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들리니까 중년이다... 웹소설 '바람 끝에 서다'

  • 독고탁
  • 입력 : 2017.04.11 15:02
  • 프린트
  • 이메일
  • 페이스북
  • 트위터
  • 카카오스토리
  • 공유
흔들리니까 중년이다. 무기력한 일상과 변화 없는 삶에 지친 40대 남성 K는 '아내 아닌 그녀'를 만나며 흔들리고 또 흔들린다. 작가 독고탁(필명)은 웹소설 '바람 끝에 서다'를 통해 거친 욕망이나 달큰한 로맨스 없이 중년의 심리를 섬세하게 묘사한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 /사진=게티이미지뱅크
[바람 끝에 서다-1] 아무도 믿지 않았다. 그 남자 K가 흔들릴 거라고. K도 그랬다. 꿈은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그 꿈은 늘 막연했다. 다시 사랑할 수 있을까 혹은 언젠가 몽골의 사막엘 다녀 왔으면… 했다. 벗어날 수 없는 일상의 무게가 천근만근 느껴질 때 K는 꿈을 꾸지 않기로 했다. 그녀가 처음 왔을 때도 그랬다. 밋밋한 사회에서 맛 없는 이야기를 만난 느낌 정도였다. 술에 취한 그녀의 전화를 받기 전까지는 그랬다. 열대야로 전국이 더위몸살을 앓고 있었다. 맥주를 마시는 편의점 앞 아저씨들은 갈 길을 잃고 우격다짐으로 시간을 목구멍으로 삼키고 있었다. 맥주라도 마시지 않으면 이 여름을 이겨낼 수 없다는 듯이. 도시는 무기력했고, 농작물은 고사 직전이었다.

탈출구는 없어 보였다. 지나가는 여름이 아니라, 2016년의 여름은 밤새 끝날 것 같지 않은 고통이었다. 그 여름, 40대 남자들은 그물에 걸린 새였고, 오를 수 없는 장애물을 만난 연어였다.

'우리 보면 안 될까요?' '네? 누구… 아… 언제요?' 골목길 끝 대문에 켜진 가로등을 바라보며 전화를 받았다. 저 문을 통과하면 아내와 아이들이 벌거벗은 채로 땀을 식히고 있을 광경을 생각하며 K는 자기도 모르게 그녀의 제안에 응하고 있었다. 얼마 전 광화문의 참치집에서 업무 파트너로 만났던 그녀 S였다. 짙은 감색 재킷을 입고, 화장을 한 듯 만 듯한 S는 특별하지 않았다. 업무상 미팅 자리는 처음이라는 듯 불편하고 어색해하는 표정을 읽을 수 있었다. 공터에서 담배를 나눠 피우며 헤어질 때까지도 남자의 가슴은 돌로 막아 놓은 동굴 입구 같았다. 그런데 지금 K는 전화기 너머 여자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있었다.

어떤 사람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누구라도 좋다는 남자의 본능적 반응처럼. 등골이 오싹했고, 식은땀이 흘러내리면서 여름은 온데간데없었다. 용광로에 달궈진 뜨거운 쇳물이 척추를 타고 흘러내리는 고통을 느꼈다. 걷잡을 수 없는 궁금증과 기대만이 남자를 뜨겁게 달구고 있었기 때문에.

일주일 뒤에 만나기로 하고 전화를 끊었다. 거실에 들어서자 후끈한 더위가 느껴졌다. 아내와 아이들은 에어컨이 켜진 방에서 잠을 설치고 있었다. 오늘만큼은 남자는 가출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해, 2016년의 여름 폭염은 기상 관측 이래 가장 뜨거웠다. 남자는 생각했다. 세상에서 가장 뜨거운 것은 남자의 마음일 거라고. 측정할 수 없기에 깊이를 알 수 없고, 말할 수 없기에 알 수 없는 남자의 뜨거운 마음은 늘 차갑게 식어만 갔지만, 저기 심연에서 너무 뜨거워 꺼낼 수 없는 깊이에 존재하는 용암처럼 여전히 가장 뜨거울 거라고.

누구나 믿고 있었다. 40대 남자는 위험하다고. 그 여름 그녀가 그렇게 왔다.

[독고탁]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