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구가 조금 특별한 스포츠인 이유

  • 정지규
  • 입력 : 2017.02.21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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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게티이미지뱅크
▲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쇼미 더 스포츠-32] 지난주 한국프로배구는 웃지 못할 해프닝으로 시끄러웠다. 상황은 이랬다. 2월 14일 한국전력과 대한항공 간 경기 1세트 14대12 상황에서 한국전력 강민웅 선수가 동료 선수들과 다른 유니폼을 입은 잘못으로 인해 한국배구연맹(KOVO) 측이 한국전력의 득점 11점을 삭제하는 결정을 내렸다. 감점의 근거는 동료들과 다른 디자인의 유니폼을 입은 강민웅 선수를 부정선수로 간주해 그가 나오기 전에 한국전력이 득점했던 1점만을 인정한 것이다. 실랑이 끝에 14대1로 대한항공이 앞선 채 경기는 다시 속개됐으며, 1세트는 25대8이라는 압도적인 점수차로 대한항공이 승리했다. 해당 판정과 이와 관련한 감점 조치가 적절했는지에 대해서는 아직까지도 논란이 계속되고 있으며, 논란이 될 만한 충분한 여지가 있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이번 '쇼미더스포츠'에서는 판정의 옳고 그름을 이야기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그 판정보다는 그 이후 상황을 통해 배구라는 스포츠가 갖고 있는 매력 내지 특별함을 알려드리고자 한다.

 다 알다시피 강민웅 선수의 퇴장과 한국전력의 감점 조치 이후에 첫 세트는 25대8이라는 일방적인 스코어로 대한항공 승리로 끝났다. 한 세트에서 17점의 점수차는 올 시즌 지금까지 열린 2016~2017시즌 프로배구 남녀부 총 183경기를 통틀어 가장 큰 점수차였다. 그 전까지 최다 점수차는 16점차로 1월 28일 열린 여자부 흥국생명과 KGC(25대9)의 경기였다(참고로 한 세트 역대 최다 점수차는 25대7로 세 차례 나왔다). 한 세트에서 진 팀이 15점 미만을 기록한 경우는 몇 번 있었으나 대부분 여자부 경기였고, 남자부 경기에서는 단 세 차례만 있었으며, 최다 점수차 경기는 11점차(25대14)였다. 그만큼 배구는 경기 속성상 각 팀 간 세트 내 점수차가 많이 나지 않는다. 특히 남자 경기에서는 더욱 그러하다.

 그러나 첫 세트 혹은 한 개 세트에서의 패배가 경기 전체의 패배를 의미하지는 않았다. 그날 경기에서도 한국전력은 분발했고, 2세트와 3세트를 연속해서 따내 대한항공을 리드했다. 물론 뒷심 부족으로 4세트와 5세트를 내주면서 결국 패하긴 했다. 하지만 한국전력 입장에서는 아쉬운 패배에도 불구하고 승점 1점은 챙겼다. 과정이야 어떻든 1세트의 일방적인 패배에도 불구하고 팀이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최선을 다한 데 대한 보상은 있었던 된 셈이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스포츠에서 경기 내적으로 가장 중요한 것은 과연 누가 이기느냐다. 바꿔 말하면 승리를 결정하는 방식이 무엇이냐다. 승리를 결정하는 방식은 매우 직관적이어서 사실 그리 어렵지는 않지만 종목별로 자세히 들여다보면 좀 차이가 있다. 대부분의 종목들은 점수를 내는 방식은 각기 달라도 누가 점수를 더 많이 내느냐, 즉 다득점에 따라 승패가 갈린다. 특히 단체구기종목의 경우는 거의 예외가 없다. 야구, 축구, 농구 같은 프로리그가 활성화돼 있는 종목은 물론이고 핸드볼, 하키, 럭비 심지어 수구까지 올림픽 정식 종목으로 채택돼 있는 모든 단체구기종목은 다득점 방식으로 승부를 내고 있다. 단 한 종목만이 예외가 있는데, 그것이 바로 배구다. 배구는 세트제 방식(세트제 방식은 개인 종목인 테니스, 탁구, 배드민턴 등에서는 보편적으로 쓰이고 있지만 단체구기종목에서는 그 예를 찾기 힘들다)을 채택하고 있는데, 세트제 방식은 다득점 승부 방식의 변형이라고 볼 수 있다. 세트제의 핵심은 정해놓은 세트 수를 누가 먼저 도달하느냐다. 개별 세트를 차지하기 위해서는 다득점 방식이 적용되는데 보통 시간을 제한하지 않고 정해놓은 점수에 누가 먼저 도달하느냐에 따라 해당 세트의 승자와 패자가 결정된다. 얼핏 보면 다득점제와 별 차이가 없어 보이지만 세트제 방식은 다득점제와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바로 전체 경기에서 다득점을 차지한 팀이 질 수도 있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물론 다른 종목과 마찬가지로 대부분의 배구 경기에서는 한 경기에 다득점을 차지한 팀이 경기에서 승리하게 된다. 하지만 이것이 승리를 위한 필수조건은 아니다. 간혹 총득점을 적게 한 팀이 해당 경기의 승리를 차지하기도 한다. 실제로 2월 20일 현재까지 열린 올 시즌 한국프로배구 183경기 중 12경기에서 전체 다득점을 한 팀이 경기에서 패했다. 다시 말하면 상대보다 많은 점수를 올렸음에도 불구하고 경기에서 졌다는 뜻이다. 비율로 따지면 6.6%나 됐다. 이쯤 되면 이러한 상황이 아주 예외적인 일이라고 말하기도 어렵다.

