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이컬처 DNA] 음악 청년에서 레이블 대표로... '재주소년'에게 여행을 묻다

  • 박창영
  • 입력 : 2018.10.11 1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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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이컬처 DNA]

(영상=김종식)

어떤 여행은 방향을 제시해준다. '재주소년' 박경환(34)에게 2010년 겨울의 여행이 그랬다. 7년 간 친구 유상봉과 함께했던 재주소년이 해체된 후였다. "20대 후반이 주는 막연함이 있었다"며 "30대가 되면 사회 구성원으로 역할을 해야 할 것 같았고, 또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고민이 됐다"고 말했다.

그해 말부터 이듬해까지 약 7개월 동안 전국을 떠돌았다. 예전에 무대에 올라본 대구, 광주, 부산 등지 클럽 사장들과 연락해 공연하고, 또 다음 도시로 떠났다. 그는 "방랑가객처럼 노래 부르고, 또 노래를 부르다 보니깐 30대를 무사히 맞이할 수 있었다"며 "박경환 솔로 앨범을 후회 없이 만들어보자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듀오로 시작해 지금은 1인 밴드가 된 재주소년을 지난 10일 돈의돈 박물관마을 '고스트타운 레코즈'에서 만났다. 그는 이곳에서 자신이 대표로 있는 레이블 애프터눈 레코드 식구들과 특별한 공연을 준비하고 있었다.

재주소년 박경환이 기타를 연주하며 노래를 들려주고 있다./사진=김종식
▲ 재주소년 박경환이 기타를 연주하며 노래를 들려주고 있다./사진=김종식

-'마지막 춤은 나와 함께' '이분단 셋째줄' 같은 히트곡이 전부 재주소년 듀오 시절에 나왔잖아요. 그런 재주소년이 음악을 계속할 수 있을지 고민했다는 게 좀 의아하게 느껴질 팬들도 있을 텐데요.

▷그렇게 안정적이지는 않았어요. 재주소년이 나름 인기는 있었지만, 계속 그렇게 되리라고 생각은 하지 않았어요. 원래 듀오 재주소년은 4집까지만 하기로 계획하고 시작한 거였고요. 뭔가 새로운 것을 찾아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여행을 통해 찾은 해답은 무엇이었나요.

▷다음 작업에 바로 들어가는 거였어요. 일단 솔로 앨범을 후회 없이 만들어보자는 생각이었죠. 혼자 하는 거라 더 오랜 시간이 걸렸어요. 2~3년 정도요. 그때 냈던 앨범 이름이 '다시 겨울'이거든요. 겨울을 얼마 전에 겪은 거 같은데, 녹음을 하고 더빙을 쌓고 하다 보니 겨울이 또다시 찾아왔고, 그렇게 겨울을 세 번 맞이했다는 뜻이에요. 방법을 모르는 채로 이렇게 저렇게 부닥쳤는데, 그걸 통해 많은 게 쌓인 것 같아요.

재주소년은 쉴 때 영화와 책을 본다. 추천 영화로는
▲ 재주소년은 쉴 때 영화와 책을 본다. 추천 영화로는 '족구왕', 책으로는 정세랑 소설가의 '피프티 피플'을 꼽았다./사진=김종식

재주소년 노래는 대부분 생활에서 가사를 가져온다. '오랜만에 학교에서 후식으로 나온 귤/아니 벌써 귤이 나오다니'로 시작하는 히트곡 '귤'이 대표적이다. 급식에서 나온 귤에 착안해서 시간의 흐름을 그렸다. 그렇게 발상이 자연스럽게 떠오를 때까지 기다렸다가 곡 작업을 할 때가 많았다. 하지만 그는 2010년 그 여행을 다녀온 뒤로는 자신에게 채찍질하듯 살아왔다고 털어놨다.

-채찍질하듯 산다는 건 무엇인가요.

▷스스로 작업실에 일부러 앉혀 놓는 거예요. '내가 할 수 있을 때 할거야'라고 살면 작업 시간이 무한정으로 밀리죠. 일단 해야 해요. 마감 기한을 만들어두는 건 글 쓰는 사람 방식인데요. 음악도 그렇게 작업하는 게 말이 아예 안 되는 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재주소년 작업에는 아직 마감을 자주 두지는 못하고 있는데, 다른 뮤지션과 함께할 때는 적용해요. 저는 다른 뮤지션이 음악을 만들 때 프로듀싱에 참여하는 경우도 있으니까요.

채찍질을 통해 나온 첫 곡이 '2시 20분'이다. '카페에서 무슨 생각을 하는 거니 넌'으로 시작하는 노래로 커피 '카누' 광고에 삽입됐다. 광고 음악 제작 기회를 받아서 한 소절만 만들었는데, 그 소절만 넣은 채 광고가 먼저 나와버려 곡을 완성시킬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그렇게 쥐어짜면서 앞뒤를 조립하고 노래가 '말이 되게' 편곡하는 건 좋은 경험이었다"고 회상했다.

