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한의 절망에서 생존의 의미 되묻는 '프로스트펑크'

  • 이경혁
  • 입력 : 2018.08.22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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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의 법칙-98] 전쟁이라는 극한 상황에 놓인 인간의 윤리와 생존을 묻는 문제작 '디스 워 오브 마인'을 통해 2014년 인디 게임의 신성으로 등극했던 폴란드 게임제작사 '11비트 스튜디오'가 전 세계적 폭염 속에 출시한 새로운 작품의 제목은 '프로스트펑크' 다.

'프로스트펑크' 는 이름처럼 지금의 날씨와는 정반대인 지구 냉각을 배경으로 삼는다. 19세기 말께 석탄발전기 정도까지의 기술에 도달해 있는 인류에게 몰아쳐 온 혹한은 전 세계 모든 도시에 멸망을 일으켰다. 영하 수십 도까지 떨어지는 한파를 피해 사람들은 런던을 떠나 석탄이 풍부한 북쪽으로 도망치기 시작하지만, 중간에 버려져 있는 거대한 증기발전기 한 대로부터 희망을 떠올린 몇몇 이들은 다가오는 혹한을 버틸 새로운 공동체를 상상하기 시작한다.

◆몰락해가는 대혹한 속의 스팀펑크 게임

'프로스트펑크' 는 모든 것이 얼어붙는 대한파 속 스팀펑크를 배경으로 삼아 제작사의 전작이었던 '디스 워 오브 마인'처럼 생존 앞의 사회와 윤리를 게이머 앞에 선택지로 내놓는다. 전작이 특정 소규모 집단을 주인공으로 삼아 좀 더 밀착된 카메라를 통해 인간 개개인의 내면을 다룬 반면, '프로스트펑크'가 다루려는 것은 그보다 조금 더 큰, 이른바 '사회'라고 부를 수 있을 만한 수준의 공동체다.

플레이어는 발전기 주변에 모여든 생존자 공동체의 리더 역할을 수행하며 게임을 진행한다. 따라서 게임의 시점은 '스타크래프트' 와 같은 전략시뮬레이션, '심시티' 같은 시티 빌더 게임이 보여주는 것과 같은 먼 3인칭으로 생존 거주지 주변을 비춰주는 형식을 취한다. 석탄을 연료로 쓰는 공동체 중심의 거대한 동력장치는 생존에 필요한 열과 동력을 공급하는데, 이 장치를 중심으로 사람들이 모여들어 장치의 열을 이용해 혹한을 버틸 난방용 열을 얻고, 생존에 필요한 여러 비품을 만들어 낸다. 그룹의 리더로서 플레이어는 연료와 식량, 각종 재료를 캐내고 이들을 모아 거주지를 보완할 계획을 세우고 이를 수행하도록 명령을 내리며 다가오는 혹한으로부터 생존자 그룹을 지켜내야 하는 것을 게임의 주 목적으로 부여받는다.

과정을 풀어 나가는 일은 처음 게임을 접한 이들에게는 그리 만만한 수준이 아니다. 끊임없이 석탄을 소모하는 동력장치를 위해 한파를 무릅쓰고 채광에 나서야 하고, 식량을 구할 인원들도 끊임없이 외부로 나가야 한다. 동상 같은 질병으로 쓰러지는 사람들 때문에 거주지는 언제나 인력난에 시달리고, 혹여 외부 생존자가 방문한다 해도 인력난의 해소가 아닌 식량 부족이 먼저 이슈가 되는 최악의 상황을 플레이어는 어떻게든 꾸려나가기 위해 고군분투해야 한다.

석탄으로 작동하는 거대한 동력장치가 생존자 거주지의 유일한 희망이다. 대혹한을 버텨내기 위해 생존자들은 거주지를 만들고 자원을 모으며 동시에 불안과 싸워야 하고, 플레이어는 이들을 이끌어 끝까지 살아남아야 한다.
▲ 석탄으로 작동하는 거대한 동력장치가 생존자 거주지의 유일한 희망이다. 대혹한을 버텨내기 위해 생존자들은 거주지를 만들고 자원을 모으며 동시에 불안과 싸워야 하고, 플레이어는 이들을 이끌어 끝까지 살아남아야 한다.

