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인노래방과 영향을 주고받은 오락실 문화 살펴보기

  • 이경혁
  • 입력 : 2018.07.11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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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의 법칙-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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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락실 한편의 독특한 기기, 코인 노래방 부스

최근에는 좀처럼 보기 드문 장소가 되었지만 여전히 유흥지구의 한편을 차지하는 오락실에는 단지 우리가 쉽게 떠올리는 게임기들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작은 농구공을 던져 넣는 미니 농구게임, 고무망치를 들고 두더지를 때려 내는 두더지 게임, 펀치력과 킥력을 자랑하는 펀치 게임과 같이 온전히 디지털 가상공간에서만 하는 것이 아닌 게임들도 아케이드 오락실의 오랜 터줏대감들이다.

이러한 게임들이 오락실에 있다고 해서 그걸 이상하게 생각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런데 잘 살펴보면 저게 여기 왜 있지?라는 생각이 드는 기기들도 있긴 하다. 사람마다 다르지만, 예를 들어 최근 오락실에서 트렌드가 된 인형뽑기를 중심으로 한 'UFO캐처' 등이 대표적이다. 동전을 넣고 크레인을 조작해 인형을 뽑아 내는 이 기기가 게임이냐 아니냐는 논쟁이 분분할 것이다.

하지만 오늘 살펴보려는 기기는 'UFO캐처' 가 아니다. 2000년대 초반부터 오락실에 출몰하기 시작해 지금까지도 적지 않은 오락실에 자리하고 있는, 그리고 이제는 심지어 오락실 밖에서 더 큰 별도 공간으로 유희문화의 한 자락을 차지하기 시작한 기기가 있다. '코인 노래방' 부스다.

◆최초의 노래방은 오락실로부터 시작되었다

오락실의 코인 노래방 부스는 일명 '오래방'이라는 별칭으로도 잘 알려졌다. 시끄러운 오락실 한자리를 차지한 부스는 1·2인이 이용할 정도의 사이즈로 구성되어 있고, 실제 노래방에서 사용되는 기기가 마이크 두 개와 함께 세팅되어 있다. 완벽하게 방음이 되는 공간은 아니지만 밖으로 조금 새는 노랫소리 정도는 오락실의 다른 기기 소리에 묻혀 그럭저럭 괜찮은 수준을 유지한다. 혼자서 간단하게 한두 곡 부르고 나오기 딱 좋은, 이른바 '혼코노(혼자 코인 노래방 이용하기)'에 최적화된 구조다.

오락실의 노래방은 어떤 세대에게는 무척 낯선 일로 보이겠지만, 한국에 최초로 상륙한 노래방 기기의 설치 장소는 별도 노래방 업소가 아닌 오락실이었다. 주점이 아닌 독립적으로 노래만 할 수 있는 기기의 최초 설치 장소는 1991년 4월 부산 동아대 앞 오락실로 기록되어 있다. ('한국 노래방의 성장을 둘러싼 사회문화사', 문지현·2016) 한국 최초의 노래방 기기는 곡당 300원의 코인제로 돌아가는 오락실 안 작은 부스였고, 본격적인 노래방 업소의 출현은 이 기기들을 복수로 들여놓는 형태로부터 시작되었다. 노래방의 태동이 오락실에서부터 이루어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것이다.

곰곰이 생각해 보면 노래방에서 노래하는 행위와 게임의 유사점도 적지 않은 편이다. 반주라는 형태로 규칙이 주어지고 이에 맞춰 노래를 하되 자신만의 박자감과 변주로 규칙 안에서 유의미한 변용을 이끌어 내며, 그 과정 안에서 일련의 재미가 발생한다는 점들은 노래방의 시작이 오락실 안에서 태동할 만한 충분한 이유를 제공한다. 게다가 노래방도 초창기에는 '가라오케'라는 이름으로 들어오면서 이른바 왜색 문화의 선봉으로 여겨지면서 지탄의 대상이 되었다는 점까지도 어딘가 모르게 닮은 구석이 적지 않다. 이런저런 맥락 안에서 따져 본다면, 오락실 안의 노래방은 마치 리듬게임과도 같은 맥락에서 최초의 노래방은 노래하기 자체를 음악의 게임적 소화로 읽었다고도 볼 수 있을 것이다.

◆혼코노: 노래방이 오락실에서 시작된 의미를 일깨우다

그러나 오락실 부스로 시작했던 노래방은 이후 독립적인 업소로 자리하면서 그 양상을 조금 다르게 가져가기 시작한다. 1992년 정부는 건전한 소비 풍토 정착을 위해 주류 반입 없이 순수하게 노래만 부르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노래방 업종을 허가한다. 본격적으로 노래방 열풍이 불기 시작하면서 노래방 부스는 코인에서 중앙집중형 통제가 용이해지는 시간제로 변화하며, 소형 부스 중심에서 대형 룸 중심으로 재편을 맞는다. 소형 부스 안에서 노래를 부르는 행위의 즐거움에 초점이 맞춰졌던 초기 노래방은 이후 여러 명이 함께 방문해 즐기는 팀플레이에 가까운 형태로 변화하며 노래방의 전성기를 만들어냈다.

한동안 시간제 / 팀 중심으로 소비되던 노래방 공간은 2000년대 이후 다시금 최초의 모습으로 조금씩 회귀하는 흐름을 드러낸다. 오락실에 다시 코인형 부스가 들어서기 시작했고, 시간제 중심의 기존 노래방이 점차 코인형 부스로 대체되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2010년대 이후 흐름에는 한 꼭지가 더 얹어지는데, 바로 앞서 언급한 '혼코노' 현상이다.

기존 시간제 노래방에 비해 한두 곡을 가볍게 즐길 수 있고, 별도로 노래방을 함께 갈 팀을 찾을 필요도 없다. 가격이 저렴하고 시간적으로나 금전적으로나 간편해진 '혼코노'에서의 노래하기 문화는 어느 순간 기존 노래방 문화를 밀어내면서 사실상 노래방 문화의 주요 향유 방식으로 자리 잡기 시작했다. 한때 노래방이 반드시 단체로 방문해야 하는 공간으로 자리하며 혼자 노래방 가는 일이 무척 부끄럽고 어색한 시기가 있었던 반면, 이제는 혼자 가도 전혀 어색하지 않은 부스 중심의 노래방이 돌아오면서 '혼코노'는 자연스럽게 정착하기 시작했다. 한국 최초의 노래방 양식이 다시 돌아온 지점도 놀랍지만 한편으로는 혼밥, 혼술과 같은 동시대의 1인 문화 전성기에 시간제 노래방을 밀어낸 코인 노래방의 공간적 의미가 불러온 '혼코노'의 형태도 주목하지 않을 수 없는 변화로 여겨진다.

창조적 수용이라는 측면에서 확실히 오락실의 게임하기와 노래방의 노래하기는 닮은 구석이 있다. 시간제 대규모 노래방에서 팀 단위 유흥이라는 형태에 가려져 있던 노래 문화는 '혼코노' 의 등장과 함께 초기 한국에 오락실을 통해 첫발을 디딘 의미를 다시금 드러내는 결과를 낳았다. '혼코노'가 게임일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혼코노'를 위한 소형 노래방 부스가 오락실에 있는 것이 그리 어색하지 않은 이유는 아마 이러한 점에 있을 것이다.

[이경혁 게임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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