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쾌한 향신료 '고수' 처음 맛볼 땐 너무 이상했어

  • 정영선
  • 입력 : 2018.01.16 1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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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드트래블-9] 어릴 땐 못 먹었지만 성인이 된 후엔 먹게 되는 음식들이 있다. 예를 들면 쓴맛이 느껴지는 채소나 양파, 파처럼 향이 강하고 매운 음식들. 내 경우엔 카레 속 당근이다. 어릴 땐 그 물컹한 맛이 싫어서 엄마 몰래 남기거나 당근만 모았다가 숟가락에 얹어 가루약 먹듯 한 입에 털어넣고 우물우물 씹어 삼키곤 했다. 하지만 지금은 먹는다. 어른이 되니 갑자기 카레 속 당근이 맛있어진 건 아니고, 음식을 남길 수 없어서 먹는다는 게 더 정확하겠다. 어디 그뿐인가. 심지어 내가 카레를 만들 때도 당근을 넣는다. 왜냐고? 노란 카레엔 주황색 당근이 들어가야 색이 예쁘니까. 맛은 여전히 모르겠지만.

난 카레 속 당근을 제외하곤 어릴 때부터 가리는 음식이 없었다. 성인이 된 후 난도가 높은 음식을 만나긴 했지만 잘 적응했고(처음 '홍어'를 만났을 때는 좀 당황했다) 어떤 음식과의 만남도 대범하게 대처했다. 그런 나를 휘청이게 만든 식재료가 있었으니 그건 바로 '고수'였다.

고수
▲ 고수
고수를 만난 건 나의 첫 해외 여행지였던 베이징에서였다. 날은 더웠고 나는 중국 특유의 냄새에 적응하지 못하고 있었다. 당시는 여행 정보를 인터넷이 아닌 여행책에서 얻던 시절이라 그 나라에 대해 미리 알고 가는 것에 한계가 있었다. 중국어만 가득한 메뉴판을 받은 나는 오로지 감에 의존해 주문을 했고 내 앞엔 처음 보는 수프가 놓였다. 그 수프를 한 입 떠먹는 순간, 세상에! 이 해괴망측한 맛은 뭐지? 이건 마치 엄마가 로션 바른 손으로 사과를 깎아 줬을 때 느꼈던 그 이상한 맛, 먹는 즉시 오만상을 쓰게 되는 그런 맛이랄까. 난 대체 내가 뭘 먹은 건지 찾기 시작했고, 그것이 향채(샹차이(香菜)·우리말 '고수')에서 나는 향이라는 걸 알았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중국 여행을 갈 때 식당에서 사용하는 필수 문장으로 '不要香菜(부야오 샹차이)·향채는 빼고 주세요'라는 말을 외워간다는 것도 뒤늦게 알았다.

향채가 들어간 수프
▲ 향채가 들어간 수프
난 중국 여행을 하는 동안 향채(고수)가 들어간 음식 때문에 고생했다. 향채의 울렁거림을 떠올리면 상하이에서 베이징까지 열 시간 넘게 걸린 야간 기차를 탄 건 고생도 아니었다. 그렇게 여행을 끝내고 서울로 돌아온 뒤 난 향채를 한동안 잊고 잊었다. 그때만 해도 서울에는 고수를 쓰는 식당이 없었기 때문이다.

미나릿과의 한해살이풀인 고수는 중동과 동남아시아 지역에서 널리 쓰이는 재료다. 잎이나 줄기를 요리에 넣기도 하고 씨를 향신료로도 많이 사용한다. 폭넓은 사용처만큼이나 외국 요리책에도 자주 나오는 재료인데, 잎을 사용할 때는 실란트로(cilantro)라는 이름으로, 씨를 사용할 때는 코리앤더(coriander)라는 이름으로 자주 등장한다.

여행을 하면 할수록 고수는 다양한 형태로 내 앞에 나타났다. 나라마다 부르는 이름도 달라서 태국에선 팍치, 호찌민에선 라우무이(rau mui), 인도에선 다니야(dhaniya)로 불리며 다양한 음식에 등장했다. 고수는 어떤 나라에선 탕에 들어가 있었고, 어떤 나라에선 샐러드처럼 나오기도 했으며 또 다른 나라에선 카레에 섞여 있기도 했다.

태국의 향신료 가득한 식탁
▲ 태국의 향신료 가득한 식탁
동남아 요리는 고수를 빼놓고는 상상할 수 없다. 우리가 자주 접하는 베트남 요리인 쌀국수는 기본이고, 태국의 똠얌꿍, 솜땀, 팟타이, 말레이시아의 나시고랭, 미고랭 등 각 나라의 대표적인 요리에도 모두 고수가 들어간다. 그럼 내가 그런 요리들을 먹을 때마다 중국에서처럼 고생을 했냐고? 아니, 다행히도 난 그사이 고수에 서서히 익숙해져 갔고 그 맛을 즐기게 됐다.

쌀국수
▲ 쌀국수
일단 한 번 맛을 들이고 나니 고수는 은근히 중독성이 있었다. 처음엔 화장품 맛 같다고 생각했던 낯선 맛이 조금씩 상쾌하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한국에서 동남아 요리를 만들 때도 고수를 넣어보고 싶었지만 내가 처음 고수를 접했을 때만 해도 이태원의 '한남체인'이나 '해든 하우스' 같은 전문 식재료숍을 찾아 헤매야만 고수를 찾을 수 있었다. 심지어 막 생기기 시작한 베트남 음식점에도 고수가 없었으니까.

조금씩 고수의 맛을 알아가던 나는 향신료 가득한 동남아 요리에 푹 빠지게 됐고, 동남아 요리를 배우고 싶다는 열망에 태국 방콕까지 날아가 쿠킹스쿨에 다녀오게 됐다. 나를 타지의 요리학교까지 이끈 걸 보면 내가 처음 접했던 향채, 고수의 힘은 대단하다.

서울에서 즐기는 고수가 들어간 베트남 요리
▲ 서울에서 즐기는 고수가 들어간 베트남 요리
이젠 우리나라에서도 "고수 주세요!"라는 말은 낯설지 않다. 그사이 서울은 더 국제화되어 귀하던 고수는 동남아 음식점에서 비교적 쉽게 접할 수 있게 됐고 난 고수를 좋아하는 사람이 됐다.

여전히 내 주변엔 고수를 먹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내게 언제부터 고수를 먹기 시작했는지를 묻는다. 글쎄, 나도 잘 모르겠다. 여행 횟수가 늘어나고 다양한 음식들을 맛보면서 나의 미각과 후각은 더 단련이 되고 새로운 것들에 저항감이 서서히 사라진 게 아닐까.

고수 맛에 익숙해진 뒤 난 다시 홍콩을 거쳐 중국 선전에 갈 기회가 있었다. 오랜만에 도착한 중국에선 예의 '그 나라 특유의 냄새'가 났지만, 난 그 냄새가 중국에 처음에 갔을 때만큼 낯설지 않았다. 내가 낯설어했던 그 냄새엔 그 나라 사람들이 먹는 음식에서 나는 향도 함께 섞여 있을 것이다. 난 이제 그 향이 어떤 것인지를 안다. 음식과 문화와 사람이 뒤범벅되어 나는 그 냄새가 더 이상 낯설지 않다.

[정영선 요리연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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