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누구나 최선을 다해 아프다

  • 허연
  • 입력 : 2018.11.08 15:01
  • 프린트
  • 이메일
  • 페이스북
  • 트위터
  • 카카오스토리
  • 공유
프리미엄 첨부 이미지
[허연의 폰카 아포리즘-36]

#70

내가 가까이 다가 갈 때까지도 녀석은 날아가지 않았다. 나의 기운과 녀석의 기운이 엇나가지 않은 것이다. 서로의 기운이 상대에게 불편하지 않았던 것이다. 가까이 다가갈수록 이상하게 마음이 편했다. 녀석도 그랬을까? 슬며시 고개를 내쪽으로 돌리기까지 했다. 집으로 돌아와 조류도감을 뒤졌다. 녀석의 이름은 직박구리였다. 영역 본능이 강하다고 되어 있는데 왜 나에겐 너그러웠을까. 고마울 뿐이다. 안녕. 직박구리.

#71

"너만 아프냐? 다른 사람도 다 아파."

"나 만큼 아파봤어?"

이런 식으로 아픔의 무게를 논하는 사람은 하수다. 아픔은 오로지 아픈 사람의 것이기에 절대적이다. 다른 사람은 절대로 내 대신 아파할 수가 없다. 각기 다른 사람이 겪는 아픔의 경중을 논한다는 것이 불가능한 이유다. 따라서 우리는 타인의 아픔을 존중해야 한다. 타인의 아픔을 분류하거나, 그 아픔에 대해 무게를 가늠하는 어리석은 일을 하지 말아야 한다.

사람들은 누구나 최선을 다해 아프고 있다. 우리가 타인의 아픔은 존중해야 하는 이유다.

#72

두 개의 바다를 봤고, 두 번의 새벽을 만났다. 두 번쯤 누군가가 그리웠고, 두 번쯤 그가 미웠다. 그리고 두 번쯤 울 뻔했다.

#73

어느 시기가 오면 대중은 중심에 있는 것이 아닌 가장자리에 놓여 있는 것들을 좋아하게 된다. 가장자리에 있는 것에 환호를 하고, 그것에 충성을 다하기 시작한다. 급기야 대중은 가장자리에 있는 것들을 흉내내기 시작한다. 시간이 흐르면 가장자리에 있는 것들은 차츰 다수가 되고 대세가 된다. 그렇게 세월이 흐르면 가장자리 것은 결국 권력이 된다. 그리고 권력이 된 그들은 '새로운 가장자리 것'을 탄압하기 시작한다.

인간의 역사는 그렇게 흘러간다.

[허연 문화전문기자·시인]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