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NBA의 사기캐릭터 웨스트브룩의 위대함

  • 김유겸
  • 입력 : 2017.04.11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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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셀 웨스트브룩/출처=NBA 홈페이지
▲ 러셀 웨스트브룩/출처=NBA 홈페이지
[쇼미 더 스포츠-38] 러셀 웨스트브룩(Russell Westbrook)의 평균 트리플더블(득점, 리바운드, 어시스트에서 모두 경기당 평균 두 자리 숫자를 기록하는 것) 기록은 이번 시즌 내내 NBA 최고 화젯거리였다. 시즌이 마지막을 향해갈수록 그가 과연 시즌 트리플더블을 달성할 수 있을지 더욱 많은 팬들이 큰 관심을 보여 왔다. 팬들의 이런 마음을 아는지 지난 4월 7일 시즌 종료를 3경기나 남겨 놓고 웨스트브룩은 시즌 트리플더블(경기당 평균 31.7득점, 10.7어시스트, 10.4 리바운드)을 확정 지었다. 그럴 리는 없겠지만 남은 3경기에서 득점, 어시스트, 리바운드를 하나도 기록하지 못하더라도 시즌 트리플더블 기록이 유지되는 것이다.

이 기록은 잘못 만든 스포츠게임에서나 나올 법한 기록이다. 스포츠게임은 실제 스포츠와 비슷하게 만들어야 진짜 경기를 하는 것과 같은 몰입감과 긴장감을 느낄 수 있는데 선수들의 능력치를 지나치게 높게 설정하면 현실과 동떨어지고 억지스럽게 느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즉 시즌 트리플더블은 현실성이 떨어지는, 유치하게 만든 스포츠게임에서나 나오는 불가능한 기록이다. 웨스트브룩이 해냈음에도 그리고 55년 전에 오스카 로버트슨이 이뤄냈음에도 불구하고, 이 기록은 여전히 불가능한 기록이다. 다시 나올 수 없는 기록이다.

농구 기록을 살펴본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득점, 어시스트, 리바운드 어느 하나라도 두 자릿수를 기록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잘 알고 있을 것이다. 리그 수준에 관계없이 어시스트, 리바운드에서 두 자릿수를 기록하는 선수가 한 명도 안 나오기도 하고 나와 봐야 한두 명이다. 이번 시즌 (2016-2017) KBL 정규리그에서 어시스트 두 자릿수를 기록한 선수가 한 명이라도 나온 경기는 17%밖에 되지 않는다. 경기 시간이 8분이나 길고 수준이 높은 NBA도 상황이 크게 다르지 않다. 득점, 리바운드, 어시스트에서 두 자릿수를 기록한 선수가 팀에 한 명씩이라도 있었던 경기는 전체 경기 중 15%에 불과하다.

트리플더블은 이렇게 한 경기에 하나만 두 자릿수 올리기도 어려운 기록 세 가지를 한 선수가 한꺼번에 해내는 것이다. KBL에선 이번 시즌 총 270경기에서 단 4개가 나왔다. 마이클 크레익이 2개, 박찬희와 이현민이 각각 하나씩 기록했다. NBA에서도 이번 시즌 웨스트브룩을 제외하고 1200경기에서 고작 22선수가 70회 기록했을 뿐이다. 그나마 이번 시즌이 KBL과 NBA 모두 역사상 트리플더블이 가장 많이 나온 것인데도 그렇다. 이렇게 트리플더블을 기록하는 것은 평생에 한 번 못 해보는 선수들이 대부분일 정도로 어렵다. 그런데 웨스트브룩은 이처럼 한 경기도 하기 어려운 트리플더블을 2경기당 하나 꼴인 42개나 기록하면서 시즌 평균 트리플더블을 해낸 것이다. 이러한 시즌 트리플더블 달성은 어떤 통계를 바탕으로 확률을 계산하더라도 0.01%가 안 되는, 즉 수치상으로만 존재하는 불가능의 영역이라고 봐도 결코 과장이 아니다.