 그렇다면 세트제 방식에서만 생기는 이런 현상은 무엇을 의미할까?

 세트제를 통한 경기 운영의 가장 큰 장점은 경기 초반에 상대방에게 밀린 상황을 만회할 수 있는 기회가 있다는 점이다. 스포츠 경기에서는 소위 '몸이 풀리지 않는 것'을 포함해 여러 가지 이유로 초반에 경기력이 안 올라오는 경우가 종종 생긴다. '슬로스타터'라는 표현이 스포츠에서만큼 흔하게 쓰이는 경우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다득점제를 채택하는 다른 스포츠 종목에서는 초반의 부진이 조기에 경기의 승부를 결정짓는 경우로 이어지는 사례가 꽤 자주 발생한다. 이런 경우에는 경기를 실제로 하는 선수들이나 코칭스태프, 경기장에서 직관하거나 각종 매체를 통해 시청하는 팬들까지도 맥이 빠지게 마련이다. 물론 승패와 관계없이 끝까지 최선을 다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겠지만 사실 말처럼 쉬운 게 아니다.

 하지만 배구에서는 세트제 방식을 채택함으로써 이러한 위험요소를 줄였다. 물론 배구에서도 일방적으로 지는 게임이나 조기에 게임을 포기하는 경우가 없다고는 얘기할 수 없다. 하지만 세트제 방식은 단순 다득점 방식에 비해 경기에 더 집중할 수 있는 요소를 만들었다. 논란이 된 지난 2월 14일 경기가 대표적이다. 감점 조치로 인한 1세트 한전의 유례없는 일방적인 패배는 다른 종목 같았으면 경기 자체를 포기하게 했을 사건이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배구에서는 세트 내 점수차가 얼마가 나든 단지 1세트를 놓친 것이고, 1세트를 놓치는 것은 시즌 중 전체 경기에서 절반의 팀들은 무조건적으로 겪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실제로 한국전력은 경기를 포기하지 않았고, 2세트와 3세트를 이기며 승점 1점을 확보했다. 겨우 승점 1점이라고 얘기할 수도 있지만 올 시즌처럼 플레이오프에 진출하기 위해 2~5위 팀들이 치열한 경쟁을 펼치고 있는 시즌 막판에 승점 1점은 나중에 매우 중요한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물론 세트제의 부작용도 있다. 경기 중에 각 팀은 '다소 과한 전략적인 선택'을 할 수 있다는 점이다. 특정 세트에서 점수가 벌어지고 최종 세트가 아닌 상황이라면 해당 세트를 지고 있는 팀들은 주전 선수들에게 휴식을 취하게 해줌으로써 다음 세트를 준비하는 경우를 우리는 종종 볼 수 있다. 특히 조기에 해당 세트를 포기하게 되는 경우도 간혹 있는데, 이런 상황은 매순간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스포츠의 핵심 명제와 충돌하는 게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득점제에 비해 세트제는 경기의 집중도를 유지시켜줄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 있는 경기 방식이다.

