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이 시작된, 화가의 방

  • 정여울
  • 입력 : 2017.01.10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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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흐로 가는 길-32]
어제는 집에 가구를 들여놓느라 바빴단다 (…) 월넛 침대를 하나 사고 내가 쓸 잠자리로는 나무판자를 사서 쓰려고 해. 나중에 잘 칠해서 꾸미면 되니까. 그렇게 침대 두 개, 한 사람 분의 침구를 구입했고 매트리스는 두 개 샀어. 고갱이든 누구든 오기면 하면 그의 침대는 일분이면 준비 끝이야. 사실 나는 제대로 된 집을 꾸미고 싶었어. 나를 위한 집만이 아니라 누군가를 초대할 수 있는 그런 집 말이야. (…) 내 침실은 아주 단순하게 만들 거란다. 넓고 큰 가구들, 침대, 의자, 탁자, 모두 하얀 나무로. (…) 언젠가 너도 볼 수 있게 될 거란다. 환한 햇살이 비추는 작은 집을 그린 그림, 또는 창밖으로 별빛이 쏟아지는 하늘이 보이는 그림을.
-테오에게 보낸 편지 중에서


빈센트 반 고흐,
▲ 빈센트 반 고흐, '아를의 침실' 스케치, 1888
고흐는 평생 동안 '아늑한 공간'을 향한 꿈을 꾸었다. 그것은 예술가의 독립성이 보장되면서도 언제나 누가 와도 초대할 수 있는 개방성이 공존하는 장소였다. 그 아늑함이란 화려한 가구나 비싼 장식품이 아니라, '혼자여도 좋고, 누군가와 같이 함께 해도 좋은 그런 공간'을 향한 꿈을 담을 수 있는 소박한 공간이었다. 고흐는 테오에게 편지를 보내면서 작은 스케치를 동봉한다. 아직 '노란집'이 완성되기 전, 고흐는 스케치를 통해 방의 윤곽을 상상하고 있었다. "테오야, 마침내 내 작품의 전체 모습을 상상할 수 있도록 스케치 한 점을 보낼 수 있게 되었구나. 오늘 내 방을 그린 그림을 다시 시작했어. 눈은 아직 아프지만 새로운 아이디어가 떠올랐는데, 바로 이런 스케치야. 30호짜리 캔버스면 될 것 같아. 소박한 내 침실을 그려보는 거야. 색채로 모든 것을 말하는 그런 그림이야." 그는 이 작은 방 속에 어떤 '절대적인 휴식'을 향한 갈망을 담고 싶었다. "벽은 엷은 보라, 바닥은 붉은 네모꼴. 침대와 의자의 나무는 노랗고 상큼한 버터 같지. 침구와 베개는 아주 밝은 연두색이 도는 레몬빛이고. 침대보는 진홍색, 창문은 초록색으로. 화장실 탁자는 오렌지빛, 변기는 파랑으로, 문들은 라일락 빛으로 그려볼까 해."

빈센트 반 고흐,
▲ 빈센트 반 고흐, '아를의 침실', 1888
 고흐는 이 작품을 통해 생각을 멈추게 하는 그림, 상상을 멈추게 하는 그림을 그리고 싶었다고 한다. 어떤 고민도 어떤 상상도 잠깐이나마 쉴 수 있는, 그런 달콤한 잠과 같은 그림을 그는 그리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벽은 옅은 보라색으로. 바닥은 붉은 타일로. 나무로 된 침대와 의자는 싱그러운 버터 같은 노란색으로 칠해보는 거야. 침대 시트와 베개는 레몬색이 도는 밝은 연두색으로 그리려고. 침대보는 주황색으로 그려볼 거야. 창문은 초록빛이지. 화장실 테이블은 오렌지색으로, 세면대는 푸른색으로. 문들은 라일락으로 그리는 거지." "가구들은 흔들림 없는 휴식을 표현해야 해. 벽에 걸린 초상화도, 거울도, 유리병이나 옷가지들조차도. 다른 것에는 흰색이 사용되지 않았으니까, 액자 프레임은 흰색으로 해볼까 해. 나에게 강제적으로 주어진 휴식에 대한 보상이라고나 할까. 그늘진 부분이나 그림자는 그려 넣지 않았어." 그는 활기차고 싱그러운 느낌, 어두운 고민이나 끊임없는 불안 따위는 틈입할 수 없는 밝고 단순한 공간을 상상하며 이 그림을 그린 것 같다. '절대적인 휴식'을 꿈꾸는 화가의 방은 마치 지상의 작은 유토피아처럼, 그림 속에서만은 결코 현실처럼 초라하지도 협소하지도 않게 그려져 있다. 누구도 침해할 수 없는 꿈과 잠, 누구에게도 방해받지 않는 절대적인 휴식. 그 순수한 사적 공간을 향한 갈망이 이 그림 속에 오롯이 깃들어 있다.

빈센트 반 고흐,
▲ 빈센트 반 고흐, '아를의 침실', 1889
고흐가 그린 '아를의 침실'은 모두 다섯 작품이다. 세 작품은 유화, 두 작품은 편지 속의 스케치 형태로 남아 있다. 유화 세 작품 중 두 작품은 고흐가 생 레미의 요양원에 있을 때 복제화로 그린 것이다. 고흐는 밀레를 비롯한 다른 작가들의 작품뿐만 아니라 자신의 작품을 소재로 하여 복제화를 그렸는데, 그것은 완전히 동일한 색채와 형태가 아니라 조금씩 변형된 형태로 화가의 당시 정신 상태를 반영한다. 특히 생 레미의 요양원에서 그는 자신의 과거 작품을 많이 복제하는데, 그것은 '단순한 카피'라기보다는 자신의 과거에 대한 그리움과 성찰을 담은 '회상'의 형태로 보인다. 그는 지누 부인을 비롯한 많은 인물을 생 레미에서 다시 그리면서, 아를에서 있었던 일들, 그때 만난 인연들, 그 당시의 생각들을 회고하고, 반추하고, 그리고 조금씩 새로운 모습으로 부활시키고 있다.

 

 이 그림은 실제 아를의 방을 묘사한 것이기도 하지만, 고흐의 오랜 희망을 응축한 그림이기도 하다. 남프랑스에 예술가들의 공동체를 만들고 싶었던 그는 그 최소한의 단위로 화가의 행복한 방을 상상한다. 노란집을 빌린 것은 그에게 있어 행복한 예술가 공동체를 향한 큰 발걸음의 시작이었다.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그 유토피아적 상상만으로도 그는 꿈에 부풀어 자신의 작업에 박차를 가할 수 있었다. 그가 평생 동안 찾아 헤맨 가정의 행복, 어딘가에 마침내 정착하고 싶은 꿈, 모든 번뇌를 멈추고 오직 달콤한 휴식 속으로 빠져들 수 있는 작은 공간을 향한 꿈이 이 그림 속에 깃들어 있다. 그가 발작으로 입원했던 생 레미의 요양원에서 이 그림의 복제화를 그린 것도 어쩌면 그가 아를에서 잃어버린 모든 것들, 그가 요양원에서 감금되어 있는 동안 빼앗긴 모든 것들을 되찾고 싶은 마음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바로 '어디에 있어도 집에 있다는 느낌', 지금은 요양원에 갇혀 있지만 언젠가는 그 예술가의 방을 찾을 수 있으리라는 희망, 편안하고 아늑한 자기만의 방에 있다는 느낌을 되찾고 싶었던 그의 마음이 이 그림 속에 깃들어 있는 것이 아닐까.

[정여울 작가·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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