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상파 중계가 e스포츠 대중화의 필수요소는 아니다

  • 이경혁
  • 입력 : 2018.08.29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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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의 법칙-99] ◆최초의 e스포츠 지상파 중계에 분전한 해설진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에 시범종목으로 e스포츠가 처음 포함되면서 사상 최초로 지상파를 통한 e스포츠 중계가 첫 시험대에 오르고 있다. 게임 전문 케이블채널이나 인터넷 스트리밍으로만 관전할 수 있었던 여러 e스포츠 종목들이 지상파를 통해 생중계된다는 점은 여러모로 게임 애호가들과 산업 관계자들에게는 게임 매체의 대중성을 확대해 나갈 수 있는 좋은 계기로 여겨질 것이다. 특히 늘상 어둠의 영역으로 분류되기 일쑤였던 대중문화 판 전체에서의 게임이 차지하는 위치를 고려한다면 아시안게임과 같은 기회는 좀처럼 맞기 힘든, 게임을 일반 대중문화매체로 다뤄줄 수 있는 고비일 것이다.

이러한 의식은 지상파를 통해 중계되는 게임 방송의 곳곳에서 묻어나는 세심한 배려를 통해 콘텐츠에 작용하는 것으로 보인다. 8월 27일 낮에 KBS 인터넷 스트리밍을 통해 송출된 아시안게임 e스포츠 '리그 오브 레전드' 부문 조별예선 한국 대 중국의 경기에는 오랫동안 e스포츠 중계에서 연륜을 쌓아온 전문 캐스터와 해설진이 출동해 박진감 넘치는 경기 양상을 설명해 냈는데, 재미있게도 다양한 게임 내 용어들을 최대한 초심자들을 위해 풀어내려는 노력이 끊임없이 비치고 있었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리그 오브 레전드'의 전장인 '소환사의 협곡'에 존재하는 3개의 공격로는 일반적으로 게이머들 사이에서 '탑'(최상단 공격로), '미드'(맵 한가운데의 대각선을 가로지르는 공격로), '봇'(맵 최하단 공격로)으로 불리는데, 해설자들은 이를 단순히 탑, 봇으로 부르기보다는 하단 공격로와 같은 부가 설명을 통해 녹여내고 있었다.

설명은 단지 해설자들의 말로만 덧붙는 것이 아니라 별도의 자막을 통해서도 제공되었다. 해설자가 풀어준 게임 용어는 중계화면 한쪽에 텍스트로 보강되면서 e스포츠를 처음 보게 된 이들에게 복잡하고 다양한 용어를 최대한 설명하려는 모습을 보였다. CS, 정글링, 다이브 등 게이머들에게는 자연스럽게 여겨질 많은 용어들이 짧은 중계시간 사이에서도 최대한 설명력 있는 멘트와 텍스트로 가공되고 있었고, 간혹 기존의 게임방송과 같은 빠르고 다이내믹한 진행을 가져가려던 진행자들도 순간순간 부가설명을 덧붙이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새로운 e스포츠 시청자들을 향한 배려심이 가득 묻어나는 장면들이었다.

지상파 방송은 비게이머들에게 다소 생소할 수 있는 종목 설명을 위해 자막, 별도의 안내와 해설진의 보다 상세한 설명까지 최선을 다했다.
▲ 지상파 방송은 비게이머들에게 다소 생소할 수 있는 종목 설명을 위해 자막, 별도의 안내와 해설진의 보다 상세한 설명까지 최선을 다했다.

◆지상파는 e스포츠 대중화의 필수요소까지는 아니다

초심자를 향한 이러한 배려는 뜻깊고 아름다운 장면이긴 하지만, 한편으로는 과연 그 노력이 만족할 만한 수준의 결과에 닿을지에 대해서는 장담하기 어려운 측면도 존재한다. 10명의 플레이어가 유기적으로 연동되어 일으키는 맵 안에서의 전황은 일반적인 게임전문 방송의 중계로도 다 담아내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닌데, 거기에 부가적인 설명까지 붙이려다보니 상대적으로 게임의 속도를 못 따라가는 순간도 발생하고 있었다. 그보다 걱정되는 것은 이러한 설명만으로는 e스포츠 한 판의 의미가 다 전달되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우려였다.

현실의 스포츠보다 훨씬 더 복잡하고 방대한 규칙 하에 움직이고, 심지어 그 규칙마저도 온라인 시대에 들어와서는 매 시즌마다 새로운 형태로 변화하는 디지털게임을 기반으로 하는 e스포츠의 맥락은 단순히 설명을 두텁게 해 내는 것만으로는 충분한 전달이 쉽지 않다. 물론 오랫동안 관심을 가지고 지상파 중계를 통해 e스포츠를 지켜보는 팬층이라면 실제 플레이보다는 늦더라도 서서히 게임의 규칙에 익숙해질 수 있겠지만, 단기 이벤트전으로 펼쳐지는 아시안게임과 같은 상황에서 지상파의 일회성 중계는 제작진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쉽게 목표를 달성하기 어려운 것도 사실이다.