-2014년부터는 레이블 '애프터눈 레코드'를 설립해 유하, 유해인, 홍혜림, 폴린딜드, 오소영 같은 뮤지션과 동행하고 계시는데요. 어떤 레이블인지 소개해주세요.

▷기본적으로 포크, 인디 팝 감성 레이블인 것 같아요. 다양한 장르의 뮤지션이 자기 색을 가지고 들어온다면 마다할 이유는 없어요. 그런데 제가 만들다 보니까 아무래도 전체적으로 정적인 분위기는 생기더라고요. 제 취향에 맞는 뮤지션들에게 손을 내밀고, 또 그들이 제 손을 잡다 보니 음악적 정체성이 생기는 거죠. 그래도 결국 가장 중요시하는 건 뮤지션십(Musicianship)이에요. 그 뮤지션만이 들려줄 수 있는 음악이 있어야 하죠.

이날 재주소년은 공연
▲ 이날 재주소년은 공연 '올 데이 애프터눈'을 준비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제목처럼 하루 종일 애프터눈 레코드의 뮤지션들의 노래를 들을 수 있는 작은 콘서트였다. 레이블에 합류한 지 1년 쯤 됐다는 '혜인혜성'은 자매 듀오다. 동생 혜인(왼쪽)이 지난 해 대학교에서 박경환의 강의를 듣다가 사제지간으로 연을 시작했다. /사진=김종식

-대학교에서 철학을 전공하셨는데요. 가사에는 난해한 부분이 하나도 없어요.

▷저는 머릿속에서 이미지가 그려지게 가사를 쓴다는 생각을 하고 있어요. 알아듣기 힘들게 쓰는 작업은 추구하지 않는 것 같아요. 물론 더 깊이 읽고 곱씹어봤을 때 좋은 가사가 있을 수 있죠. 하지만 저는 노래를 듣는 동시에 이해되는 가사를 선호하는 것 같아요. 그런 부분이 있다 보니 단어를 선택하고, 또 그 음절과 어울리는 멜로디를 합치면서 곡을 만들어내요.

-감상자로서 재주소년은 어떤 음악을 즐겨 듣나요.

▷마이클 프랭크스(미국 재즈 뮤지션)요. 재즈 팝에 있어 제가 정말 따라하고 싶은 음악을 오래 전에 하신 분이에요. 하지만 그 시절의 사운드는 내고 싶어도 내기 힘든 것 같아요.

-왜 그렇죠.

▷하드웨어가 달라진 영향이 있을 것 같아요. 그때는 테이프 레코딩을 했을 테고, 그게 LP로 찍힌 거를 들었잖아요. 그 따뜻한 질감을 요즘에는 흉내내기가 힘든 거 같아요. 디지털에다가, CD에다가, 'FLAC'나 'MP3'로 듣는 것과는 정반대 질감이지 않나 싶거든요.

-옛날의 따뜻한 질감을 만들어내는 시도를 해보고 싶은가요.

▷기술적 시도를 하기에는 너무 멀리 와버린 거 같아요. 테이프 레코딩을 하는 곳은 이제 없어요. LP를 내고 싶긴 한데, 차근차근 준비 하려고요. LP로 제 목소리를 듣는다면 혼자 감상에 젖어 감동할 것 같아요. 최근에 '재주도 좋아'라는 컴필레이션 음반(여러 음악가 노래를 특정 분류로 모은 음반)에 참여했는데요. 그게 LP 앨범이에요. 곧 제 목소리, 장필순 님, 시와 님이 참여하는 LP 음반을 들을 수 있을 거예요. '재주도 좋아'는 제주도를 기반으로 환경 운동도 펼치는 단체입니다.

그가 지난 7월 낸 싱글 제목은 '첫 여행'이다. 2010년 그 여행에서 느꼈던 감상을 담았다. '왠지 슬픈 네 청춘이 훌훌 털어버리자고 할 때/너도 모르게 네 가슴에 고여있던 눈물이 흐를 때/나와 떠나'. 그는 고민하고, 눈물을 흘리는 청자들에게 "떠나"라고 권한다. 그건 여행이 주는 위로는 목적지나 경비가 아닌 떠난다는 행위 그 자체에서 온다는 걸 깨달은 이만 할 수 있는 권유다. 재주소년은 연말, 15주년을 맞이해 15여 개 도시를 도는 전국 투어를 계획 중이다. 오는 27일에는 레이블 소속 뮤지션 폴린딜드와 함께 벨로주 망원에서 '심쿵라이브'(필뮤직 주최)란 이름의 어쿠스틱 파티를 개최한다. "벌써 15주년이라는 게 좀 어리둥절해요. 그러다 찬바람 불면 실감이 나죠. 2003년 11월에도 추웠으니까요. 팬들을 공연장에서 만났던 것은 제게 다 추억으로 남아 있어요. 그래서 이번에도 투어를 하려고 더 움직이는 거예요."

27일 재주소년이 출연하는
▲ 27일 재주소년이 출연하는 '심쿵라이브' 포스터 /사진제공=필뮤직

[박창영 문화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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