◆희망을 올리고 불안을 잠식시킬 해법으로서의 제도들

그 과정에서 게임이 해법으로 제시하는 것은 제도다. 게임 속 거주민들은 희망과 불만이라는 두 가지 감정수치를 갖는데, 희망이 사라지고 불만이 폭주할 경우 지도자인 플레이어에 대한 신뢰를 잃어 플레이어를 혹한 속 벌판으로 추방해 버리며 게임 오버를 불러온다. 부족한 자원과 공포 속에서 공동체의 생존을 위해 희망을 불어넣고 불만을 감소시키기 위해 플레이어는 법률과 제도를 통해 공동체의 운명을 이어 나갈 방안을 찾게 된다.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이들을 위해 사설 격투장을 만들 수도 있고, 해가 지면 쉬러 돌아오는 노동환경의 효율 개선을 위해 연장근무를 지시해 모자라는 석탄이나 식량을 빠르게 확보할 수도 있다. 물론 이러한 제도들은 양날의 칼로 기능해, 격투로 인한 불만 감소뿐 아니라 부상자의 증가를 불러오거나 연장근무로 더 많은 자원을 얻는 대신 불만이 늘거나 사망자가 나오는 등 일이 따라오게 된다. '프로스트펑크'가 제시하는 대부분 결정은 플레이어에게 선택과 함께 포기를 제시하며, 이 때문에 게임의 난이도는 단지 테크 트리를 따라가는 수준이 아니라 최악의 상황에서 기회비용을 감수해야 하는 선택을 통해 보강된다.

그중에서도 특히 사회질서의 유지를 위해 선택하게 되는 두 개의 메인 테크 트리는 이 게임에서 사실상 엔딩의 형태를 좌우할 수 있는 중요한 선택지들로 구성되어 있다. 신앙과 질서라는 이 두 테크 트리는 각각 불안에 찬 공동체를 안정시키기 위한 방식으로, 종교적 열망과 강제적 질서 유지라는 방식을 플레이어에게 제안한다.

둘은 모두 사람들에게 대위기를 버틸 수 있는 희망과 조직력을 제공하지만, 동시에 공동체 중심주의에 쉽게 빠질 수 있는 수단에 의존하게 만드는 위험을 내포한다. 사원을 지어 예배를 드리고 신실함으로 생존에의 의지를 불어넣을 수 있는 신앙 루트는 게임이 전개될수록 더욱 강력한 효과를 가진 정책들을 열어주는데, 단순한 희망의 불씨였던 신앙은 점차 플레이어 개인에 대한 종교적 숭배로 변질되면서 광신도 집단으로 공동체를 변화시키는 흐름을 만들어 내도록 설계되었다.

질서 루트도 마찬가지 효과를 발휘한다. 자경대와 아침조회 등으로 자율적인 규율을 통해 단합력을 만들어내려던 시도는 점차 강해지면서 강력한 독재 중심의 통제사회로 플레이어의 공동체를 점차 변화시켜 나간다. 신앙이든 질서든 결국 분열하고 불안해하는 거주민들의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을 보여주지만, 과도한 정책 추진은 양쪽 모두 독재 혹은 광신이라는, 일반적인 사회라고는 보기 어려운 괴물의 모습으로 공동체를 바꿔버리는 결말을 가져오게 된다.


▲ '프로스트펑크' 는 분열하고 불안해하는 시민들을 묶어내기 위한 제도로 질서와 신앙의 길을 제시한다. 사회를 안정시킬 수 있지만, 이들은 동시에 과도하게 진행할 경우 독재 사회와 광신집단이라는 우려스러운 결말의 원인을 만들기도 한다.

◆단순 생존을 넘어선 게임의 첫 번째 질문-생존의 의미는 무엇인가.

