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딱 한 번 하나가 되는 기적···귓속을 맴돌던 주제가"

  • 허연
  • 입력 : 2017.03.30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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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7년 만들어진 영화
▲ 1957년 만들어진 영화 '설국' 포스터
[허연의 일본문학 기행-17] 다카한 여관 2층은 야스나리만을 위한 공간으로 꾸며져 있다. 제법 그럴듯한 에스컬레이터까지 있어서 현관에 들어서자마자 바로 2층으로 올라갈 수 있다. 2층에는 안개의 방 이외에 책이나 사진 등 각종 관련 자료들이 전시된 공간이 있고, 한쪽에는 작은 영화상영실도 마련되어 있다.

 이 영화상영실에서는 흑백영화 '설국'을 하루 두 차례 상영한다. 1957년에 시로 도요다 감독이 만든 영화인데 2시간이 좀 넘는 영화다. 1958년 칸 영화제에까지 출품됐었으나 수상하지는 못했다고 한다.

 영화는 원작과 좀 다르다. 우선 너무나 유명한 소설의 첫 장면이 생략되어 있다. 시마무라가 기차에서 요코를 만나 유리창에 반사된 그녀의 모습을 훔쳐보는 장면 등이 없고, 열차가 터널을 막 통과하는 부분도 생략되어 있다.

 "국경의 긴 터널을 빠져나오자 설국이었다"는 부분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장면이 아쉽게도 영화에는 없는 것이다. 영화는 기차가 플랫홈에 도착한 이후부터 시작되는데 주인공들과 관련된 이야기도 조금씩 다르게 각색이 되어 있다.

 하지만 이 영화만의 감흥도 있다. 유자와 마치가 현대화되기 이전 1950년대의 모습을 영상으로 만날 수 있다는 점이다. 지금은 볼 수 없는 당시 유자와의 풍경은 소설의 이미지와 잘 맞아떨어져 내 눈앞에서 신비스럽게 합성되는 듯했다.

 다카한 여관을 평일에 방문할 경우 영화상영실에는 아무도 없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혼자, 혹은 동행들과 어두컴컴한 상영실에 앉아 흑백영화를 감상하는 것도 크게 나쁘지는 않다.

 사실 소설 '설국'은 여러 차례 영화로 만들어졌다. 다카한 여관에서 틀어주는 영화가 가장 오래된 것이다.

 영화 '설국' 중 그나마 우리에게 가장 많이 알려진 작품은 1965년 일본미의 거장이라 불리는 오바 히데오(大庭秀雄) 감독이 컬러로 만든 '설국'이다. 이 영화는 지금도 DVD 등을 통해 한국에서 유통되고 있다.

 이 영화 역시 소설을 많이 각색했다. 가장 큰 차이는 영화는 소설과 달리 시간 순서대로 진행된다는 점이다. 또 하나. 화재 장면에서 원작은 요코가 자살을 한 듯한 분위기를 묘사하는 반면, 영화는 요코가 사람들을 구하려다 죽는 걸로 그려진다.

 '설국'의 영화화는 한국에서도 시도되었다. 1977년 고영남 감독에 의해 만들어졌는데 당대 톱스타였던 박근형 김영애가 주연을 맡았다. 난 이 영화를 보지 못했는데 흥행에 성공하지는 못했던 것 같다.

 가장 최근에는 2004년 '신설국'이라는 제목으로 일본에서 다시 영화가 만들어졌는데 이 작품은 원작과의 유사성이 더 떨어진다. 당연한 것이 '신설국'은 야스나리 탄생 100주년을 기념해 사사쿠라 아키라가 새롭게 쓴 소설 '신설국'을 원작으로 했기 때문이다. 야스나리 탄생을 기념해 쓴 오마주를 영화화한 셈이다.

 영화 '신설국'은 3대째 가업으로 이어오던 섬유회사가 망하면서 갈 곳을 잃은 50대의 중년 남자가 설국에 와서 게이샤 모에코를 만난다는 줄거리다. 둘이 사랑에 빠지고 거부할 수 없는 이별을 받아들이기까지 과정이 그려진다.

 이 영화가 한국에서 화제가 된 건 영화 자체보다 '유민'이라는 이름으로 한국 방송에도 자주 나와 인기를 끌었던 일본 배우 후에키 유코(笛木優子)가 전라로 등장했기 때문이었다. 이런저런 화제는 불러일으켰지만 영화 자체는 흥행에 실패했다.

 사실 영화 '신설국'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건 주제가 '유키노하나(雪の花·눈의 꽃)'다.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나카시마 미카의 '유키노하나'와는 다른 곡으로 영화 '신설국'을 위해 만들어진 노래다.

 주제가 '유키노하나'는 사카모토 후유미가 불렀는데 영화에서는 유민이 직접 부르는 장면도 나온다. 가사가 너무 '설국'다워서 오래 기억에 남는 노래다.



"생명의 꽃잎은 당신

또 다른 꽃잎은 나

이 세상에서 한 번만

하나가 될 수 있었던 기적



안으면 지옥 그렇지 않으면 꿈

불에 다 타고 어디로 가나요



(중략)



슬픈 이유를 말하지 말아요

지금은 아무것도 알고 싶지 않아요



아 돌고 도는 바람에 춤추며

올라가는 눈의 꽃

돌고 도는 꿈에 춤추며

올라가는 눈의 꽃"



[허연 문화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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