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장 탱크에서 호스로 뽑아 주는 와인의 추억 - 메디치 에르메테 (하)

  • 나보영
  • 입력 : 2017.04.05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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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와인기행-26] 주전자 막걸리 받던 추억 이태리 와이너리서 재현

('중'편에서 이어짐) 메디치 에르메테(Medici Ermete)에서의 마지막 날, 알베르토(Alberto) 회장은 에밀리아로마냐 지방의 또 다른 주요 도시인 피아첸차(Piacenza)로 안내했다. 메디치 에르메테가 소유한 대중적인 와인 브랜드 '카스텔리 델 두카(Castelli del Duca)'가 생산되는 곳이다.

칸티나 발티도네의 와인 숍/사진제공=칸티나 발티도네
▲ 칸티나 발티도네의 와인 숍/사진제공=칸티나 발티도네
 피아첸차는 이탈리아 중북부의 젖줄이 되어 주는 포강(江) 연안에 자리한 비옥한 지역이다. 밀라노와 볼로냐 사이에 있는 교통 요충지이기도 하다. 지난 편에 언급했던 로마시대의 유서 깊은 도로 '비아 에밀리아(Via Emilia)'가 바로 그곳까지 닿는다. 차로 한 시간여 달려 도착한 곳은 중심부에 있는 와이너리 칸티나 발티도네(Cantina Valtidone)다. 안에서 마우로 폰타나(Mauro Fontana) 이사가 반갑게 마중 나왔다. 알베르토 회장과 농담을 주고받으며 인사를 나누는 모습에선 오랜 친분이 느껴졌다.

 "칸티나 발티도네는 1966년 설립돼 올해로 51년 된 와이너리입니다. 피아첸차에서 규모가 가장 큰 와이너리로서 1100헥타르(㏊) 포도밭에서 9000 메트릭톤의 포도를 생산합니다. 현재 약 300개 와인생산자를 회원으로 두고 있는데, 카스텔리 델 두카도 그중 하나로서 이곳에서 생산됩니다."

카스텔리 델 두카 오벨로 로쏘
▲ 카스텔리 델 두카 오벨로 로쏘
 와이너리 건물은 입구에서 봤을 땐 마치 작은 와인 숍처럼 보였다. 전문 소믈리에가 상주하고, 각종 와인을 파는 것이 여느 와인 숍과 비슷했다. 독특한 점은 한쪽 벽면의 와인 저장 탱크에서 호스로 와인을 뽑아서 사갈 수도 있다는 것. 사람들은 커다란 통에 와인을 가득 담아서 사간다고 한다. 마치 우리네 옛 양조장에서 양은 주전자에 막걸리를 담아 오던 것처럼 말이다. 이탈리아에서도 이런 방식은 이제 거의 사라졌는데 이곳에선 훈훈한 옛 풍습을 지켜오고 있었다.

 향수를 자극하는 풍경을 뒤로하고 와인 숍 안쪽의 문으로 들어서자 깜짝 놀랄 만큼 큰 양조시설이 이어졌다. 마치 비밀의 문을 열고 또 다른 세계로 들어선 느낌이랄까. 168헥토리터에 달하는 양조 탱크가 여러 대 놓인 모습이 눈을 압도했다. 발효는 양조 전문가의 연구를 거쳐 컴퓨터 제어로 정밀하게 진행된다고 마우로 이사는 설명했다. 아주 오래된 전통과 혁신적인 시스템을 함께 품은 와이너리라니 무척 인상적이었다.

카스텔리 델 두카 오벨로 비앙코
▲ 카스텔리 델 두카 오벨로 비앙코
 양조 과정을 모두 둘러본 후에는 와인을 시음했다. 레드 와인 '카스텔리 델 두카 오벨로 로소(Castelli del Duca Obello Rosso)'는 짙은 루비 컬러, 우아한 꽃향, 부드러운 조화가 훌륭했다. 화이트 와인 '카스텔리 델 두카 오벨로 비앙코(Castelli del Duca Obello Bianco)'는 볏짚 같은 노란색, 신선한 과일 향, 적정한 산도가 매력적이었다. 둘 다 가볍게 마시기 좋은 타입이었다.

 '카스텔리 델 두카'란 '공작(公爵)의 성(城)'이란 뜻이고, '오벨로'는 '멋있다, 훌륭하다'라는 뜻이라고 알베르토는 설명했다. 16~18세기에 이 지역을 다스렸던 공작이 주변 마을에 아름다운 성들을 지었던 것에서 영감을 얻은 이름이라고 한다. 총 8가지 와인이 생산되는데, 아쉽게도 아직 한국에는 수입되지 않는다. 이탈리아 중북부를 여행할 사람이라면 교통의 요지에 자리한 이 곳에 직접 들러도 좋으리라. 호스로 뽑아 한 통 가득 담아주는 와인을 사보는 경험을 해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어릴 때 할아버지나 아버지 심부름으로 막걸리를 사오던 추억을 떠올리면서!

[나보영 여행작가]

나보영 여행작가
▲ 나보영 여행작가
※2005년 기자 생활을 시작해 '주류저널(Liquor Journal)' 수석기자로 여행과 와인을 담당하며 5년 동안 일했다. 퇴사 후 전 세계 와이너리를 여행하며 다양한 신문과 잡지에 기고하는 여행작가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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