 캐디들은 전한다. 동반자들이 섣불리 개입하지 않으려는 심리를 역이용하는 케이스다.

‘피아노맨'은 수시로 캐디를 터치하거나 음담패설을 하는 유형이다.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다가 틈만 나면 캐디와 터치를 시도한다. 주위의 제지를 받지 않아 습관으로 굳어진 경우가 많다. 보통 카트 앞자리에 앉아 밀착을 한다. 몇 년 전 고위 공직자 출신이 이런 일로 소송까지 걸려 서울에서 원주로 재판을 받으러 오가는 수치를 당하기도 했다.

골프가 잘 풀리지 않으면 욕을 입에 달고 다니는 사람도 대책이 없다. 오비가 났거나 뒤땅을 하면 그냥 욕이 줄줄 새어 나온다. 보통 ‘어~' ‘하~참' ‘왜 이러지' 등은 양반이다. ‘죽겠네' ‘병○' '돌겠네'라며 자신을 쥐어뜯다가 급기야 쌍욕을 뱉으면서 아름다운 페어웨이와 그린을 공포로 몰고 간다.

'룰무시형'도 눈꼴 사납다. 알아서 멀리건을 2~3개씩 챙기고 해저드에 빠지면 페어웨이로 공을 던져 놓고 친다. 해저드 티가 없으면 해당 지점 두 클럽 이내, 인공장애물 앞에서는 그린에서 가깝지 않은 방향으로 한 클럽 이내에서 공을 드롭해서 쳐야 한다. 벙커에서도 클럽을 모래에 대기 일쑤다. 벙커샷을 하고 나서도 반드시 고무래로 벙커를 정리해야 한다.

"허물없는 사람들끼리 골프를 하면 이런 습관을 가진 동반자에게는 분위기를 봐가며 조용히 충고를 해주는 게 좋습니다. 그래야 다른 데 가서도 실수를 하지 않겠지요. 혹여나 마음 상할까봐 잘 이야기해주지 않는데 그렇게 되면 본인이 실수라는 걸 알지도 못하고 상습적으로 됩니다."

뉴코리아CC 15년째 회원으로 싱글 핸디캐퍼인 조용국 씨(57)의 말이다. 그에 따르면 초보라도 매너가 좋으면 얼마든지 고수들과 어울릴 수 있고 싱글골퍼라도 매너가 없으면 동반자를 찾기 힘들다고 한다.

◇진상캐디도 곤란해요

캐디의 경우 대부분 교육을 잘 받아 상식적이고 문제가 별로 없다. 그리고 골퍼들도 캐디 의존도를 낮추는 습관을 길들이는 게 좋다. 거리도 표지목으로 잘 계산하고 그린에서 자기가 마크하고 라인도 혼자서 읽을 줄 알아야 한다.

하지만 ‘그림자 캐디'라는 말이 있듯이 불편한 캐디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얼굴에 표정이 없고 석상처럼 굳어 있는 경우다. 그래도 하루 5시간가량을 함께 보내는데 먼저 말을 걸어도 모든 게 단문이다. 어떤 경우는 '예' '아니오' 두 마디밖에 없다. 무서워서 말을 못 건넨다.

공이 러프나 경사면 약간 밖으로 나가면 함께 찾는 노력이라도 보여줘야 하는데 거들떠보지도 않는 게으른 캐디도 기피 대상이다.

또 화장이 지나치거나 초보자들을 무시하고 비웃으면서 섣불리 가르치려드는 꼰대형 캐디도 피하고 싶다.

성실하게 캐디 본연의 업무를 수행하고 친절한 언행으로 분위기를 살리면 마지막 홀에서 내기 승자로 하여금 스스로 통 크게 지갑을 열게 할 수도 있지 않을까.

[정현권 골프 칼럼니스트·전 매일경제 스포츠레저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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