되로 막으려다 말로 갚는다... 약식명령에 대한 정식재판청구

  • 마석우
  • 입력 : 2018.09.05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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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게티이미지뱅크
▲ 사진=게티이미지뱅크
[마석우 변호사의 법률 이야기-74] '되로 막으려다 말로 갚는다'는 속담이 있다. 되와 말은 부피를 재는 단위인데 열 되가 한 말이 된다. 속담의 의미는, 조금 아끼려다가 오히려 큰 손해를 보게 됐다는 뜻이 되겠다.

형사절차에 약식명령이라는 제도가 있다. 형사절차에서 재판 없이 벌금형을 내리는 것을 말한다. 벌금형으로 끝낼 경미한 사건에 대해 검사가 정식 재판에 붙이지 않고 약식 재판을 거쳐 벌금을 내라는 명령을 해달라고 청구하는 게 약식기소를 한다고 말한다. '구약식'이라고 줄여서 말하는데 이에 대비해 정식의 재판을 해달라는 청구를 '구공판'이라고 한다. 정식 재판, 더구나 형사재판은 엄격한 절차와 증거에 따라 진행하지만 약식명령은 서류심사만으로 진행한다. 법원에 출석할 필요가 없기 때문에 피고인에게 절차상 유리한 게 사실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신병 구속의 위험이 없는 벌금형으로 끝나는 사건이라는 게 예정돼 있다는 점은 극히 유리한 측면이다.

유죄임이 명백할 때 해당하는 범죄의 법정형에 벌금형이 선택형으로 있는 경우에는 구약식을 목표로 수사 단계에서 변론을 진행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유죄임에도 기소유예로 불기소처분하는 경우가 없지 않지만 여기에 해당하는 게 어디 쉬운 일인가.

그러나 구약식을 받았다고 마냥 감지덕지할 일은 아니다. 아무리 벌금으로 때울 수 있다고 하더라도 유죄는 유죄, 전과가 남고 가령 성폭력일 경우에는 신상정보 등록, 성폭력 교육을 의무적으로 수강해야 한다. 유죄 사실이 확정되면서 민사소송이 이어지는 경우 민사법정에서도 꼼짝없이 불리한 사실이 인정될 수가 있다. 몇 개 직종에서는 아예 취업제한 사유가 되기도 하고 공무원인 경우 징계절차가 이어지게 마련이다.

약식명령장을 받아보니 벌금 액수가 너무 과한 것 같고, 그대로 내 범죄사실을 인정하자니 너무 억울하기도 하다. 약식명령장과 함께 우송된 안내장을 보니 7일 이내에 법원에 정식재판을 청구할 수 있다고 적혀 있다. "정식재판을 청구해봐?" 고민되는 당신, 어떻게 하는 게 좋을까.

과거에는 밑져야 본전이었다. '피고인이 정식재판을 청구한 사건에 대해서는 약식명령의 형보다 중한 형을 선고하지 못한다'는 조항이 버티고 있었던 것. 약식명령으로 벌금 500만원을 받았는데 판사가 재판을 해보니 1000만원을 때려도 될 만한 악질 사건이라는 확신이 들었더라도 벌금 액수를 한 푼이라도 더 올릴 수 없다는 말이다.

그러나 2017년 말부터 상황이 바뀌었다. '피고인이 정식재판을 청구한 사건에 대하여는 약식명령의 형보다 중한 종류의 형을 선고하지 못한다'고 조문이 변경됐다. 벌금형이 선고되었다가 징역형으로 바꿀 수는 없지만 벌금 액수는 올릴 수 있다는 말이다. 되로 막으려다 말로 갚는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게 됐다. 과거 정식재판 청구에 불이익변경 금지 원칙을 규정했던 것은 피고인의 재판받을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서다. 사안이 경미하고 사실관계에 대한 다툼이 없을 것으로 여겨지는 사건에 대해 간이한 절차에 의하도록 해 피고인 이익을 침해하지 않는 범위에서 국가의 자원과 시간을 절약하자는 취지였다. 다만 서류심사는 결코 정식 재판이 아니기에 원하는 사람이 있다면 원칙으로 돌아가 공판절차에 따라 형사재판을 진행하겠다는 게 이 제도의 핵심이었다.

그러나 '밑져야 본전'이라는 의식이 팽배하자 너도나도 정식재판을 청구하게 됐고 사법자원이 낭비된다는 지적이 있어 왔다. 새 제도가 시행되면서 언론들은 얌체 주차, 성추행범에 벌금 증액 판결이 이어진다는 소식을 전하고 있다. 이들 사례 가운데는 애초 벌금 50만원이던 벌금액이 100만원으로 상향 선고된 사례도 있다. 얄밉고 죄질이 나쁜 게 재판 과정에 드러나 벌금액이 늘었다는 식의 보도가 태반이지만 약간 주춤하게 하는 게 없지 않다.

약식벌금액은 검사가 결정하는데 그 이상 벌금으로 상향하는 게 과연 옳을까. 약식명령장을 받은 시민 입장에서는 벌금액이 너무 많다는 것도 정식재판을 하게 되는 이유지만 사실관계를 정식재판으로 다퉈보고 싶다는 이유에서 제기하는 경우도 많다. 아무리 경미해 보여도 형사처벌에는 벌금 외에 다른 불이익이 따르게 된다. 성폭력범이라는 낙인이나 공무원의 경우 징계, 민사배상 문제와 결부된다는 점을 생각하면 그렇게 간단히 볼 일은 아니다. 법률 개정 과정에 정식재판을 무분별하게 청구하여 사법자원을 낭비하고 있다는 점만 강조되고 자칫 피고인의 재판받을 권리 부분이 가볍게 취급되었던 것은 아닐까. 벌금액을 상향하더라도 일정한 한계를 씌웠어야 할 일은 아니었을까. 그런 의문이 든다.

[마석우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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