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서 맛보는 샌프란시스코 '사워도'

  • 정영선
  • 입력 : 2018.01.30 1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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샌프란시스코의 시장
▲ 샌프란시스코의 시장
[푸드트래블-11] 오랜 만에 빵집 앞에 줄을 섰다. 서울 한남동에 문을 연 '타르틴 베이커리(Tartine Bakery)'에서 빵을 사기 위해서다. 예전에는 맛집을 찾아가 줄을 서는 일이 힘들지 않았는데 최근에는 줄 서는 일이 피곤하게 느껴진 터라 이곳에 오기까지 고민이 됐다. 미국 샌프란시스코가 본점인 이 빵집은 국내 오픈 전에도 '알 만한 사람들은 다 아는 곳'으로 빵 덕후들의 기대를 받아온 터라 추운 날씨에 긴 줄을 서야 할 게 불 보듯 뻔한 일이었다. 게다가 오픈 당일은 한파주의보가 내려진 날이었다. 갈까? 말까? 하지만 망설임은 잠시, 타르틴의 빵을 조금이라도 빨리 맛보고 싶다는 마음에 난 금쪽 같은 일요일 아침 졸린 눈을 비비며 한남동 매장으로 향했다.

타르틴(TARTINE)은 2002년 채드 로버트슨과 엘리자베스 프로에잇 부부가 샌프란시스코에서 시작한 베이커리로 전 세계인의 사랑을 받는 빵집 중 하나다. 이곳을 소개할 땐 '세계 최고의 빵' '죽기 전에 맛봐야 할 빵' 같은 수식어가 따라붙는다. 책도 몇 권 나왔는데 타르틴에서 판매하는 빵의 레시피를 모두 공개한 책 '타르틴 브레드'는 베스트셀러에 오르며 화제가 됐다. 워낙 인기가 많은 책이라 서점의 베스트셀러에 늘 꽂혀 있는 편이고 공항 서점에서도 만날 수 있다. 내게도 타르틴의 책이 두 권 있는데 모두 샌프란시스코 공항 서점에서 구입한 것이다.

샌프란시스코의 시장에서 만난 사워도우
▲ 샌프란시스코의 시장에서 만난 사워도우
타르틴 베이커리가 있는 샌프란시스코에는 다른 지역과는 조금 다른 특별한 빵이 있다. 바로 사워도(Sourdough)라고 불리는 시큼한 맛의 빵(시다(sour)와 반죽(dough)의 합성어)이다.

이 빵의 역사는 캘리포니아 골드러시 시절로 올라간다. 샌프란시스코에서 멀지 않은 아메리카 강에서 사금이 발견되자 사람들은 이곳으로 몰려든다. 이때는 이스트(제빵용 효모)가 없던 시절이라 밀가루와 물만으로 발효종을 만든 사워도를 사람들이 일상적으로 먹었는데 타 지역에서 온 사람들도 이 빵을 주로 먹게 된다. 이때 이 빵이 널리 알려져 사워도란 단어가 황금 채굴자를 가리키는 별칭이 될 정도였다. 이후 사워도는 샌프란시스코를 대표하는 빵이 됐다.

천연 발효빵인 사워도는 인공적으로 재배한 효모로 만든 발효빵과 달리 천연 효모와 유산균을 사용해 긴 발효 과정을 거쳐 생산된다. 우선 신선한 밀가루와 물을 준비해 섞는다. 밀가루에는 다양한 종류의 효모와 박테리아 포자들이 있기 때문에 물과 만나면 다양한 종류의 효모가 배양이 되면서 발효된다. 이 과정에서 온도나 습도 등 주변 환경의 영향을 크게 받기 때문에 세심한 관리가 필요하다. 사워도는 유산균에 의해 생산되는 젖산의 영향 때문에 인공 효모로 만든 빵과 비교했을 때 신맛을 낸다.

샌프란시스코의 풍경
▲ 샌프란시스코의 풍경
발효 과정에서 중요한 건 환경이다. 공기 중에 떠도는 미생물이나 눈에 보이지 않는 작은 박테리아가 발효에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샌프란시스코의 사워도가 유명한 이유에 대해 샌프란시스코 근처의 포도 재배 지역에서 가져온 야생 효모의 역할 때문이라거나 샌프란시스코의 짙은 안개 때문이라는 말도 한다. 어떤 이유든 샌프란시스코의 사워도는 그 지역 환경의 영향을 받고 있다.