e스포츠의 첫 지상파 중계는 분명 게임사에 남을 이벤트이긴 하지만, 한편으로는 지상파의 영향력이 조금은 과도하게 평가받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드는 것이다. e스포츠의 대중화는 꼭 지상파라는 레거시 미디어에 게임리그가 출현해야만 달성할 수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외려 다른 많은 스포츠들이 지상파 정규 중계를 벗어나 스포츠 전문 케이블채널로 이동하고 있는 모습을 볼 때, 지상파 출현이 곧 대중화라고 섣불리 생각하는 것도 조금은 쉽게 가는 생각일 수 있다. 갈수록 영향력을 잃어 가는 지상파보다는 차라리 전문 케이블 채널의 확대나 게임별 인터넷 스트리밍의 방식의 보편화가 오히려 e스포츠 대중화에 좀 더 효과적인 길일 수 있다는 생각도 충분히 유의미할 것이다.

물론 공공재로서의 전파를 사용하는 지상파 매체에 등장한 게임캐스터와 해설진들이 보다 보편적인 시청자들을 고려한 방송 멘트 조절과 보강 설명을 필수적으로 가져가야 한다는 점에 대한 이견은 아니다. 또한 아시안게임이라는 대형 스포츠 이벤트에 처음 출전한, 그것도 세계적으로 이미 강국임을 인정받고 있는 e스포츠팀에 대한 중계 또한 당연히 비중 있게 진행되어야 하는 것이 맞는다. 다만 지상파 출연을 통해 e스포츠가 좀 더 대중화될 수 있다는 생각은 방향은 맞더라도 조금 섣부를 수 있다는 이야기다.

지상파의 영향력은 새로운 미디어들에 밀려 결코 예전 같은 위상을 가져가고 있지 못하다. 또한 e스포츠와 같은 새로운 방식은 레거시 미디어가 소화하기엔 다소 무리가 있는 형식이기도 하다. 다른 스포츠와 달리 구성되는 종목도 수시로 변화하고 각 종목을 차지하는 게임 내부의 규칙 변화도 다채로울 수밖에 없는 e스포츠 전반을 고전적인 매체 형식에서 담아낸다는 것은 그 노력에 비해 다소 가성비가 빠지는 결과일 수밖에 없다. 끊임없이 새 유닛과 카드가 추가되는 '하스스톤' 과 '클래시 로얄'을 지상파가 소화할 수 있을까? 이번 아시안게임에서의 '리그 오브 레전드' 중계에서 실제로 발생한 것처럼, 장비 문제로 장시간의 일시정지가 발생했을 때 고정된 편성표를 가지고 있는 지상파는 인터넷 중계보다 유연하게 대처할 수 없다는 사실도 드러났다. 어쩌면 e스포츠에 어울리는 자리는 지상파가 아닐 수도 있다는 소리다.

e스포츠의 대중화에 지상파는 정답이 아닐 수도 있다. 그러나 사상 처음으로 이뤄진 지상파 중계에서 온라인·케이블 중계진은 자신들이 왜 이 분야의 최고인지를 명실상부하게 증명해 냈다. 위부터 SBS·KBS 방송에 참여한 중계진
▲ e스포츠의 대중화에 지상파는 정답이 아닐 수도 있다. 그러나 사상 처음으로 이뤄진 지상파 중계에서 온라인·케이블 중계진은 자신들이 왜 이 분야의 최고인지를 명실상부하게 증명해 냈다. 위부터 SBS·KBS 방송에 참여한 중계진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랑스러웠던 e스포츠인들

냉정하게 이야기하자면 아마도 많은 이들은 여전히 게임, e스포츠, 그리고 이들을 중계하는 인터넷 방송이나 전문 케이블채널, 혹은 1인방송을 지상파와 대비하며 조금은 낮은 단계의 무언가로 인식하고 있을 것이다. 나는 오히려 이번 아시안게임 e스포츠 중계를 통해 사람들의 그런 시선이 바뀔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을 보았다. '리그 오브 레전드' 중계에서 보여준, 지상파 캐스터들보다 한 수준 낮게 사람들이 어림잡았을 중계진의 모습은 훌륭했고 자랑스러웠다. 매끄러운 진행, 초심자를 고려한 풍부한 해설과 상세한 설명, 경기 흐름을 경기 자체보다도 역동적으로 만들어내는 설명력은 오히려 지상파 캐스터들이 한 수 보고 배워갔을 수준이었다. 무엇보다도 '리그 오브 레전드' 중계에서 벌어진 장시간의 게임 중지 사태의 긴 공백을 메꿔 나가는 해설진과 중계진들의 노력은 이미 인터넷과 전문 케이블채널에서 산전수전 다 겪은 백전노장들이 무엇을 얼마나 해낼 수 있는지를 보여준 장면이었다. 경기에 참가한 게이머들뿐 아니라, 처음으로 지상파라는 새로운 무대 앞에서 전혀 기죽지 않고 자신들의 모든 것을 보여준 방송 관계자들의 노고에도 경의를 표한다.

[이경혁 게임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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