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저트의 천국 일본에서 만난 후쿠오카의 다쿠아즈

  • 정영선
  • 입력 : 2018.03.13 1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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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인베리 치즈 타르트
▲ 파인베리 치즈 타르트
[푸드 트래블-16] 재작년 이맘때였을까. 도쿄에 간 나는 지금까지 먹어 본 적 없는 치즈 타르트를 눈앞에 두고 있었다. 바로 하얀색 딸기가 얹어진 딸기 치즈 타르트였다. 딸기 치즈 타르트라면 탐스러운 붉은색이 특징인데 이 타르트는 옅은 분홍빛이 도는 흰색을 띠고 있었다. '이 딸기가 과연 달콤할까?' 고개를 갸우뚱하면서도 "계절 한정"이라는 문구에 홀려 주문하고 말았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타르트는 지금까지 먹어 본 그 어떤 딸기 타르트보다도 달콤했다. 위에 올려진 흰색 딸기는 파인베리(Pineberry)라는 것이었는데, 파인애플과 유사한 향이 난다고 해서 붙은 이름(파인애플(pineapple)+딸기(strawberry)의 합성어)이다. 난 처음 맛본 파인베리 치즈 타르트에 즐거워하며 그곳에서 몇 가지 타르트를 더 주문해서 먹고 일어섰다.

일본은 디저트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겐 안성맞춤 여행지다. 디저트의 본산인 프랑스까지 가면 더 좋겠지만 프랑스까지 가는 데 드는 시간과 비용을 생각한다면 일본은 가성비로 따졌을 때 꽤 좋은 선택이다. 도쿄엔 이미 수많은 유명 외국 셰프들의 베이커리, 디저트 숍이 즐비하게 들어와 있는 터라 여러 나라의 빵과 과자, 케이크를 쉽게 만날 수 있다. 난 일본으로 떠날 때마다 새로운 메뉴를 만나기 위해 가보지 못한 디저트 숍을 리스트 업해서 출발한다.

후쿠오카의 베이커리 16구
▲ 후쿠오카의 베이커리 16구
후쿠오카의 베이커리 16구 내부
▲ 후쿠오카의 베이커리 16구 내부


후쿠오카에서 찾은 곳은 '16구'라는 곳이었다. 이곳은 현대의 다쿠아즈를 만든 곳이라고 알려져 있다. 처음 이 얘기를 들었을 땐 의아했다. '다쿠아즈는 원래 프랑스에 있는 과자인데?'

다쿠아즈(Dacquoise)는 프랑스 누벨아키텐주 닥스 지방의 특산물로 부드럽고 폭신한 과자다. 달걀 흰자를 거품 내서 만드는 머랭 과자의 한 종류로 주로 앙트르메(케이크)를 만들 때 사용한다. 내가 프랑스 제과를 배울 때도 다쿠아즈는 단독으로 먹는 과자라기보다 주로 케이크를 만들 때 넣는 시트로 쓰였다. 다쿠아즈는 공기층을 많이 함유하고 있는 터라 크림을 잘 흡수하기 때문에 케이크의 부드러운 식감을 살리기에 좋다. 반죽에는 아몬드나 헤이즐넛 가루가 많이 들어가기 때문에 견과류의 향과 고소함을 담고 있어서 케이크의 맛을 더 올려주는 역할도 한다.

다쿠아즈
▲ 다쿠아즈
16구의 다른 디저트
▲ 16구의 다른 디저트


내가 찾은 후쿠오카의 '16구'라는 곳은 이 전통적인 형태의 다쿠아즈를 현재의 둥근 타원형의 디저트로 재해석한 곳이다. 이곳의 대표인 미시마 다카오 셰프는 프랑스에서 일할 당시 일본의 모나카 식감을 재현할 수 있는 제품을 구상했고 다쿠아즈에서 그 아이디어를 얻었다고 한다. 수많은 시행착오 끝에 그는 모나카를 닮은 형태에 겉은 바삭하면서도 속은 보송한 다쿠아즈를 만들어 낸 것이다. 그가 일본으로 돌아와 판매하기 시작한 이 메뉴는 큰 인기를 끌었고 미시마 다카오 셰프가 재해석한 이 다쿠아즈를 배우기 위해 프랑스에서 후쿠오카까지 오기도 한다니 다쿠아즈의 역수출인 셈이다.

후쿠오카의 베이커리 16구 내부
▲ 후쿠오카의 베이커리 16구 내부
일본은 트렌드에 빠르기도 하지만 기존 제품들의 재해석에도 빠르다. 생크림 케이크의 예를 봐도 그렇다. 프랑스 제과에서 생크림이 단독으로 케이크에 사용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 대부분 케이크에 들어가는 어떤 크림을 만들기 위한 재료 중 하나로 생크림이 들어간다. 우리에게 익숙한 생크림 케이크가 유럽에서는 보기 드문 이유다. 그런데 일본은 생크림 하나를 케이크 전체에 발라서 만드는 케이크를 만들어 냈다. 우리나라에서도 1990년대 초까지 버터크림 케이크가 주를 이루다가 (물론 이 당시 사용된 버터는 지금처럼 질 좋은 버터는 아니었을 것이다.) 1990년대 중반에 생크림 케이크가 등장하면서 지금까지 가장 사랑받는 케이크가 됐다.

생크림 케이크를 먹어 본 유럽인들은 (적어도 내가 만난 사람들은) 크림이 너무 가볍다고 말한다. 그럼 유럽 사람들은 어떤 케이크를 선호하냐고? 버터크림 케이크나 무스케이크가 일반적이다. 아마도 평소에 육류와 버터를 즐겨 온 식습관 때문이 아닐까? 버터크림은 식감은 무겁지만 고소하고 생크림은 가볍지만 산뜻하다.

후쿠오카의 베이커리 16구
▲ 후쿠오카의 베이커리 16구
내가 찾아간 '16구'는 한적한 주택가에 있었다. 원조집이라는 곳을 찾아가 보면 생각보다 작은 규모라 놀라는 경우도 많은데 '16구'는 반대로 성공한 집의 전형적인 모습이었다. 커다란 건물에 넓은 주차장, 지역 주민은 물론이고 관광객들도 끊임없이 들어왔으며 수많은 다쿠아즈가 가게 안을 채우고 있었다. 난 부푼 마음으로 다쿠아즈를 주문했다. 내 앞에 놓인 다쿠아즈는 지금까지 먹어 본 다쿠아즈에 비해 조금 거친 입자를 갖고 있었다. 입안에서 사르르 녹는 식감이라기보다 표면의 바삭함이 조금 더 느껴지는 타입이었다. 다쿠아즈는 달걀 흰자에 설탕을 넣어 단단하게 휘핑한 뒤 나머지 재료를 넣고 거품이 꺼지지 않도록 섞어야 폭신함을 유지한다. 이때 얼마나 섞어서 반죽의 되기를 조절하느냐에 따라 식감이 달라진다. 너무 부드럽지도, 그렇다고 단단하지도 않은 '16구'의 다쿠아즈의 식감은 수많은 테스트를 거쳐 만들어졌을 것이다. 안에 든 크림의 양은 적었지만 농후한 맛이 시트와 잘 어울렸다. 만드는 사람의 고집과 오랜 노하우가 느껴지는 맛이다.

[정영선 요리연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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