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품격있게 늙다' 장수 시리즈 영화(상)

  • 홍성윤
  • 입력 : 2017.04.15 06:01
  • 프린트
  • 이메일
  • 페이스북
  • 트위터
  • 카카오스토리
  • 공유
[쉽게 읽는 서브컬처-47] 사람도 영화도 세월 앞에서 마주치는 선택지는 간단합니다. 그저 늙어가거나 나이에 걸맞은 품격을 갖추거나.

'분노의 질주(Fast & Furious)' 시리즈의 8번째 작품 '분노의 질주:더 익스트림(The Fate of the Furious)'이 개봉했습니다. 시리즈의 아이덴티티와도 같았던 배우 폴 워커(1973~2013)가 요절한 이후 첫 작품이기도 합니다. 이 영화는 '폴 워커 없이 시리즈를 이어갈 수 있을까'라는 질문에 대한 대답이기도 합니다.

이처럼 시리즈 영화는 힘이 셉니다. 어떤 영화들은 그저 그런 흥행에 만족하며, 혹은 지나친 흥행에 취해 자기복제품을 만들어내는 데서 그치지만 세월과 함께 품격까지 갖추는 시리즈도 있습니다. 이번 글에서는 현재진행형인 장수 시리즈물에 대해 다뤄보겠습니다.

▲ '분노의 질주 : 더 세븐' 포스터. 고인이 된 폴 워커(왼쪽 셋째)가 보인다.
◆뒤로 갈수록 창대해지다, 분노의 질주 시리즈

스트리트 레이싱을 소재로 한 분노의 질주 시리즈는 사실 흔한 액션 영화로 시작했습니다. 롭 코언 감독은 2001년 당시 인지도가 높지 않았던 두 배우 빈 디젤과 폴 워커를 투톱으로 기용해 1편을 찍었습니다. 1편의 제작비는 3800만달러로 할리우드 기준으로는 중·저예산 영화였죠.

하지만 1편은 전 세계에서 2억달러를 벌어들이며 후속 시리즈 제작에 힘을 실어줬습니다. 시리즈가 거듭될수록 폴 워커의 위력이 발휘됐고, 유작 '분노의 질주:더 세븐'(2015)의 흥행 성적은 무려 15억1163만달러로, 유니버설이 지금까지 제작하고 배급한 영화 중 최고 성적표를 거머쥐었습니다. 흥행 열풍이 얼마나 대단했냐면, 2억7500만달러에 달하는 제작비를 개봉 나흘 만에 회수했을 정도였습니다.

분노의 질주 시리즈는 단순히 덩치만 커진 것이 아닙니다. 지난 시리즈의 사건과 인물들이 맞물리고, 캐릭터는 탄탄해졌습니다. 전편에서 악당으로 등장했던 인물과 협력하기도 하고, 전편의 스토리를 과거사처럼 끼워 넣기도 합니다. 쉬이 소비되고 휘발되는 액션 블록버스터지만 분노의 질주는 액션으로 소모하는 것 이상의 매력을 보여줍니다.

분노의 질주 시리즈의 장수 비결: 덩치는 커지고, 속은 깊어졌다…인간미를 더한 블록버스터



007 영화 50주년을 기념해 공개한 사진. 1대 숀 코너리를 비롯해 역대 제임스 본드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 007 영화 50주년을 기념해 공개한 사진. 1대 숀 코너리를 비롯해 역대 제임스 본드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끝없는 변신의 반세기, 007 시리즈

영화 007 시리즈는 첫 작품 '007 살인번호'(1962)가 개봉한 지 올해로 55년이 된 최장수 시리즈입니다. 영국 첩보조직 MI6의 첩보원 제임스 본드, 살인면허 007의 활약을 그린 영화는 원작 소설가인 이언 플레밍이 사망한 이후에 꾸준히 이어졌습니다.

할리우드 톱스타보다 '제임스 본드'라는 캐릭터의 오라(aura)가 훨씬 큰 시리즈이기도 합니다. 1대 제임스 본드 역을 맡은 숀 코너리, 단 한 편에만 출연한 비운의 007 조지 라젠비, 하나의 아이콘으로 자리 잡은 로저 무어, 색다른 매력을 보여준 티머시 돌턴과 피어스 브로스넌 그리고 금발 벽안의 본드 대니얼 크레이그까지 6명의 배우가 007을 연기했습니다.

배우의 별세로 배역이 바뀌기도 합니다. '본드는 바뀌어도 Q는 안 바뀐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장기 출연한 고(故) 데즈먼드 루엘린(1914~1999)은 교통사고로 유명을 달리 하기 전까지 2탄 '위기일발'(1963)부터 1999년작 '언리미티드'까지 꾸준히 출연했습니다. 배우는 살아있지만 배역이 사망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본드의 상관인 M역을 17년 동안 맡아온 주디 덴치(1934~)는 50주년 기념작 '스카이폴'(2015)에서 장렬하게 사망하며 시리즈에서 하차했습니다.

역사가 깊어지면서 007 영화 제작은 가업(家業)이 됐습니다. 현재 시리즈를 제작하고 있는 바버라 브로콜리는 해리 살츠만과 함께 이언 프로덕션스를 설립하고 시리즈의 포문을 연 제작자 알버트 R 브로콜리의 딸입니다.

