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스나리 소설은 악마적 모습으로 해방을 꿈꾼다

  • 허연
  • 입력 : 2017.12.07 1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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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8년 노벨상 수상자들과 함께 한 가와바타 야스나리. 다른 수상자들과는 달리 야스나리의 표정에서는 짙은 허무가 느껴진다.
▲ 1968년 노벨상 수상자들과 함께 한 가와바타 야스나리. 다른 수상자들과는 달리 야스나리의 표정에서는 짙은 허무가 느껴진다.
[허연의 일본문학 기행-50] 일본에서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문학을 논할 때 '마계(魔界)'라는 단어를 유독 많이 사용한다. 한국의 문학평론에서는 거의 등장하지 않는 표현이다. '마계'라는 표현은 사전적으로는 말 그대로 악마적인 세계를 뜻한다.

야스나리는 이 악마적인 세계를 활용해 일탈을 한다. 퇴폐문학으로 보이기까지 하는 이 일탈은 야스나리 문학에서 아주 중요한 상징성을 지닌다.

야스나리를 마계라는 분석틀로 설명하는 모리모토 모사무는 야스나리가 마계를 통해 "악함과 추함에 집중되는 비정한 시선을 보여주며, 대립되고 모순되는 것들을 통해 (독자들에게) 고뇌의 세계를 부여한다"고 말한다.

사실 마성(魔性)이 두드러지는 몇몇 야스나리의 작품은 읽는 이들을 불편하게 한다. 금기를 깨는 연정, 죽음에 대한 공포와 환생, 사회이면에서 벌어지는 일탈, 성적인 문란함 등이 주요 이야기 소재로 등장하기 때문이다. 야스나리는 이런 것들을 통해 우리가 보편적인 소설문학에 대해 가지고 있던 서정적인 기대를 산산조각 낸다.

야스나리 문학의 마성은 그의 손바닥 소설들에서 강력하게 드러난다.

그의 손바닥 소설 중 '정사'라는 작품이 있다. 아주 짧은 분량의 작품인데 내용은 이렇다.

한 남자가 부인이 싫어서 도망을 친다. 도망친 남편은 환청에 시달린다. 딸이 내는 소리가 멀리 떨어져 있는 남편에게까지 들리는 것이다. 점점 미쳐가는 아버지는 딸에게 편지를 보내 공놀이도 하지 말고, 미닫이도 닫지 말고, 밥먹을 때 소리도 내지 말 것을 요구한다. 나중에는 호흡도 하지 말고, 시계소리도 나지 않게 하라고 강요한다. 결말에서 부인과 딸은 죽는다. 더 괴기스러운 것은 남편도 베개를 나란히 베고 죽은 채 발견된다는 점이다.

야스나리는 이 소설에 대해 "사랑의 슬픔을 표현하고자 했다"고 밝혔다. 사랑의 슬픔을 표현하는 방식치고는 너무나 괴기스럽다.

멀리 떨어져 있는 가족이 내는 소리가 바로 옆에서 들리는 것처럼 남편에게 들린다는 설정도 그렇고 나중에 그들이 원인모를 죽음으로 발견된다는 설정도 그렇다. 야스나리는 이렇게 후기작으로 갈수록 판타지적 경향을 보인다.

특히 야스나리는 환청(幻聽)과 환시(幻視)를 자주 활용한다.

앞서 거론한 소설 '산소리'의 주요 모티프도 환청이다. 주인공 신고가 산에서 나는 듯한 환청에 시달리면서 죽음의 공포를 대면하고 소설은 그 지점에서 시작된다.

환시가 나오는 대표적인 손바닥 소설이 '옥상 위의 금붕어'다. 첩의 딸인 소녀에게는 수족관 속 금붕어의 환시가 보이고, 어느날 그의 어머니가 금붕어를 입에 문 채 죽는다는 해괴한 이야기다. 이 소설에 대해 야스나리는 "인간의 해방을 그렸다"고 말한다. 어머니가 금붕어를 물고 죽음으로써 소녀를 옥죄었던 출생의 저주, 즉 첩의 자식이고 사생아였다는 저주가 풀린다는 뜻이다.

야스나리의 신비주의와 마성은 현실에는 아름다움도 깨달음도 없다는 그의 가치관과 맞아떨어지는 문학적 경향이다.

그에게 현실은 이미 죽은 것이었다. 젖먹이 때 부모가 죽고, 소년이 되기도 전 누나 할머니 할아버지까지 죽어가는 것을 목격한 그에게 현실이 이미 죽음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런 원체험을 가진 야스나리에게는 다른 작가들은 도저히 따라 잡을 수 없는 '현실부정의 욕망'이 이글거린다. 야스나리 소설을 보편적인 시작에서 보면 안되는 이유다. 보편적인 시각으로 야스나리의 내면을 만난다는 건 불가능하다.

그는 또 여성의 문란함을 소재로 자주 차용한다. 이것을 일본에서는 '여성의 무정조(無貞操)'라는 말로 분석한다. 이 단어 역시 우리 정서에서는 거부감이 드는 말이다. 이 무정조성에 대해서도 야스나리는 묘한 말을 남겼다.

"나는 무정조 자체를 쓴 것이 아니다. 하나의 상징으로서 무정조를 노래로 만든 것에 지나지 않는다. 생명의 비애와 자유의 상징이라고 말할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그렇게 말해버리면 재미가 없다."

야스나리가 평생을 살면서 세상에 내놓은 작품들을 일별해보면 그를 움직인 가장 큰 동인이 콤플렉스였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귀족 콤플렉스, 죽음 콤플렉스, 고아 콤플렉스, 왜소함에 대한 콤플렉스, 남성성 콤플렉스, 패배한 일본 콤플렉스···.

아이러니하게도 이런 콤플렉스들이 모여 야스나리 문학이라는 누구와도 닮지 않는 거대한 산을 세운 것이다. 거대한 산이기에 야스나리 문학은 캐도 캐도 끝이없다. 그리고 그 산은 유쾌하지 않고, 머릿속에서 사라지지 않는다. 그의 마성은 쉽게 답을 내려주지 않는다.

[허연 문화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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