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덕적 비난과 법적 비난, 그 경계에 선 안희정 사건

  • 마석우
  • 입력 : 2018.08.22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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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폭행 등의 혐의로 기소된 안희정 전 충남지사가 지난 14일 1심 재판에서 무죄를 선고받고 서울 마포구 서부지법 청사를 빠져나가고있다. /사진=매경DB
▲ 성폭행 등의 혐의로 기소된 안희정 전 충남지사가 지난 14일 1심 재판에서 무죄를 선고받고 서울 마포구 서부지법 청사를 빠져나가고있다. /사진=매경DB
[마석우 변호사의 법률 이야기-72] 최근에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가 업무상 위력에 의한 간음과 추행 등 혐의에 대해 무죄 판결을 받았다. 미투 운동(Me Too Movement)이 계기가 되어 기소된 사건에 대한 첫 판결이기에 더욱 충격이 크다.

성폭력은 성적 자기결정권을 침해하는 범죄다. 사람은 누구와 언제 어디서 어떠한 방법으로 성행위를 할지를 결정할 권리가 있고 이러한 자유를 강제적으로 침해하는 범죄가 성폭력 범죄다. 특히나 성폭력은 신체적 피해뿐만 아니라 심각한 심리적인 피해를 낳는다. 평생에 걸쳐 생활 전반에 영향을 미친다고 한다. 오죽하면 성폭력 범죄를 인격에 대한 살인이라고도 칭할까.

성폭력 범죄의 가장 전형적인 형태는 폭행과 협박을 동원하는 것이다. 합의에 의한 성관계는 당연히 성폭력 범죄가 될 수 없다. 문제는 폭행·협박에 의한 제압과 합의 사이에 모호한 영역이 넓게 펼쳐져 있다는 점이다. 그 중간 영역에 안 전 지사 사건이 있다.

일단 형법 규정을 살펴보자.

형법은 폭행 또는 협박으로 사람을 강간한 사람을 강간죄로 처벌한다. 강간이 아니라 추행에 그친 경우에는 강제추행죄다. 역시 폭행 또는 협박이 필요하다. 그런데 상대방이 가령 신체적·정신적 장애가 있거나 술이나 약물에 취하여 성적 자기결정권을 행사할 수 없는 상태에 있었다면 어떨까. 이때는 상대방이 저항하지 않고 성행위에 응한 것처럼 보였더라도 강간죄와 동일하게 처벌한다. 바로 준강간죄다. 성적 자기결정권을 제대로 행사했다고 보기 어렵다는 이유다.

성적 자기결정권을 행사하기 어렵다고 보이는 또 다른 영역이 있다. 가해자와 상대방이 업무상 상하관계, 고용관계로 묶여 있을 때다. 평소에 업무상의 지시와 명령에 따라야 하고 따르지 않는 경우에는 해고와 같은 불이익이 수반되는 관계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성적 자기결정권을 아예 기대할 수 없을 정도라고 보기는 어렵다. 이때는 폭행이나 협박과 같은 강한 의사 제압이 없었더라도 성폭력 범죄로 처벌한다. 다만 폭행이나 협박보다 약한 정도의 위력은 필요하다. 성행위를 요구하면서 응하지 않으면 업무상 해코지를 주겠다거나 해고와 같은 고용상 불이익을 암시하는 경우다. 업무를 빙자하여 상대방을 속이고 성추행을 하는 경우라면 위계에 해당한다. 폭행·협박과 같이 성적 자기결정권을 정면으로 침해하는 것은 아니지만 상대방의 결정·선택에 위법한 영향력을 미치는 경우라고 보면 되겠다.

여기 상대방에 대해 절대적인 영향력을 미칠 지위에 있는 사람이 있다. 업무상 지시에 따르지 않으면 전격적으로 해고를 단행할 수 있는 절대적 권한이 있다. 평소에도 "담배"라고 하면 즉시 담배를 준비해야 하고, "맥주"라고 하면 맥주를 준비해야 한다. 하루 일정에 조금이라도 불편이 없도록 소소한 것마저 모두 수행해야 한다. 지속적인 관계가 유지되면서 이 사람의 말이 정신적으로도 절대적인 영향력을 미치게 되었다. 이 둘 사이에 성관계가 있었다. "업무상 위력에 의한 간음"에 해당한다고 봐야 할까.

안 전 지사 사건을 담당한 재판부는 '그렇지 않다'고 답했다. 형법 조문에 업무상 위력에 의한 간음죄가 성립하기 위해서는 "업무, 고용 기타 관계로 인하여 자기의 보호 또는 감독을 받은 사람"이라는 요건 외에도 그 간음 행위가 "위계 또는 위력"에 의한 것이어야 한다는 이유에서다. 검찰에서 제출한 증거만으로는 재판부에서 "위력"에 해당하는 구체적 사실을 확인할 수 없었다는 말이기도 하다.

상대방의 성행위에 앞서서 상대방의 결정에 영향을 미치는 다양한 동기와 수단이 존재하고 그 영역이 매우 넓다.

한쪽 끝에는 남녀 사이의 애정에 의한 동의가 있고 저 반대편 끝에는 폭행과 협박에 의한 범죄적 의사 제압이 있다. 폭행과 협박의 극단에서 반대편으로 오면서 위력이 있고 위계가 있다. 다시 그 옆으로 절대적 지위를 배경으로 한 성적 착취가 있다. 다양한 스펙트럼 가운데 어디까지 현행법으로 처벌할 수 있을까. 현행법으로 처벌할 수 없다면 어디까지 형법에 의한 보호범위를 넓히는 게 옳을까. 또 그 형벌의 수위는 어느 정도로 하는 게 맞는 걸까. 형법이 개입할 수 없는 영역에서 또 어떤 사회적 룰(rule)을 정립해 나가야 하는 걸까.

[마석우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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