반세기 넘는 세월 동안 이어지다 보니 007에는 당시의 국제 정세, 시대의 변화상이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최근 대선 후보 TV토론회에서 핫한 단어로 떠오른 '주적(主敵)'을 따져 봐도 그렇습니다. 초기 시리즈에서는 냉전시대를 반영한 듯 러시아가 흑막으로 등장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냉전 종식 이후 본드는 데탕트 시대, 우주개발 경쟁과 미디어 재벌, 사이버 테러리즘 등 다양한 악당과 맞서며 시리즈를 이끌고 있습니다.

007 시리즈의 장수 비결: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는 일신우일신(日新又日新)의 자세



스타워즈 영화 시리즈에 출연했던 배우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 스타워즈 영화 시리즈에 출연했던 배우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새로 쓰는 미국의 신화, 스타워즈 시리즈

조지 루커스의 손에서 시작한 스페이스 오페라 '스타워즈'는 미국의 신화(神話)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1977년 개봉한 스타워즈는 사회 현상이 됐고, 연이은 흥행 성공으로 전설적인 영화 프랜차이즈로 자리매김했습니다.

현재까지 총 7편의 정식 시리즈와 1편의 스핀오프 작품이 제작됐습니다. 같은 세계관과 연표를 공유하는 작품들이지만 영화화는 다소 복잡한 순서로 진행됐습니다. 4, 5, 6편이 먼저 만들어지고 1, 2, 3편이 그 이후에 그리고 7, 8, 9편으로 이어지는 새로운 3부작 중 첫 번째 영화가 개봉했습니다. 복잡하죠?

우선 1977~1983년에 차례대로 개봉한 스타워즈(이후 새로운 희망이라는 부제가 붙음), '제국의 역습' '제다이의 귀환' 3부작은 개봉 순서로는 가장 앞서지만 전체 스토리라인에서는 중간에 해당합니다. 클래식 트릴로지라고도 불리는 이 3부작 이후 16년 만에 개봉한 후속작 역시 3편으로 제작됐습니다. '보이지 않은 위험' '클론의 습격' '시스의 복수'로 이어지는 일련의 작품을 두고 프리퀄(prequel) 트릴로지라고 지칭합니다. 왜냐하면 이 3부작이 클래식 시리즈보다 앞선 시대의 이야기, 정확히는 클래식 3부작의 주인공인 루크의 아버지이자 후일 다스 베이더로 악명을 떨치게 되는 아나킨 스카이워커의 성장과 타락에 대해 다루고 있기 때문이죠.

2012년 디즈니는 루커스필름을 40억5000만달러에 인수하면서 프리퀄, 클래식에 이은 시퀄(Sequel) 트릴로지 제작에 착수했습니다. 시퀄 3부작의 첫 시작이자 7편인 '깨어난 포스'(2015)는 6편 '제다이의 귀환'으로부터 30년 뒤를 그리고 있는데, 이는 실제 6편이 개봉한 1983년과의 간극과도 일치합니다. 그래서 루크, 한 솔로, 레아 등 전작의 주요 인물들이 특별한 분장 없이 세월의 흔적을 담은 얼굴로 연기하죠. 객석에는 30년 만에 만난 추억 속 인물들을 반가워하는 관객들이 앉아 있었고요(물론 시퀄 3부작 때문에 공식 설정에서 비공인 설정으로 밀려난 확장 세계관(UC, Expanded Universe)의 팬들은 분노했지만…).

스타워즈의 위대함은 이 지점에 있습니다. '함께 나이 먹어가는 콘텐츠'라는 점입니다. 팝콘 먹는 것도 잊은 채 봤던 스타워즈를 봤던 꼬마가 어느새 어른이 돼 자식과 함께 극장을 찾습니다. 생일 선물로 사준 광선검을 들고서요. 앞서 스타워즈를 미국의 신화라고 설명했습니다. 거창한 건국신화는 아니지만, 부모와 자식이 공유하고 향유할 수 있는 대중문화 콘텐츠는 공동체의 구성원을 결속시킬 수 있는 밈(meme, 문화적 유적자)으로서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하게 작동합니다.

지난해 말 개봉한 '로그 원:스타워즈 스토리'는 시퀄 3부작과는 별개로 제작된 스핀오프 시리즈 '스타워즈 앤솔로지'의 첫 번째 작품입니다. 클래식 3부작 중 4편 새로운 희망 직전에 벌어진 사건을 다루는데, 그 흔한(?) 제다이 한 명 등장하지 않고, 스타워즈 시리즈를 대표하는 라이트세이버 대결도 없습니다. 진지하고 비장한 이 작품은 스타워즈의 외연을 확대하면서, 동시에 수십 년 전 작품과 유기적으로 연결되면서 새로운 의미를 부여했다는 점에서 높은 평가를 받았습니다. 제작을 발표한 향후 스핀오프 시리즈 '한 솔로'와 '보바 펫'(가제)을 기대하는 이유죠.

스타워즈 시리즈의 장수 비결: 3대(代)가 공유할 수 있는 국민 콘텐츠의 힘



다음 편에서는 '책 밖으로 나온 마법의 세계' 해리 포터 시리즈와 '스크린을 지배한 마블의 힘'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 시리즈, '숨 막히는 공포에서 짜릿한 연례행사로' 거듭난 호러 영화 시리즈 등에 대해 다룰 예정입니다.

[홍성윤 프리미엄부 기자]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