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리우드 영화로 돌아온 '램페이지'가 소환한 게임의 추억

  • 이경혁
  • 입력 : 2018.03.14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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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의 법칙-75]

◆게임 원작 영화의 이색적인 신작, '램페이지'

게임을 원작으로 삼는 영화들의 흥행은 원작 게임의 그것과 비교하면 늘 갸우뚱한 수준인 경우가 많다. 원작의 엄청난 인기를 배경으로 흥행을 자신하던 2016년의 영화 '워크래프트'도 게임 원작 영화의 틀을 벗어나지 못했고, 같은 해 개봉한 '어쌔신 크리드' 는 영화 원작 게임이 어떻게 망하는지를 잘 보여주는 사례로 조롱받기까지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는 계속 게임을 다루고자 한다. '마인크래프트' 영화가 2019년 개봉을 예고했고, 그래도 흥행한 편에 속했던 '앵그리버드 더 무비' 가 속편 개봉을 예고하고 있다. 최신 게임부터 고전 게임까지 시대를 가리지 않고 이어지는 게임 원작 영화 속에서 조금은 기묘한 게임 하나도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건물을 부수는 괴수 액션 게임

할리우드 액션 스타 드웨인 존슨이 주연을 맡은 영화 '램페이지'는 무려 1980년대 후반에 제작된 동명의 게임으로부터 나왔다. 한국에서는 아케이드 버전이 아닌 IBM-PC 버전으로 크게 유행했는데, 정식 유통이 아닌 플로피디스크 복사를 통해 이른바 '복사집', 컴퓨터학원 등을 통해 널리 퍼진 게임이었다.

영화
▲ 영화 '램페이지' 는 80년대 한국에서도 유행한 고전 게임을 소재로 한다.

'킹콩' '램피지' 등의 이름으로 불린 약을 잘 못 먹어 괴수로 변해버린 세 주인공이 각각 고릴라, 공룡, 늑대인간이 되어 도시를 부수고 사람을 잡아먹으며 진행하는 것을 골자로 했다.

한 스테이지의 클리어는 도시 안의 모든 건물을 부수면 이루어지는 구조였다. 건물을 부수기 위해 플레이어들은 건물을 타고 기어올라 꼼꼼하게 주먹질을 해 건물의 구석구석을 부숴야 했고, 건물이 무너지기 전에 내려오지 않으면 피해를 입었다. 건물 안의 사람을 꺼내 잡아먹거나, 주먹을 휘두른 건물 안에 누전이 있을 경우 감전되기도 했지만 가장 큰 적은 괴수인간을 퇴치하기 위해 몰려온 군대였다. 헬기, 전차, 보병 등이 몰려와 계속 주인공을 공격했고, 체력이 다 떨어지면 다시 인간으로 돌아가면서 게임 오버가 되는 것이 '램페이지'의 기본 플레이였다.

◆키보드 한 대에 세 사람, 네 사람이 붙던 멀티플레이 방식

건물을 꼼꼼하게 부수는 플레이 정도 이상의 재미는 아니었던 '램페이지'는 당시에 조금 특이한 면에서 아이들에게 인기가 좋았는데, PC 한 대로 무려 3인의 플레이를 지원한다는 점이었다. 별도의 조이스틱 같은 장치 추가 없이도 일반 키보드 한 대에 세 사람이 달라붙어서 게임을 할 수 있었다는 점은 지금처럼 온라인 플레이가 제공되지 않던 시절 친구들끼리 모여 있는 자리에선 꽤나 새롭고 흥미로운 게임 플레이 경험이었다.


▲ '램페이지' 게임은 당시에는 보기 드문 3인 플레이를 지원했다.

키보드 인터페이스 기반 게임들이 대체로 WASD - 키패드 방향키를 통해 2인 동시 플레이 정도만을 제공하던 때 등장한 3인 이상의 플레이는 사실 물리적으로도 구현이 쉽지 않은 문제였다. 당장 성인 남성을 기준으로 세 사람이 키보드 한 대 앞에 모여서 플레이하는 모습을 상상해 보면 이게 무슨 의미인지 이해가 쉬울 것이다. 서로 어깨가 맞닿아 제대로 플레이하기도 어려운 게 1키보드 3인 플레이였지만, 불행인지 다행인지 아이들은 작은 체구 덕에 그나마 편안하게 3인 플레이가 가능했다.

