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하지 않은 것들이 특별해지는 순간

  • 허연
  • 입력 : 2018.10.11 1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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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연의 폰카 아포리즘-33]

#62

사랑에 빠지면 특별하지 않은 것들이 특별해진다. 평소에는 흘려보낸 것들이 하나의 의미로 다가온다. 과학적이고 분석적이기 보다는 '예쁘고 애틋한' 감정들이 마음속으로 파고들어와 집을 짓는다.

슈베르트의 가곡집에는 사랑이라는 물결에 올라 타 있을 때만 만들어지는 '예쁜' 감정들이 곳곳에서 드러난다. '밤인사'라는 가곡의 한 대목은 이렇다.

"그대여 잘 자라. 그대의 꿈, 그대의 안식, 방해하지 않으리. 발소리도 들리지 않게 문가에 가서 문에다 안녕이라고 쓰리라."

안녕이라는 말을 하고 싶은데, 그 말이 그대의 안식을 방해할까봐. 발소리 숨소리 죽이며 다가가 문에다 '안녕'이라고만 쓰고 돌아오겠다니. 어찌 보면 예뻐도 너무 예쁘다. 하지만 이해가 된다. 사실 사랑에 빠진 순간 '그대'와 관계된 모든 것은 '그대'가 된다. 그대가 여닫는 문까지도 그대의 살갗이 되는 것이다. 그러니 문을 쓰다듬는 것만으로도, 나는 그대의 살갗을 한 번 보듬어 본 것이다. 다음날 그대가 문에 적힌 '안녕'이라는 단어를 읽고 기뻐하는 것은 덤이다.

#63

사랑은 가녀린 것들을 '힘'이 있는 존재로 거듭나게 해준다. 약하기 그지없던 것들이 사랑의 자기장에 들어온 순간 강한 것이 되는 것이다. 반대로 억세고 강한 것들은 힘을 잃는다. 이미 '힘'이었던 것들은 무엇인가에 길들여지듯 순해진다.

강한 것들과 약한 것들이 자리를 바꾸는 일. 그것이 사랑의 역사다.

[허연 문화전문기자·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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