이러한 불가능을 현실로 만든 웨스트브룩은 올해 NBA 정규리그 MVP 수상은 물론이고 선수로서 이러한 대단한 기록에 걸맞은 평가를 받아야 마땅할 것이다. 하지만 이 기록과 웨스트브룩의 가치에 대해서 회의적인 시선이 여전히 많다. 이유는 다양하다. 어떤 사람은 웨스트브룩이 공격을 혼자 다 했기 때문에 기록을 달성했고, 누구나 웨스트브룩처럼 공격을 독점하면 많은 전·현직 NBA 스타급 선수들이 기록을 달성할 수 있었다고 말한다. 하지만 웨스트브룩과 팀 내 공격 비중이 비슷했거나 높았던 선수들은 과거에도 많이 있었다. 올 시즌만 해도 제임스 하든(경기당 9분)이 웨스트브룩(경기당 8.9분)보다 더 오래 공을 소유하고 있었고, 존 월은 최근 3년 동안 올해 웨스트브룩과 비슷하게 100회 가까이 공을 잡았다. 하지만 이 선수들을 포함해 누구도 평균 트리플더블 기록엔 근처에도 가지 못했다. 웨스트브룩 외에 유일하게 시즌 트리플더블 기록을 보유한 로버트슨의 경우도 웨스트브룩보다 경기당 25회나 더 많은 공격 기회를 가졌다.

또 다른 비판은 웨스트브룩이 기록만을 위해 플레이한다는 것이다. 이것도 근거가 약한 주장이다. 웨스트브룩은 리그 최고 선수 중 하나인 팀 동료 케빈 듀란트가 지난 시즌을 마치고 갑자기 떠난 후 이렇다 할 전력 보강도 못했던 소속팀을 60% 가까운 승률을 올리며 플레이오프로 이끌었다. 이런 성과를 올린 선수에게 팀에 도움이 안 되고 개인 기록에만 신경 쓴다는 비난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웨스트브룩이 공수 전 부분을 도맡아 하는 것이 팀이 이기는 데 최선이었기 때문에 기록이 따라왔다고 보는 것이 오히려 더 합리적인 설명일 것이다. 웨스트브룩이 트리플더블을 기록한 경우 오클라호마시티 선더스 승률이 80%(33승9패)에 이르는 반면 트리플더블 활약을 펼치지 못한 경우엔 리그 최하위팀 승률에 가까운 34%(15승25패)에 불과한 것이 웨스트브룩이 모든 것을 주도해야만 팀이 이길 수 있다는 해석을 뒷받침한다.

웨스트브룩이 공격 전 분야에 걸쳐 전례 없이 높은 수치를 기록한 것을 근거로 현재 NBA 수준을 싸잡아 평가절하하는 사람도 있다. 과거에 비해 NBA 선수들이 수비에 소홀하기 때문에 시즌 트리플더블이 가능했고, 이 기록이 리그 수준 하락의 증거라는 것이다. 이 비판은 사실 매우 상식 밖이다. NBA는 세계 최고 기술을 가졌을 뿐만 아니라 그에 못지않은 승부욕을 가진 선수들이 자신의 명예와 부를 걸고 진검승부를 펼치는 곳이다. 이런 선수들이 상대편 선수가 마음껏 공격하고 기록을 올리도록 두고 본다는 것인가? 상대의 좋은 기록은 나의 나쁜 기록 그리고 경기에 지는 것으로 이어지는데? 수비할 의지가 약해서라기보다 도저히 막을 수 없다고 보는 편이 맞을 것이다.

웨스트브룩은 소위 안티가 많은 선수다. 코비 브라이언트 이후 가장 팬들의 호불호가 갈리는 선수일 것이다. 솔직히 말하면 나는 웨스트브룩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 선수가 마음에 안 드는 사람도 인정할 건 인정하자. 웨스트브룩은 다시 안 나올 대단한 기록을 세웠다. 올 시즌 그는 역사상 최고의 플레이를 펼친 선수다.

[김유겸 서울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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