몇 해 전 '시골 빵집에서 자본론을 굽다'의 저자인 와타나베 이타루의 강연에 간 적이 있다. 그는 제대로 된 빵을 구움으로써 지역을 살리고 환경을 파괴하지 않겠다는 신념을 가진 사람이다. 그 역시 빵을 만드는 환경에 대해 비슷한 얘기를 했다. 천연 발효빵은 만드는 장소가 달라지면 맛이 달라진다는 것이다. 효모라는 게 결국은 균인데, 그 균은 일정한 환경 안에서 존재하는 것이고 민감한 터라 환경이 달라지면 적응하기 쉽지 않다는 것이다. 그의 경우엔 자신이 살고 있는 오래된 집에 살고 있는 미생물들이 빵을 더 맛있게 만든다고 했다.

빵에 대해 깊이 알고 좋아하는 사람일수록 천연 발효종에 관심을 갖게 된다. 인공적으로 재배한 효모에서는 느낄 수 없는 다양한 풍미가 살아 있기 때문이다.

샌프란시스코의 빵집 BOUDIN
▲ 샌프란시스코의 빵집 BOUDIN
샌프란시스코의 빵집 BOUDIN에서 빵을 만드는 모습
▲ 샌프란시스코의 빵집 BOUDIN에서 빵을 만드는 모습
샌프란시스코의 빵집 BOUDIN의 풍경
▲ 샌프란시스코의 빵집 BOUDIN의 풍경
샌프란시스코의 빵집 BOUDIN의 사워도우 안에 든 클램차우더
▲ 샌프란시스코의 빵집 BOUDIN의 사워도우 안에 든 클램차우더
샌프란시스코의 빵집 BOUDIN의 빵들
▲ 샌프란시스코의 빵집 BOUDIN의 빵들
샌프란시스코에 갔을 때 사워도로 만든 빵을 먹기 위해 찾은 곳은 '부댕(Boudin)'이었다. 1849년 처음 사워도의 '첫 반죽(starter)'을 만든 이래 오늘날까지 이어져 내려오는 사워도 빵을 만드는 빵집 겸 카페다. 인기만큼이나 매장 규모도 컸고 세계 각지에서 온 사람으로 북적였다.

시원한 바닷바람이 부는 자리에 앉아 사워도로 감싼 클램 차우더를 주문했다. 클램 차우더는 조개 수프인데 부댕 베이커리에서는 사워도 안을 파내어 조개 수프를 담아준다. 해산물과 시큼한 빵의 조화도 너무 좋았고 수프를 다 먹고 누룽지 긁듯 빵 바닥까지 긁어먹으니 속이 든든했다. 이곳뿐만 아니라 샌프란시스코 곳곳에서 사워도를 만날 수 있었다.

타르틴 역시 부댕과 더불어 샌프란시스코의 인기 빵집 중 하나다. 아쉬운 건 부댕에 들린 뒤 다른 일정을 소화하느라 타르틴을 들리지 못하고 공항 서점에서 책만 사온 것이다. 그러니 서울에 오픈한 타르틴에 대한 궁금증이 더할 수밖에 없었다.

샌프란시스코의 풍경-케이블카
▲ 샌프란시스코의 풍경-케이블카
찬 바람을 맞으며 서울의 타르틴 앞에서 30분쯤 기다렸을까. 드디어 내 차례가 왔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 이미 매장 안 빵 진열대는 텅텅 비어 있었다. 부지런한 사람들이 모두 구입해가고 남은 건 몇 가지뿐. 사워도로 만든 '컨트리 브레드'를 사고 싶었지만 아쉬운 대로 남아 있는 키슈와 바게트만을 사야 했다. 그래도 부드러운 질감의 키슈는 풍미가 좋았고, 바사삭 소리가 나게 쪼개지는 바게트는 예상대로 시큼하면서도 구수한 맛을 느낄 수 있었다. 그냥 먹기엔 아쉬워서 수프를 끓였다. 서울에서 느끼는 샌프란시스코의 시간이다.

[정영선 요리연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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