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일에서 와인으로, 와인에서 식초로…포도의 여러 生

  • 나보영
  • 입력 : 2017.03.22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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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도가 와인이 되고, 와인이 식초가 되는 곳 - 메디치 에르메테(중)

[세계의 와인기행-25] (상편에서 이어짐) 메디치 에르메테(Medici Ermete)의 알베르토 메디치(Alberto Medici) 회장과 와이너리 내부를 모두 둘러본 후 밖으로 나섰다. 와이너리 앞으로는 이 지역 중심대로인 '비아 에밀리아(Via Emilia)'가 쭉 뻗어 있었다. 고대 로마제국이 BC 187년에 건설한 역사 깊은 도로다. "에밀리아 로마냐 지방의 동남부와 북서부를 가로지르며 볼로냐, 모데나, 파르마 등의 주요도시를 관통합니다. 이 도로를 통해 물자가 교역되면서 지역 경제가 크게 발달했죠."

 길 양옆으로는 로마네스크 양식의 교회들과 오래된 포도밭들이 펼쳐졌다. 이 지역 대표 품종인 람브루스코 포도 나무들은 다른 품종의 나무들보다 키가 컸다. 안개가 자주 깔리기 때문에 바람에 의해 습기가 분산될 수 있을 정도로 키가 커야 한다고 알베르토는 설명했다.

메디치 에르메테의 발사믹 식초가 숙성되는 곳
▲ 메디치 에르메테의 발사믹 식초가 숙성되는 곳
 차로 약 5㎞ 달려 도착한 곳은 메디치 에르메테의 와인 박물관, 발사믹 식초 양조장 등이 모여 있는 테누타 람파타(Tenuta Rampata)였다. "에밀리아 로마냐는 와인뿐 아니라 발사믹 식초로도 유명합니다. 포도즙이 발효되면 와인이 되고, 거기서 더 발효되면 식초가 되죠. 포도가 열매로서, 와인으로서, 식초로서 여러 번의 생을 사는 셈이죠."

 발사믹 식초가 숙성되고 있는 공간에는 크고 작은 나무통들이 놓여 있었다. "포도즙을 졸인 뒤 작은 나무통에 담아 발효를 시작합니다. 첫해가 지나면 일부를 두 번째 통으로 옮겨 담고 첫 번째 통에는 새 포도즙을 채웁니다. 이렇게 여러 통을 거쳐 숙성되면서 꿀처럼 달고 부드러운 발사믹 식초가 탄생하죠." 무수히 많은 나무통 중에서 알베르토의 아이들이 태어난 해에 만들기 시작한 것에는 자녀들의 이름이 붙어 있어서 무척 인상적이었다.

메디치 에르메테의 와인 "유니크"
▲ 메디치 에르메테의 와인 "유니크"
 식당으로 내려가자 알베르토의 모친이 직접 요리한 음식들이 차려져 있었다. 프로슈토, 살라미, 볼로네제 파스타, 에르바조네(Erbazzone, 시금치와 건포도를 넣고 구운 전통 파이) 등이었다. 이탈리아 요리는 종류도 다양하고 양도 무척이나 많은데, 미식의 고장인 에밀리아 로마냐의 가정식 역시 매우 풍성했다.

 메디치 에르메테의 근사한 와인들은 입맛을 더욱 살려주었다. 가장 먼저 마신 것은 람브루스코 마라니 품종 100%로 만든 레드 스파클링 와인 '유니크(Unique)'였다. 살구 빛이 감도는 장미색을 띤 이 아름다운 와인은 연간 약 4000병만 생산된다. 알베르토 본인도 미리 챙겨 둬야 마실 수 있을 정도라고 했다.

 그 다음으로 맛본 와인은 람브루스코 살라미노 품종 100%로 만든 세미 스파클링 와인 '콘체르토(Concerto)'다. 성악가 고(故) 루치아노 파바로티가 즐겨 마셨고, 닐 베케트가 쓴 '죽기 전에 마셔봐야 할 와인 1001'에도 소개됐다. 이탈리아의 유명한 푸드&와인 매체 '감베로 로소'에서 선정하는 최고 등급인 트레 비키에리(Tre Bicchieri)도 8년(2010~2017년) 연속으로 받고 있다. 입 안에 머금으니 미세한 기포가 부드럽게 혀를 감쌌다. 알베르토는 '기분 좋은 혀 마사지'라는 재미있는 표현을 써서 그 느낌을 강조했다.

메디치 에르메테의 와인 "콘체르토"
▲ 메디치 에르메테의 와인 "콘체르토"
 이후에도 여러 와인이 서브됐다. 식사가 이어지는 동안 알베르토는 이곳에서 자라서 이 마을 여성과 결혼했다는 것, 이제 갓 대학을 졸업한 아들인 알렉산드로가 먼 훗날 5세대로서 메디치 에르메테를 이끌어 갈 것이라는 점, 이 고장 음식과 와인을 더 널리 알리고 싶다는 것 등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식사가 끝난 후에는 후식으로 바닐라 아이스크림이 나왔다. 알베르토는 거기에 발사믹 식초를 떨어뜨려서 먹어 보라고 했다. 이곳의 발사믹 식초는 참나무, 밤나무, 벚나무 등으로 만든 통에서 장기간 숙성되면서 꿀처럼 농밀해진다. 최소 12년 이상 숙성되며 12~20년 숙성한 것에는 레드, 20~25년 숙성한 것에는 실버, 25년 이상 숙성한 것에는 골드 레이블이 붙는다.

 오래 숙성된 발사믹 식초는 아주 부드럽고 달았다. 바닐라 아이스크림에 떨어뜨려 한 스푼 떠 먹으니 마치 캐러멜과 레몬처럼 달고 상큼했다. 과일에서 와인으로, 와인을 넘어서 발사믹 식초로 이어지는 이 고장 포도의 풍미를 아주 오래도록 잊을 수 없을 것 같았다. ('하'편으로 이어짐)

[나보영 여행작가]

나보영 여행작가
▲ 나보영 여행작가
※2005년 기자 생활을 시작해 '주류저널(Liquor Journal)' 수석기자로 여행과 와인을 담당하며 5년 동안 일했다. 퇴사 후 전 세계 와이너리를 여행하며 다양한 신문과 잡지에 기고하는 여행작가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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