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흐, 오베르 쉬르 우아즈에서 화가의 낙원을 꿈꾸다

  • 정여울
  • 입력 : 2017.03.21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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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흐로 가는 길-40] 자신의 독특한 화법으로 그림을 그릴 때도 실제 이미지를 주요 모티브로 그림을 그렸던 과거와 달리, 오베르 쉬르 우아즈 시절의 고흐는 급격히 환상적인 이미지를 강화하게 된다. 오베르 주변의 풍경을 그릴 때도 고흐는 좀 더 전원적이고 목가적인 느낌, '이곳에 가면 온 가족이 행복할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을 주는 이미지를 추구한다. 사실 그것은 테오 가족을 향한 고흐의 메시지를 담고 있었다. 그는 테오 가족과 함께함으로써 자신의 인생에서 평화로운 안식을 찾고 싶었던 것이다. 테오 가족을 오베르 쉬르 우아즈에 정착시키기 위해서 그는 오베르 쉬르 우아즈를 최대한 아름답게 묘사해 테오에게 보여주고 싶어 한다. 항상 농부들이 일하는 풍경을 좋아했던 고흐였지만, 오베르 시절에는 한창 추수에 바쁜 시절에도 농부들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화려하고도 포근한 이미지, '이곳에서 나의 아기를 키우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평화롭고 안락한 이미지를 그리고 싶었던 것이다. 그 달콤한 상상의 중심에는 그가 장프랑수아 밀레만큼이나 존경했던 샤를 도비니가 있었다. 샤를 도비니는 수많은 화가를 오베르 쉬르 우아즈로 모이게 했던 장본인이자 인상파의 대부였다.

샤를 도비니,
▲ 샤를 도비니, '봄', 1862
 샤를 도비니는 밀레와 더불어 바르비종파의 대부였고, 캔버스를 야외로 들고 나가 그림을 그리는 문화를 이끈 옥외 그림의 선구자였다. 살롱전의 엄격한 심사와 규제로부터 화가의 자유로운 정신을 지켜야 한다고 생각했던 예술가들의 정신적 지주이기도 했다. 뒤프레, 코로, 세잔, 피사로 등 풍경화의 새로운 장을 연 화가들에게 도비니는 생생한 영감을 준 화가였다. 그가 살았던 오베르로 수많은 화가가 찾아왔다. 특히 도비니의 마지막 저택은 고흐에게 커다란 영감을 주게 된다. 그 아름다운 저택에서 도비니는 절친한 벗이자 위대한 화가였던 오노레 도미에와 함께 살았던 것이다. 온갖 과일나무들과 철철이 피어나는 꽃들로 둘러싸인 이 저택에서, 도비니는 아내와 아이들, 그리고 친구 오노레 도미에와 함께 화가로서의 마지막 안식을 꿈꿨다. 안타깝게도 도비니는 이 언덕 위의 작은 천국 같은 집의 안락함을 오래오래 누리지 못하고 곧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고흐가 테오에게 보낸 편지. 고흐는 도비니의 저택을 함께 스케치했다.
▲ 고흐가 테오에게 보낸 편지. 고흐는 도비니의 저택을 함께 스케치했다.
 도비니가 세상을 떠난 후 무려 12년이 지난 뒤에도, 도비니의 부인은 그 저택에서 조용하게 살고 있었다. 남편이 세상을 떠나고 오랜 시간이 지난 뒤에도 변함없이 검은 옷을 입은 채 그 집에서 살아가고 있는 도비니 부인의 모습은 고흐에게 커다란 감명으로 다가왔다. 이제 도비니의 저택이 고흐의 새로운 이상향이 된 것이다. 일반인들도 가끔 그 집에 방문할 수 있었고, 사람들은 도비니의 아내 소피 도비니 가르니에의 모습을 볼 수도 있었다. 고흐는 테오에게 보낸 편지에서 도비니의 저택을 스케치함으로써 '오베르로 너희 가족이 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비쳤고, 자신이 꿈꾸고 사랑하는 모든 정원의 이미지를 이 그림 한 폭에 집어넣고자 했다. 검은 상복을 입은 채 외로이 탁자 옆에 서 있는 도비니 부인, 신비롭고도 생기발랄한 분위기를 물씬 풍기는 고양이, 그리고 그들을 마치 평화롭게 감싸 안은 듯이 보이는 정원과 저택의 이미지는 고흐에게 또 다른 '예술가의 집'을 향한 환상을 부추겼다. 고흐가 꿈꾸는 '행복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구체적인 해답이 바로 이 그림 속에 들어 있었다.