'램페이지'를 능가하는 다인 플레이 게임도 있었다. '건틀릿'이라는 이름의 액션 게임은 지금까지도 시리즈 신작이 출시되는 나름 장수 시리즈인데, 초기에 미국 아케이드 오락실 등에서 조이스틱 네 대를 통해 4인 플레이를 지원하던 이 게임은 PC로 컨버전되면서 키보드 한 대를 네 구획으로 나눠 4인 플레이를 제공하는 위엄을 선보인 바 있었다.

3인도 쉽지 않았던 4인 1키보드 플레이가 얼마나 유의미했는지는 사람들의 기억에 따라 다르겠지만, 중요한 지점은 어쨌든 좀 더 여러 사람이 함께 플레이할 수 있는 게임이 나왔다는 말에 많은 어린이 게이머가 솔깃했다는 점일 것이다.

혼자 하는 것보다는 아무래도 여럿이 모여 떠들면서 하는 게 훨씬 즐거운 게임들이 있고, 비록 게임기 1대 - PC 1대이긴 해도 다인 플레이가 제공되는 게임은 친구들끼리 모여서 놀기 좋은 콘텐츠로서의 의미 덕분에 최소한의 인기는 모으고 있었다. 하다 못해 고에이의 '삼국지' 시리즈는 턴 방식으로 돌아가면서 플레이하는 멀티플레이를 제공했는데, 누군가는 네 명이 모여서 세 사람은 고스톱을 치고, 광파는 한 사람이 자기 턴을 플레이하기도 했다는 추억담은 온라인 이전 시대의 멀티플레이가 어떤 의미인지를 보여주는 사례가 아닐 수 없다.

◆온라인이 오프라인의 멀티플레이를 대체해 낸 것은 아니다

온라인 이전의 멀티플레이 게임은 당연히 기기가 있는 공간에 플레이어가 모두 모여야 가능했다. 이는 비단 게임뿐만은 아닌데, 80년대에 아이들에게 인기가 좋았던 또 다른 매체인 VHS 비디오테이프 또한 보통 플레이 기기가 있는 친구 집에 테이프를 들고 모이는 형태로 시청이 이루어졌다는 점에서 게임기가 있는 집에 모이는 아이들과 공통점을 갖는다.

이렇게 모여서 플레이하는 온라인 이전의 멀티플레이 형태는 몇 가지 시사점을 갖는데, 가장 먼저 꼽을 수 있는 것은 일반적인 생각과 달리 온라인 플레이의 등장이 기존의 오프라인 멀티플레이를 대체했다는 생각이 그리 정확한 지적은 아니라는 점이다. 모여서 플레이하는 게임이 사그라든 것은 오히려 각 가정의 PC, 게임기 보급률이 올라가면서 발생한 효과에 더 크게 기댄다. 좀더 정확한 표현은, 게임기가 없어 기기를 가진 친구 집에 가던 이들은 자신의 집에 게임기와 PC가 생기면서 발길을 끊었다는 표현일 것이다. 싱글 - 멀티플레이의 유희적 순위를 논하자는 것은 아니고, 다만 디지털통신을 통한 멀티플레이가 오프라인의 모임을 대체한다는 말은 순서상 잘 맞는 인과관계는 아니라는 이야기쯤 될 것이다.

◆80년대 문화사로서의 초기 디지털 멀티플레이

영화 '램페이지'의 원작을 기억하는 사람들은 연배가 뚜렷하게 드러나는 70년대~80년대 초반 사이에 출생한 이들이다. 원작 게임 자체가 대단한 인생게임 수준의 돌풍을 일으킨 것도 아닌지라 영화가 흥행한다 해도 어떤 과거 게임으로부터의 향수에서 비롯되는 일은 아닐 것이다. 오히려 한국 상황에서 '램페이지'의 추억은 게임 그 자체보다는 키보드 한 대에 세 사람이 몰려 플레이하던 오프라인 시절의 멀티플레이에 관해 풀려나갈 확률이 높다. '램페이지'가 불러낸 원작 게임의 시절은 그래서 80~90년대 초반 디지털 엔터테인먼트에 대한 문화사적 조명으로 더 의미있어 보인다.

[이경혁 게임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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