 여기에 또 하나 배구만의 독특한 승부 방식이 있는데, 바로 차등승점제다. 국제배구연맹(FIVB)은 2011년 7월부터 기존 룰을 개정해 차등승점제를 도입했다. FIVB가 차등승점제를 도입한 것은 박진감 넘치는 경기를 유도해 팬을 위한 플레이를 펼치려는 게 목적이었는데, 5년이 좀 지난 현재 최초의 목적을 어느 정도 달성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축구와 달리 농구와 배구에서는 무승부가 존재하지 않는다. 야구의 경우 원칙적으로는 무승부가 없지만 여러 가지 현실적인 여건을 고려해 한국과 일본에서는 무승부를 인정하고 있다. 하지만 무승부의 발생 빈도는 매우 낮은 편이다. 무승부가 상대적으로 많이 발생하는 종목은 축구다. 축구 또한 승부를 내는 것이 원칙이지만 상대적으로 체력 소비가 매우 많다는 점을 고려해 무승부를 조기에 제도화했으며, 이를 보완하기 위해 승점제를 채택했다. 승점제의 핵심은 승패 외에 '무언가'에도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다. '무언가'는 통상 무승부를 의미했다. 하지만 배구는 특이하게도 접전의 패배 및 승리에 의미를 부여했다. 즉, 패배했어도 아깝게 진 경우, 이겼어도 겨우 이긴 경우에 일반적인 승리(또는 패배)와는 다른 가치를 부여했고 이를 수치화했다.

 현대 배구의 세트제와 승점제 역사는 사실 그리 길지 않다. 지금의 각 세트 25점 랠리포인트제가 실시된 것은 1999년으로 불과 20년이 채 되지 않는다. 또 앞에서 언급한 거처럼 FIVB가 승점제를 채택한 것은 6년이 채 되지 않았다. 다른 메이저 구기종목들과 비교할 때 배구의 이러한 시도와 변화는 매우 과감하고 신속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야구는 100년 전에도 9이닝의 다득점 경기였고, 아웃카운트나 기타 주요한 변화가 거의 없었다. 축구 역시 골키퍼를 제외한 그 어떤 플레이어도 손을 쓰지 않고 45분 전후반 90분 동안 해야 하는 다득점 방식이라는 틀을 깬 적이 없다. 농구는 전후반제에서 4쿼터제로 변화를 줬지만, 배구에 비할 바는 아니었다. 배구가 이러한 변화를 시도하는 데는 상대방과의 몸싸움이 없는 종목의 태생적 콤플렉스를 벗어나고 보다 많은 사람들로부터 사랑받기 위한 노력의 산물로 해석할 수 있다. 그리고 그 결실은 서서히 나타나고 있다.

 이러한 변화를 위한 노력은 이제 다른 스포츠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국제축구연맹(FIFA)에서는 오프사이드 폐지를 검토하는 등의 목소리가, 야구는 이닝을 줄이려는 제안이, 골프에서는 18홀을 6홀제로 변형하려는 시도가 진행되고 있다. 실현 가능성이나 합당하느냐의 문제와는 별개로 스포츠 또한 하나의 재화 내지 서비스로서 더 많이 사랑받고 팔리기 위해 몸부림치고 있으며, 또 그래야만 한다는 방증이다. 결국 직접 하든 간에 또는 많이 보든 간에 많은 사람들이 즐길 수 있어야 스포츠 또한 가치를 지니게 되게 마련이다. 그런 의미에서 배구가 지난 짧은 기간 해온 노력은 박수 받아 마땅하다. 동시에 그 노력이 헛되지 않게 더욱 잘 운영하고 노력해야 하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명제다.

[정지규 삼성스포츠단 차장·스포츠경영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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