빈센트 반 고흐,
▲ 빈센트 반 고흐, '도비니의 정원', 1890
 샤를 도비니와 말년을 함께 보냈던 화가 오노레 도미에 또한 고흐가 존경하는 화가였다. 샤를 도비니와 오노레 도미에의 아름다운 우정은 고흐를 감동시켰다. 서로 개성이 전혀 다른 화가들이 그토록 사이좋게 공동체를 이뤄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이 고흐에게 더 진한 감동으로 다가왔다. 게다가 오노레 도미에는 말년에 눈이 거의 먼 상태였기 때문에 누군가의 도움이 절실히 필요했고, 도비니 부부는 그런 도미에를 기꺼이 자신의 집에 초대했던 것이다. 샤를 도비니와 그의 아내, 그리고 오노레 도미에는 이 아름다운 저택에서 노년을 보내며 예술과 사랑, 우정이 하나 되는 아름다운 시간을 보냈고, 그것은 고흐가 꿈꾸는 행복의 이상향이 됐다. 고흐는 테오 가족과도 바로 이런 공동체를 꾸려나갈 수 있기를 꿈꿨다. 도미에와 도비니의 우정처럼, 테오와 자신의 우정도 계속되기를 빌었고, 테오의 아들과 제수씨 요하나에게도 복잡한 대도시 파리보다는 오베르의 목가적인 전원 풍경이 훨씬 좋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가정과 작업실이 하나가 되고, 가족과 우정이 하나가 되는 이런 이상적인 공동체는 고흐가 평생 꿈꾸던 행복의 결정체였다. 그 꿈같은 이상의 향기가 '도비니의 정원'이라는 그림 속에 가득 담겨 있다.

 이뤄질 수만 있다면, 얼마나 이상적인 공동체인가. 고흐는 더 이상 파트너를 찾으려는 가망 없는 노력을 계속하지 않아도 되고, 테오 가족을 바라보며 마음의 안정을 느끼기를 바랐던 것이다. 하지만 테오는 파리를 떠나고 싶지 않았고, 형과 같이 살기를 원하지 않았다. 형을 사랑했지만, 자신과 너무 다른 형과 일상을 함께할 수는 없었다. 고흐의 마음속에서도 어느새 미래에 대한 불안이 엄습하고 있었다. 또다시 '머릿속의 폭풍' 같은 발작이 일어날까 두렵고, 그림이 한 장도 팔리지 않을까봐 걱정스럽고, 팔리지 못한 채 테오의 집에 쌓이기만 했던 그림이 눈에 밟혀 잠이 오지 않았다. 그는 심지어 고갱에게 편지를 보내 '다시 함께 그림을 그리자'고 간청하기까지 했지만 고갱은 정중하게 거절했다. 자신이 살고 있는 브르타뉴의 작업실은 마을에서 멀리 떨어져 있어서 '자네처럼 의사가 필요한 사람에게는 위험할 수도 있다'는 내용이었지만, 사실 고흐와 다시 함께하고 싶지 않은 속내를 넌지시 비친, 명백한 거절의 편지였다. 고갱은 이제 마다가스카르로 떠나겠다며 열정을 불태우고 있는 중이었고, 고흐는 자신도 마다가스카르로 따라가고 싶다고 생각했지만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닫는다. 테오에게 이렇게 편지했다. "그림의 미래는 분명 열대지방에 있는 것 같구나. 하지만 고갱이나 내가 그 미래의 주인공인지는 확신할 수가 없다."

 고흐가 처한 현실은 아름다운 도비니 정원과는 달리 어둡고 삭막했다. 고흐는 오베르 시절 이후 자신이 급격히 '늙어버렸다'고 생각한다. "여하튼 내가 지금까지 걸어온 길을 되돌아가거나 전혀 다른 새로운 길을 꿈꾸기엔, 나는 너무 늙어버렸어."

 이 무렵 어머니에게 보낸 편지에서도 고흐는 착잡한 심경을 숨기지 못한다. "저는 앞으로도 계속 외롭게 살아가겠지요. 제가 가장 사랑했던 사람들조차도, 늘 유리를 통해 바라보듯 희미하게만 느껴졌을 뿐이에요."

[정여울 작가·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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