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낌 없이 주는 와인" 남미 대표 브랜디, 피스코(Pisco)

  • 나보영
  • 입력 : 2018.06.13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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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레의 포도밭 풍경 / 사진제공=칠레 와인협회
▲ 칠레의 포도밭 풍경 / 사진제공=칠레 와인협회


[세계의 와인 기행-57] 전 세계 와인 생산지를 돌아다니다 보면 포도나무는 인간에게 남김 없이 모든 것을 내어주는 듯하다. 포도가 발효되면 와인이 되고, 와인이나 와인 지게미를 증류하면 브랜디가 된다. 제조 방법이나 숙성 방식에 따라 맛과 향이 달라지는데, 와인을 곁들인 식사의 마지막에 식후주로 나오는 브랜디는 언제나 강렬한 인상을 남기곤 한다.

지구상에는 와인 생산지만큼 다양한 브랜디 생산지가 존재한다. 프랑스의 코냐크(Cognac)과 아르마냐크, 이탈리아의 그라파(Grappa) 생산지들, 셰리주로 유명한 스페인 헤레스 지역의 브랜디 드 헤레스(Brandy de jerez)를 비롯해 독일·오스트리아·그리스·이스라엘·러시아·미국·일본 등의 와인 산지에서도 브랜디가 생산된다.

남미를 대표하는 브랜디는 피스코(Pisco)다. 아로마가 풍부한 머스캣(muscat)을 비롯한 품종들을 사용해 다른 지역 브랜디보다 향이 강한 것이 특징이다. 도수는 만들기에 따라 천차만별인데, 35~45도가 주로 음용된다.

칠레의 피스코 / 사진제공 = 위키미디어
▲ 칠레의 피스코 / 사진제공 = 위키미디어

피스코는 예부터 칠레와 페루의 접경지역에서 생산돼 어디가 원조인지 서로 공방이 치열하다. 한국의 소주처럼 대중적인 술이라 소비량 또한 두 나라 모두 만만치 않다. 스트레이트로 마시기도 하지만, 주로 레몬이나 라임 즙, 설탕 등을 넣은 칵테일 피스코 사워(pisco sour)로 즐긴다.

칠레를 여행하는 동안 피스코 사워를 정말 자주 마셨다. 과장을 조금 보태면 거의 모든 식사에 등장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레스토랑에서 주문을 받을 때 식전 음료로 피스코 사워, 스파클링 와인, 국민 음료 체리모야(cherimoya·라임과 비슷한 과일의 일종) 셋 중 하나는 시키곤 했다.

피스코에 라임 즙과 설탕을 넣은 칵테일 피스코 사워
▲ 피스코에 라임 즙과 설탕을 넣은 칵테일 피스코 사워

상큼한 피스코 사워는 칠레 식전 빵의 단골 주자로 언제나 등장하는 소파이피야(sopaipilla)와 잘 어울렸다. 스페인어권에서 두루 애용되는 빵인데, 칠레에서는 단호박을 넣어 노랗고, 고소하게 만들어 먹는 것이 특징이다. "어릴 때 엄마나 할머니가 만들어주던 빵"이라고 칠레 사람들은 입을 모으곤 했다.

식후주로 마실 때는 간혹 망하르(manjar)라는 캐러멜 비슷한 우유잼을 활용한 다양한 디저트가 나오기도 했다. "망하르는 우유와 설탕을 끓여서 만드는데 바나나에도 뿌려 먹고, 아이스크림에도 올려 먹고, 팬 케이크와 곁들여 먹기도 한다"고 여행 중 만난 요리사는 설명했다.

칠레의 식전 빵 소파이피아
▲ 칠레의 식전 빵 소파이피아

한국에서 열리는 칠레 관련 행사에도 언제나 피스코가 등장한다. 주한 칠레대사관 파트리시오 파라게스(Patricio Parraguez) 상무관은 "칠레의 피스코는 위스키나 테킬라 같은 증류주와 견줘도 손색없는 세계적인 증류주"라고 자부심을 드러내기도 했다.

원조 논쟁은 여전하지만 칠레 사람들은 세계 어디서든 피스코 사워 잔을 부딪치며 건배라는 뜻으로 "살루드(Salud)!"를 외치거나 맛있게 먹자는 의미로 "부엔 프로베초(buen provecho)!"라고 말한다. 지금처럼 더운 날엔 그들처럼 시원한 피스코 사워를 한잔 마셔봐도 좋을 듯하다.

[나보영 여행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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