게임의 최종 목적은 표면적으로는 최후의 한파를 버텨 생존하는 것이지만, '프로스트펑크'의 진 엔딩이랄 수 있는 지점은 단순한 생존의 문제가 아니다. 앞서 언급한 질서나 신앙의 제도를 끝까지 밀고 나가 버리면 혹한에서의 생존은 그리 어려운 문제는 아니게 된다. 그러나 이를 통해 게임이 묻는 것은 전작에서 물었던 것과 같은 맥락을 공동체 단위로 바꿔놓은 질문이다. 그렇게 살아남은 것의 의미가 무엇이겠느냐는 질문이다.

이는 게임을 플레이하는 게이머들이 모두 현대 사회에서 우리가 일반적으로 공유하는 사회윤리에 익숙하다는 전제로부터 비롯되는 엔딩에 대한 해석의 다양한 의미를 만들어내는 지점이다. 게임이 제시하는 생존 그 자체를 넘어선 뒤에는 '그 생존의 의미'를 묻는 두 번째 질문이 도사리고 있는 것이다. 적어도 우리는 인간 사회가 추구해야 하는 방향이 무엇인지를 알고 있기에 '프로스트펑크' 가 던지는 두 번째 질문은 게임 플레이 안에서 유의미한 기제로 작동한다. 어떻게든 플레이어는 최대한 자신의 공동체를 인간 사회의 보편적 가치가 지켜지는 수준에서 살려내고 싶기 때문이다.

◆성장하는 세계의 역설로 되묻는 제도와 윤리의 가치 앞에서

그러나 '프로스트펑크'의 질문은 단지 엔딩에 대한 윤리적 해석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굳이 지구 대멸망을 방불케할 사건 안의 공동체 지도자에게 생존과 사회제도의 무게를 재는 질문을 던지는 방식은 흥미롭게도 실제 산업과 제도의 발전을 통해 성장해 온 현대 사회의 흐름과 정 반대편에 선다는 점에서 좀 더 유의미한 시사점을 만들어 낸다.

게임 속의 여러 소재는 상당 부분 실제 근대화가 이루어지는 과정에서 사회적 이슈로 던져졌던 것들로부터 영향받았다. 노동이 가능한 인력과 부상자, 어린이와 같은 노동력에 들어가지 않는 인구는 게임 안에서 구분되며, 특정 제도를 통해 부상자와 어린이는 다시 노동력의 범주 안에 들어갈 수 있는 선택지를 제공받는다. 산업혁명 이후 더 많은 노동력을 필요로 했던 사회는 아동의 구분이 불명확했던 시절 어린 아이들까지도 열악한 노동환경의 기계 사이에 투입했던 역사를 가지고 있었음을 생각해 본다면, '프로스트펑크' 안에서 아이들을 단지 식량을 축내는 대상으로 둘 것인지, 혹은 노동력으로 전환할 것인지를 결정해 보라는 게임의 질문은 성장하던 사회가 고민했던 아동노동 금지법의 역사를 멸망해 가는 사회라는 역설적 상황에서 되묻는 의미로 자리한다.

성장하는 세계에서 미래에 대한 희망에 의지하며 만들어 내고 지켜 온 많은 가치에 대해 게임은 '성장한다' 는 방향성을 제거한 상태에서도 그것이 얼마나 유의미한 것인지를 게이머에게 질문한다. 심지어 아예 멸망해 가는 세계라는 가상공간에서 플레이어가 내리는 결정은 단지 디스토피아적 가상의 미래공간에 대한 결정이라기보다는 실제 인류가 걸어오며 쌓아 온 제도와 윤리, 가치들에 대한 보다 무겁고 날카로운 질문의 해답이 된다. 멸망까지는 아니지만, 적어도 그동안 겪어왔던 우상향의 성장 세계를 과거만큼 담보하기 힘들어진 저성장 시대를 마주한 우리에게도 '프로스트펑크'가 던지는 이 질문은 꽤나 무겁고 또한 뼈아프게 다가온다. 희망보다 절망이 두터운 미래를 현실에서 목도해야 하는 우리들에게도 점점 희망찼던 시대의 가치들에 대한 질문이 새롭게 던져지고 있기 때문이다. 게임도, 플레이어도 함부로 정답을 뽑기 힘든 그 질문만으로도 '프로스트펑크'의 의미는 결코 가볍지 않다.

[이경혁 게임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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