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것 봐, 은하수가 예쁘네!"···그날 밤 소설 '설국'은 미학이 됐다

  • 허연
  • 입력 : 2017.04.13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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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카한 료칸이 올려다 보이는 유자와 마치의 30년대 모습. 이곳 어디쯤 화재 장면에 나오는 고치 창고가 있지 않았을까 상상해 본다.
▲ 다카한 료칸이 올려다 보이는 유자와 마치의 30년대 모습. 이곳 어디쯤 화재 장면에 나오는 고치 창고가 있지 않았을까 상상해 본다.
[허연의 일본문학 기행-19] 설국을 논할 때 '은하수(銀河水)'를 빼놓으면 결례다. 그만큼 소설 '설국'의 이미지를 결정하는 마지막 마침표가 은하수다. 밤하늘에 우유를 뿌려놓은 듯하다 해서 영어로 'Milky Way'라 불리는 은하수. 순우리말로는 '미리내'라고 하는 그 은하수 말이다.

우리 전래동화에서는 견우와 직녀를 갈라놓은 은하수가 야스나리 소설에서는 생과 사를, 천상과 지상을 연결하는 합일의 도구로 쓰인다.

"아아, 은하수, 하고 시마무라도 고개를 들어 올려다본 순간, 은하수 속으로 몸이 둥실 떠오르는 것 같았다. 은하수의 환한 빛이 시마무라를 끌어올릴 듯 가까웠다. 방랑 중이던 바쇼가 거친 바다 위에서 본 것도 이처럼 선명하고 거대한 은하수였을까. 은하수는 밤의 대지를 알몸으로 감싸 안으려는 양, 바로 지척에 내려와 있었다. 두렵도록 요염하다. 시마무라는 자신의 작은 그림자가 지상에서 거꾸로 은하수에 비춰지는 느낌이었다. 은하수에 가득한 별 하나하나가 또렷이 보일 뿐 아니라, 군데군데 광운(光雲)의 은가루조차 알알이 눈에 띌 만큼 청명한 하늘이었다. 끝을 알 수 없는 은하수의 깊이가 시선을 빨아들였다."

소설의 후반부 화재 장면에 등장하는 묘사다. 시마무라와 코마코는 "불, 불이야"라고 외치는 소리를 듣고 화재 현장으로 달려간다. 화재 현장으로 가면서 코마코가 갑자기 "은하수 예쁘네"라고 혼잣말을 하자 시마무라도 하늘을 올려다본다. 하늘에는 두 사람을 빨아들일 듯 끝을 알 수 없는 은하수가 펼쳐져 있었다.

이 장면은 소설의 탐미주의적 대미를 장식하는 역할을 한다. 흰 눈이 쌓인 설국에 붉은빚을 내며 활활 타오르는 창고, 지상에서 일어나고 있는 그 사건을 운명처럼 내려다보고 있는 은하수.

여기에는 감정을 완전히 배제한 어떤 '절대미'의 완성이 느껴진다.

인용한 부분에 나오는 바쇼라는 인물은 일본 하이쿠(俳句)의 아버지로 불리는 에도시대 시인 마쓰오 바쇼(松尾芭蕉 1644~1694)다. 말놀이쯤으로 여겨졌던 하이쿠를 문학의 경지로 올려놓은 주인공이다. 그 이전에도 그 이후에도 바쇼만큼 경지에 오른 하이쿠를 쓴 사람은 없었다. 실제로 바쇼 사후에 쓰인 하이쿠들은 모두 하이쿠의 새로운 변형 정도로 보일 정도다.

야스나리가 인용문에서 살짝 언급한 바쇼의 하이쿠 중 은하수를 노래한 작품은 이것이다.

"거친 바다여 사도섬에 가로 놓인 은하수(荒海や 佐渡に橫とう 天の川)."

사도(佐渡)는 에치코 유자와가 위치해 있는 니가타현 북쪽에 있는 섬으로 주변 바다는 파도가 거칠기로 유명하다. 그 바다가 바로 우리 동해바다 동쪽 끝이다. 사도 섬은 오랫동안 유배지로 쓰였는데 수많은 사람들의 한이 서렸던 곳이다.

야스나리는 은하수를 올려다보면서 바쇼가 노래했던 한 많은 사도섬 위를 가로지르는 은하수를 상상한다.

야스나리가 화재 장면을 완결판 소설의 대미를 장식하기 위해 별도로 쓴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원래 소설 '설국'은 1937년 소겐사(創元社)에서 처음 출간된다. 이 소겐사판에는 화재 장면이 없었다. '설중 화재' 부분이 새로 쓰여 소설의 마지막에 연결된 것은 1947년이었다. 뭔가 미완성 같았던 소설의 대단원을 만들기 위해 야스나리는 이 장면을 심혈을 기울여 쓴다.

야스나리가 은하수를 합일의 도구로 끌어들인 것은 소설에 그대로 드러나 보인다. 다음 문장을 보면 야스나리가 어떻게 은하수를 통해 거대한 허무를 완성했는지 알 수 있다.

"올려다보고 있으니 은하수는 다시 이 대지를 끌어안으려 내려오는 듯했다. 거대한 오로라처럼 은하수는 시마무라의 몸을 적시며 흘러 마치 땅끝에 서 있는 것 같은 느낌을 주었다. 고요하고도 차가운 쓸쓸함과 뭔지 알 수 없는 요염한 경이로움을 띄고 있었다. (중략) 비현실적인 세계의 환영 같았다. 경직된 몸이 공중에 떠올라 유연해지고 동시에 인형 같은 무저항, 생명이 사라진 자유로움 때문에 삶도 죽음도 정지한 듯한 모습이었다."

이미 은하수는 시마무라의 몸을 흘러 땅으로 도달해 있다. 반면 추락하던 요코의 몸은 공중으로 떠올라 은하수가 된다. 필자가 설국에서 가장 위대하다고 느끼는 부분이다. 소설 곳곳에 포진된 이런 화룡점정으로 인해 소설 '설국'은 한량 한 명이 게이샤들과 노닥거린 이야기를 뛰어넘어 하나의 '미학'으로 진전될 수 있었다.

그것을 다시 한 번 확인시키듯 야스나리는 소설의 마지막 문장을 이렇게 새겨 넣는다.

발에 힘을 주며 올려다본 순간, 쏴아 하고 은하수가 시마무라 안으로 흘러드는 듯했다.

[허연 문화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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